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슈도 쉽게 쓰고 대안 짚어줬으면…페미 ‘혐오’ 기획은 시의적절
이주여성 우울증·성소수자 등
새로운 이슈 많이 다뤄서 좋아
‘너 페미지?’ 기획 사회혐오 잘 짚어
‘남성 페미’로 확장 시도해볼만
한겨레 ‘젠더보도지침’ 바람직한데
정치·종합면 50~60대 남성 ‘쏠림’
스포츠도 여성기사 많이 부족해
한겨레는 1988년 창간 때부터 성평등 가치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다. 창간과 함께 국내 종합일간지 중 처음으로 여성 담당 기자를 두고 여성면을 신설했다. 2021년에는 국내 언론 최초로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취재·보도 전반에 성평등 관점이 철저하게 스며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11기 열린편집위원회 아홉번째 회의에서는 성평등 관점에서 한겨레의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제정임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 심창식 ‘한겨레:온’ 편집장, 이예진 경상국립대 학생(전 경대신문 편집장),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홍연지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가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이주현 뉴스룸국 뉴스총괄, 장수경 젠더데스크가 참석했다.
제정임 오늘은 한겨레가 여성 관련 이슈를 잘 보도했는지, 그리고 콘텐츠를 생산할 때 젠더 관점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김종진 최근에 한겨레가 결혼이주여성의 우울증, 학생 성소수자, 주부연금 등과 같은 새로운 이슈를 많이 다뤄줘서 좋았다. 그런데 기사에 대체로 ‘소 왓?(So What?, 그래서 뭐?)’이 없더라. 단순 사실만 전달할 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등을 짧게라도 담아주면 어땠을까 싶다. 예컨대 저출생 대책이 발표됐다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임신·출산 혜택을 주는 프랑스 사례 등을 소개해주면 독자들에게 정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최근 2주치 스포츠면을 분석해 봤는데, 여성 스포츠를 다룬 기사가 20%밖에 안 되고 사진도 여성이 나오는 사진은 3분의 1이 채 안 되더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준형 ‘너 페미지? 묻는 사회’ 시리즈는 게임업계에서 일어나는 백래시 양상을 잘 짚은 좋은 기사였다. 마지막회에 남성 페미니스트 얘기가 실렸는데, 그 문제를 좀 더 확장해서 다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모임을 자세하게 들여다봐도 좋을 것 같다. 남성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내용으로 기사가 구성이 됐다면 어땠을까 싶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다룬 기사의 제목에 ‘방구석 여혐’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걸 봤는데, 그런 표현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개인화, 단순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은유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 내용은 그렇지 않았는데, 제목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좀 더 고민해줬으면 한다.
심창식 한겨레 종이신문 독자 중에는 60~70대도 많다. 그런데 고령 독자들에게는 남혐이니 여혐이니 하는 말들이 좀 낯설 수가 있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고, 왜 그것 때문에 여성 혐오, 남성 혐오가 생긴다는 건지 그 맥락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예전에 우리 회의에서 국제나 경제 분야 점검을 할 때 사안의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젠더 이슈에서도 그게 필요하다. 여혐, 남혐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해결되는 게 바람직한지 좀 더 친절하게 보여줬으면 한다. 참고로 2022년 10월 한겨레21에 ‘페미니즘은 죄가 없다’는 기획기사가 실렸는데, 그걸 보니까 전체적인 맥락이 눈에 들어오더라. 오피니언면에 ‘알기 쉬운 페미니즘’ 이런 걸 연재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제정임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사실 60~70대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놓고 봐도 페미니즘 이슈의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그런데 언론은 독자들이 당연히 알 거라고 여기고 기사를 쓰는 경향이 있다. 경제, 과학 기사를 쉽게 써야 하는 것처럼, 젠더 이슈도 친절한 기사쓰기가 필요하다. 맥락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용어들을 포함해 반복적으로 설명해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예진 한겨레에 젠더팀이랑 젠더데스크가 있다는 거는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는데,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은 이번에 처음 읽어봤다. 그런 가이드라인이 있어서인지 한겨레 보도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든가 성폭력의 폭력성을 희석한다든가 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더라. 이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반 기사와 사진에서도 대체로 성별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 같다. 다만, 정치면이나 종합면 기사를 보면 정부 고위급 인사가 여전히 50~60대 남성 위주여서 그런지 쏠림 현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제안을 하자면, 총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젠더 관련 정책 이슈를 잘 짚어줬으면 한다. 젠더팀에서 만드는 ‘슬랩’ 같은 버티컬 콘텐츠를 통해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 해소를 위한 논의의 장을 한번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성별이 부각되는 통계 기사의 경우 통계 이면의 구조적 맥락을 설명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연지 한겨레 지면에서 여성의 얼굴은 문화면이나 사람면에 가서야 처음 등장하는 경우가 많더라. 이예진 위원도 지적했듯이, 정치면이나 종합면에는 넥타이를 맨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굉장히 뜨거운 이슈가 되지 않으면 젠더 관련 보도가 지면에 잘 실리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여성 스포츠경기 기사를 읽다 보면 ‘두 아이의 엄마’ 하는 식으로 엄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남성 선수들에 대해서는 ‘아빠 선수’라는 걸 굳이 강조하지 않지 않나. 이런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스포츠면은 성별 쏠림과 종목 쏠림이 좀 심하다고 느꼈다. 대중들의 인기를 감안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면 사진이라도 다양한 종목과 여성 스포츠 소식을 다뤄줬으면 좋겠다.
