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쪼개거나, 가족끼리 하거나, 직원 내보내거나”… ‘50인 미만’ 중처법 시행 현장에선 [밀착취재]

박유빈 2024. 1. 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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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28일, 공장 문을 열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일요일이지만 조성기(63) 오성스프링 대표는 이날도 출근해 자동설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2000년 회사를 만들어 25년 가까이 운영하며 매주 반복된 일이다. 오성스프링은 경기 시흥시에 있는, 25개 장비로 약 100가지 스프링 만들어 매달 400∼500개 제품을 판매하는 연 매출 약 17억원 규모의 소규모 기업이다.

조성기 오성스프링 대표가 28일 경기 시흥시에 있는 사업장에서 설비를 조작하고 있다. 모니터로 작동 지시를 입력하면 기기가 자동으로 돌아가며 스프링을 제조한다.
한 눈에 들어오는 직원 9명이 일하는 사무실 옆으로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있는 공간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각종 스프링은 자동차, 컴퓨터, 중장비, 건설자재, LED등, 전자기기 등 각종 분야에 사용된다. 대부분 설비는 직원이 어떤 제품을 제조할지 설정해두면 자동으로 돌아가 이날도 사업장 안이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멈추질 않았다.

평일에는 직원들이 이런 조작부터 수동 조립, 검수, 포장 등을 하지만 주말에는 조 대표만 출근해 설비만 살펴본다. 공장 곳곳에 놓인 통 안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일부는 납품하기 위해 봉투 안에 담겨 있었다. 가장 적게 일한 직원이 8년이고 대부분은 10년 이상 일했을 정도로 오래 근속한 직원들이다.

경기 시흥시에 있는 오성스프링 사업장 모습. 2000년에 생긴 이 기업은 25년 가까이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각종 스프링을 생산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워크샵 한 번 못 간 조 대표는 올해 제주도로 워크샵도 가고 직원들 생일도 챙겨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날아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소식에 현재는 내년에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성스프링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5~49인 사업장 83만7000곳 중 한 곳이다.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이면 동네 음식점이든 빵집이든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최대 10억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그는 “내년부터는 직계가족끼리 회사를 운영하거나 직원들에게 기계 한두 대씩 내주고 중대재해처벌법에 적용되지 않게 각자 사업을 벌이라고 할까도 생각 중”이라며 “모든 10인 미만 기업인들은 5인 미만으로 기업 쪼개기, 가족끼리 운영하기, 각개전투로 직원 내보내기 셋 중 한 가지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에 있는 오성스프링 사업장 모습.
기업인들은 요즘이 외환위기나 코로나19 때 못지않게 원자재비·인건비·금리가 높은 ‘3대 악조건’ 시기라고 말한다. 조 대표는 “10인 아래 기업은 20∼30명 되는 기업처럼 안전·보건 담당 직원을 둘 정도의 여력도 없고 각자 일하기 바쁘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기존에 산업재해 처리하던 이상으로 사업주에게 책임을 물어 소기업은 사내 변호사도 없고, 대응전략도 없이 바로 도산”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제는 직원을 쓸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뿌리산업이라는 제조업은 10인 미만 업체면 몇 년 안으로 다 죽는다”고 전망했다. 

통계상 중대재해의 과반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재해 사망사고는 3분기 기준 459건인데 이 중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267건이 발생해 58.2%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전면 시행을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이 줄곧 이어져왔다.

조성기 오성스프링 대표가 28일 경기 시흥시에 있는 사업장에서 천장에 매립하는 LED등을 설명하고 있다.
기업인이라고 ‘사고가 안 나면 되지 않냐’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원치 않아도 사고는 갑자기 발생하고 현업까지 같이하는 개인대표가 많은 소규모 업체까지 일괄 적용하는 조치는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결정밖에 안 된다고 조 대표는 거듭 밝혔다. 그는 “우리도 가끔 손가락이 다치는 등의 사고가 나서 산재 처리했지만 앞으로 중대재해처벌법상 어떻게 처벌이 강화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면서도 “먹고살기 바빠 알아볼 시간도 없었고 이제라도 대처해야 하는데 ‘차라리 회사 접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대로면 정직원으로 고용되는 인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도 우려했다. 조 대표는 “직원 10명을 쓰던 기업이 3명만 두고 나머지는 구인업체 통해 일용직으로 충당하는 등의 변칙이 많아질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고용이 위축되면 실업자는 늘고 기술을 전수하는 인재 양성은 더 안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성기 오성스프링 대표가 28일 경기 시흥시에 있는 사업장에서 자사가 만든 스프링이 제품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시작된 뒤 50인 미만 업체를 대상으로는 2년의 유예기간을 뒀지만 실제 소규모 기업들이 대응하기에는 유명무실한 시간이었다. 2년 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어느 한 곳도 홍보하지 않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근로자에게는 무엇이 좋은지, 업주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안내도 전무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올해 돼서야 중대재해법 관련 보도가 나오면서 유예기간이 끝난다고 알았다”며 “다른 지자체도 똑같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조 대표는 소규모 업체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채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된 데 국회 잘못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그는 “지역구 의원, 시의원들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도대체 이 법을 제정하고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하지도 않은 국회가 이 내용은 잘 아는지조차 의문인데, 결국 법으로 피해보는 이는 서민”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대한 ‘정부의 홍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장은 “당연히 이전에 안 하던 것을 고려해야 하니까 부담인 것은 맞지만,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사항을 간과해왔다”며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이 의무사항으로 규정한 것에 처벌이라는 강제성이 더해진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벌 중심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기 힘들고, 정부가 홍보로 이행 준비를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시흥 박유빈 기자, 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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