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외교전 재시동… 미 "대북 압박에 중 필요", 북중 "전술협동 강화"
평양선 북중 고위급 접촉 "친선의 해, 협력하자"
김정은 방러 때 냉랭했던 중, 북과 다시 스킨십
미국이 중국 측에 '군사 도발을 거듭하는 북한을 압박해 달라'고 요구했다. 최근 북한의 군사적 위협 수위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미중 갈등 국면에선 후순위에 뒀던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중국과의 대화 주요 의제로 삼으려는 모습이다. 그러나 중국은 보란 듯 북중 간 고위급 접촉에 나서며 '전술적 협력 강화' 의지를 내비쳤다. 북핵 문제가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다뤄질 미국 대선의 해를 맞아 주요 국가들 간 외교전이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중 양국 정부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26, 27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대만 문제와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의 이행 방안이 주로 다뤄진 가운데, 미국은 북핵 문제에도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미국 "중국 대북 영향력, 비핵화 복귀에 사용해야"
미국 고위 당국자는 전화 브리핑에서 "우리는 최근 북한의 무기 테스트와 북한·러시아 관계 증진, 그리고 이 흐름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와 관련해선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분명히 대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이 (북한을) 비핵화 경로로 복귀시키는 데 그런 영향력을 사용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미를 겨냥한 북한의 군사 위협 행위를 중국이 제어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뜻이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불법적 탄도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중 긴장 이완이 주요 의제였던 터라, 북핵 문제는 원론적 차원에서만 다뤄졌다. 반면 이번 방콕 회동에선 '중국 역할론'을 앞세우는 등 좀 더 비중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이 보인 반응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방콕 회담 결과에 대해 "미국은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며 대만 문제를 부각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동, 우크라이나, 한반도 등 지역 문제를 논의했다"고만 짧게 덧붙였다.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며 북핵 문제 책임을 미국에 전가했던 기존 입장을 반복했을 공산이 크다.
거리 뒀던 북중, 평양서 고위급 회동..."관계 회복 흐름"
북중은 오히려 같은 날, 고위급 대화로 연대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26일 평양에서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만나 조중(북중) 관계 설정 75돌인 올해를 '조중 친선의 해'로 칭하면서 "공동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전술적 협동과 공동 보조를 계속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중국 외교부도 "화기애애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양국 관계와 지역 정세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견해를 교환했다"고 밝혔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75주년을 맞이하는 10월 이전에 김정은 위원장 등의 중국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때만 해도 북한과 거리를 두려 했던 중국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행에 "북러 사이의 일"이라고만 했다. '북중러 3국 간 군사 협력 강화' 흐름으로 읽힐지 모른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됐다. 베이징 고위 외교 소식통은 "다소 소원했던 북중 관계의 기류가 '관계 회복'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미국과 중국, 북한의 외교전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최근 위협적 언사는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북핵 문제'에 대한 주목도를 높여 향후 북미 대화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이 경우, 중국의 일정한 역할을 주문하는 미국의 요청도 거세질 공산이 크다. 소식통은 "미중 갈등 이완이 지상 목표인 중국으로선 북중 관계를 회복해서 이를 대미 견제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분간은 북한과의 스킨십을 강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설리번 보좌관은 왕 부장과의 회담에서 이란 행동 제어를 위한 영향력 발휘도 당부했다. 미 당국자는 "중국은 이란의 최대 교역국 중 하나로, 이란산 석유를 상당량 구입한다"며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중국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최근 홍해상에서 잇따라 선박을 공격하는 친이란 예멘 후티 반군을 우회 압박하기 위해 중국이 '이란산 석유 수입 중단' 등 조치를 검토해 달라는 뜻이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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