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비자금 문제와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

한겨레 2024. 1.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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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 각 파벌의 비자금 조성 문제와 관련한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왔다.

정치자금규정법에는 정치자금수지 보고서에 제대로 내용을 기재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되면, 의원 자격을 잃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돼 있다.

예를 들어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하기우다 고이치 전 자민당 정조회장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금액이 2728만엔(약 2억4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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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임시국회가 끝난 지난해 12월13일 도쿄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여당인 자민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당의 신뢰 회복을 위해 선두에 서서 임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도쿄/EPA 연합뉴스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최근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 각 파벌의 비자금 조성 문제와 관련한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왔다. 정치자금규정법에는 정치자금수지 보고서에 제대로 내용을 기재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되면, 의원 자격을 잃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돼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4천만엔(약 3억6천만원) 이상 비자금을 조성한 의원을 기소하고, 그 이하 액수에 대해선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체포·기소된 의원은 3명에 그쳤다. 또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파벌 회장이나 사무총장에겐 책임을 묻지 않고 사무직원인 회계 책임자만 기소했다. 검찰은 회계 담당자와 파벌 간부의 공모를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민당 일부 유력 정치인은 비자금 액수를 발표하면서 회계는 모두 비서가 맡고 있었다며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했다. 예를 들어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 하기우다 고이치 전 자민당 정조회장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금액이 2728만엔(약 2억4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작지 않은 규모의 비자금을 자신은 전혀 몰랐고, 사무소 직원이 멋대로 관리해왔다고 해명한 셈이다. 이런 변명으로 국민을 속이려는 비겁한 정치인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비자금 규모가 4300만엔(약 3억8900만원)에 이르러 기소되고 의원직 사퇴를 표명한 다니가와 야이치 의원은 지지자들과 인간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비자금을 음식값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다른 정치인들도 비슷할 것이다. 일반 소득과 달리 정치자금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것은 정치인의 정책연구가 민주정치의 건전한 운영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향응을 위해 정치자금을 사용한다면 그 돈은 정치인 개인의 소득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치인의 비자금 조성은 탈세가 된다.

일본에서는 2~3월이 소득세 신고기간으로 납세자는 필요경비를 인정받기 위해 영수증을 첨부하는 등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사적 용도로 쓴 식사비용 등에 대해 국회의원만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사실에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무당국은 이번 사건을 탈세로 적발할 움직임이 없다. 일본에서는 정치인의 특권이 만연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비자금 문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지난 19일 자신이 회장을 맡아온 기시다파(고치카이)의 해산을 결단했다. 파벌 단위로 모금 행사를 열어 비자금을 만들었으니, 파벌을 금권정치의 원흉으로 지목한 것이다. 아베파에 이어 니카이파도 해산을 결정했다. 자민당은 과거 큰 부패 사건이 있었을 때, 몇차례 파벌 해산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정책집단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파벌이 부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선 자민당 총재는 곧 일본의 총리가 된다. 따라서 총리를 목표로 하는 정치인은 총재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이때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을 확보하기 위해 파벌을 만들게 된다. 이번 파벌 해산을 믿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애초 파벌이 원인이라면서 해산에 나선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검찰이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해도, 국민이 다음 선거에서 정치적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자민당은 분명 큰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 위기도 점차 잊히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권을 이어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지만, 야당의 지지율은 전혀 오르지 않고 있다. 최근 치러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추천한 후보가 고전했지만 승리했다. 여론은 자민당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선택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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