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공영방송 위기, 방송변혁 출발점으로
공영방송은 늘 위기였다. 하지만 올해 위기감은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르다. KBS와 EBS는 TV수신료 분리 징수, MBC는 보도 공정성 논란에 이사진 교체, TBS는 서울시의 교통방송 출연금 대폭 삭감, YTN과 연합뉴스TV는 각각 매각 승인작업과 2대주주와의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 방송사 1~2곳의 위기가 아니라 공영방송 대부분이 혼란을 겪는 것은 공영방송이 새로운 변혁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기회에 공영방송 운영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방송을 종교, 교육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 통치기구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렇기에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영방송사 경영진 교체가 추진되고, 이 과정에서 내부 권력 다툼이 항상 일어났다. 정치권과 학계는 그동안 공영성 제고를 외치며 지배구조 개선, 이사진 확대 등으로 공영방송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방송사 내부에서도 외부 정치권력과의 결탁, 특정 정파의 선전 도구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득세해 왔다. 기득권을 놓기 싫은 사람들과 새로운 권력을 도모하는 사람들 간에 반복되는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파적 차원에서만 방송을 바라보면, 하부구조를 애써 외면하게 된다. 지금 상황이 그러하다. 지금 혼란은 정권 교체에 따른 헤게모니 쟁탈이라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방송사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대부분 광고비와 수신료 등에 수익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모바일 광고 시장의 확대로 인해서 방송 광고비가 대폭 축소되고 있다. 지난 2023년 방송사 광고비는 3조3076억2700만원으로 2022년에 비해 17.7%나 감소했다.
방송 시장의 주도권은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이미 넘어갔다. 이에 따라 공영방송의 주요 재원인 수신료 강제 징수의 논리 역시 빈약해졌다. 컨슈머인사이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유료방송 가입자 3명중 1명인 37%정도가 서비스 해지를 적극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V 없는 가정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TV수상기 소유자에 대한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강제 징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렇기에 지난해 이뤄진 KBS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은 조금 일찍 다가온 미래에 불과하다.
수신료 분리징수의 여파는 올해부터 두드러질 전망이다. KBS는 3000억원대 누적 적자를 예고하고 있다. EBS 재원 역시 궁핍해질 전망이다. 광고와 수신료, 정부 지원은 감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영방송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렇기에 KBS와 EBS는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시해서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대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제작·방영하는 것만이 KBS의 역할은 아니다. 정파성 탈피, 공정한 보도, 재난방송 역시 최소한의 요건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어떠한 시대 정신을 제시할 수 있느냐이다. 지역 소멸, 출생률 저하, 기후 변화에 KBS와 EBS가 그동안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두 편의 단발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 공영방송 종사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프로그램을 위해서라면 수신료 2500원이 아니라 4000원, 1만원도 기꺼이 낼 국민들은 많다. 설사 수신료가 아닌 다른 방식의 지원도 지지할 수 있다.
TBS 역시 미디어기술 변화에 잘못 대응한 사례다. 내비게이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교통정보에 대한 수요도 급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빈틈을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정파적 의견으로 메운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이는 특수방송인 교통방송의 의미를 스스로 퇴색시킨 것이다. 서울시의 출연금으로 운영된다면 그에 맞는 방송내용 편성이 중요했다. 가령,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와 426개 행정동에 대한 소식 등 지역민주주의 향상을 위한 포맷 개발이 필요했다.
현 공영방송의 위기는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길들이기'로만 바라본다면 인식의 수레바퀴는 1980~90년대에 머물러 있게 된다. 해결방식도 결국 정치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과거처럼 단지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만 바라봐서도 안된다. 인터넷과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 스스로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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