‘적자 늪’ 한전, 취약층 전기료 할인 떠안아
200조 부채에 누적손실 50조
희망퇴직 등 재무개선 와중에
2년간 5000억 내야할 판
이사회 사용 제안한 전력기금
재원 대부분 전기요금으로 조성
전국민에 부담 넘긴다는 지적도
지난 15일 한전 이사회에 참석한 한 이사는 “이사회가 한전 재원으로 취약층 전기요금 할인분을 메우도록 허용하는 게 자칫 잘못하면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한전 수익구조는 간단하다. 전기를 싸게 사와서 비싸게 팔면 수익이 늘지만 반대로 비싸게 사와서 싸게 팔면 수익이 나빠진다. 전기를 싸게 사오기 위해서는 유가와 가스 값이 떨어져야 한다.
2022년 한전이 33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도 비싸게 사온 전기를 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전은 kWh당 155.17원을 주고 전기를 사왔지만 각 가정에는 kWh당 121.32원을 받고 판매해 큰 손해를 봤다.
한전 적자는 송배전망 구축에 직격탄이다. 한전은 국민, 기업으로부터 전기요금을 걷어 전 국토에 촘촘하게 전력망을 깐다. 전력망 유지·보수도 한전의 중요한 임무다.
불어난 적자와 부채에 몸살을 앓는 사이 정부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취약층 전기요금 할인 부담을 한전에 안겼다. 작년 1860억원, 올해 2889억원으로 둘을 합치면 5000억원에 달한다. 한전이 5000억원 전기요금을 더 걷을 수 있는 걸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한전 이사회가 제시한 대안은 전력산업기반기금 활용안이다. 전력기금은 전기사업법과 시행령에 따라 전 국민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3.7%씩 떼서 조성한다. 2001년에 설치됐다. 전력수요 관리, 도서·벽지 주민 등에 대한 전력공급 지원, 원전주변지역 지원, 보편적 전기공급, 안전관리, 환경보존, 한전의 해외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전력기금 지출예산은 2조4068억원이다. 수입은 4조4961억원이다. 올해 지출은 12% 줄어 2조1189억원이지만 수입은 4조5010억원을 예상한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여유재원을 정부 내 다른 기금과 특별회계에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전력기금 재원은 충분하지만 문제는 전 국민이 낸 전기료를 재원으로 조성한다는 점이다. 전력기금으로 취약층 전기료 할인을 지원하면 그 부담이 한전에서 전국민으로 옮겨가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여론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수 있는 취약층 전기료 지원을 위해 시행령을 바꿔야 하는 것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현재 전기사업법과 전기사업법 시행령에는 취약층 전기요금 할인지원 근거가 다소 모호하다.
차제에 전기요금 결정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기요금 징수·수입 주체는 한전이지만 실제 결정은 정부에서 하는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윤석열정부도 출범직후 내놓은 120대 국정과제에서 “전력시장·요금 및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전문성을 강화하고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전력시장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물가안정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법무법인 태평양이 수행하고 있는 ‘전력 시장·요금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 전문성 강화 방안’ 연구 용역 결과 발표도 차일피일 이뤄지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하면 모두가 따르는 것처럼 정부에서 독립된 전기위원회가 전기요금을 결정하면 모두 따르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전은 증시에 상장된 회사인데 정부가 전기요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한전 이사회와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가 사실상 뒤따른 모양새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상장사는 주주권익 보호에 앞장서야 하지만 현재 전기요금 결정 구조에서는 주주권익 보호가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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