제정임 ‘너 페미지? 묻는 사회’ 시리즈는 시의적절하고 좋은 기획이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다양한 전문가의 견해를 볼 수 있다면 이 사안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티 페미니스트였다가 지금은 페미니스트가 된 남성들의 얘기를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페미 작가’ 색출과 징벌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 도대체 그들은 누구인지, 왜 안티 페미니스트가 됐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등을 취재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만일 그들이 잘못된 팩트로 무장하고 있다면 언론이 보도를 통해 정확한 팩트를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저출생 문제는 성 불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여성들이 취업과 배치, 승진 등 각 단계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고 있는지, 특히 결혼과 출산·육아가 여성들의 장래에 어떤 부담과 피해로 돌아가는지를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과 각종 데이터로 보여주는 장기 기획 시리즈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장수경 저희 콘텐츠에 대해 좋은 의견 내주시고 기사 아이디어 제안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앞으로 좀 더 친절하고 맥락을 짚어주는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들의 ‘단소리 쓴소리’
열린편집위원들은 그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한겨레의 논조와 기사 쓰는 방식, 뉴스 서비스 등 콘텐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독자 눈높이에서 비판과 제언을 쏟아낸다.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 한겨레 누리집 왼쪽 상단의 ‘메뉴’ 버튼을 누르면 기사 카테고리가 펼쳐지는데, 정치 분야에 ‘국방·북한’이 있더라. 물론 국방과 북한이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한겨레라면 ‘통일’이라는 단어가 기사 분류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남북관계’라고 할 수도 있겠고. 한겨레의 창간정신 중 하나가 통일 아닌가.(심창식 위원)
▪ ‘도파민 인류’ 시리즈가 좋은 기획인 건 맞는데, 이게 한겨레가 연초에 이렇게 깊게 다뤄야 할 주제인지 고민스럽다. 특히 다뤄야 할 이슈가 많을 때 두세면에 걸쳐 기획을 펼치면 독자들이 한겨레에서 보고 싶어하는 이슈들을 못 보게 되지 않을까. 한겨레 내부에서도 딜레마일 것 같다. (김종진 위원)
▪ ‘좌파에 호남 출신이라서?…‘인간 박정훈’ 가짜뉴스로 공격받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런데 ‘가짜뉴스’란 표현은 안 쓰는 게 어땠을까 싶다. 윤석열 정부가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언론을 공격하고 있어서 언론계에서는 그런 표현을 쓰지 말자는 논의가 있었던 걸로 안다. (이준형 위원)
▪ ‘뉴스 AS’ 기사를 유익하게 읽고 있다. 거기서 다룬 내용들을 숏폼(짧은 영상) 콘텐츠로 재가공하면 20대 독자층에게 매력적이지 않을까. (이예진 위원)
▪ 한겨레에서 장애 관련 이슈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으로라도 계속 보도가 되니까 리마인드가 되는 것 같다. (홍연지 위원)
▪ 때로는 사진이 기사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사진설명만 봐서는 사진 속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사진설명도 공을 들여서 썼으면 한다. (제정임 위원장)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1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26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도파민 인류’ 시리즈였다.
1. ‘도파민 인류’
사회부 이슈팀
한줄평: “스마트폰 중독 현상을 다양한 사례와 데이터로 조명” “인공지능, 인류를 다시 문맹화로 내모나?”
2. 사람과 사람 잇는 대구 안심마을
탐사팀 안영춘 기자
한줄평: “오늘날 찾기 어려운 연결과 연대의 의미 일깨우는 기사”
3. 코로나 4년, 예방접종 피해자들 울분
사회정책부 천호성 임재희 김윤주 기자
한줄평: “백신 피해에도 문턱 높은 한국 질병관리 정책”
4. 여전히 위험한 이주노동자 잠자리
토요판부 조일준 기자
한줄평: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환경, 정책의 공백”
5. 한화 장남에 ‘RSU 389억원’…경영권 승계수단 악용 우려
경제부 김경락 기자
한줄평: “RSU의 문제를 탄탄한 논리로 잘 짚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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