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찐 맛집’ 소개합니다

허윤희 기자 2024. 1.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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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바다와 마을 풍경. 허윤희 기자

[한겨레 프리즘] 허윤희 | 전국팀장

“전국부 기자들이 소개하는 맛집이요? 완전 ‘찐’ 맛집이겠네요.”

지난해 말 지역 맛집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다고 말하니 한 후배가 격하게 호응했다. 한겨레 누리집을 개편하면서 올해 전국부 기자들이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를 연재하고 있다. 신문지면이 아닌 온라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코너다. 매주 금요일 오후 3시 기사가 뜬다. 제주를 시작으로 광주, 공주, 마산 등 전국 곳곳 숨겨진 맛집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작한 지 한달도 안 돼 한겨레 온라인 인기 연재물로 올랐다.

생각해보니 낯선 지역에서 맛있는 한끼를 먹기란 쉽지 않다. 어떤 식당을 가야 하나 고민스럽다. 블로그 등을 보고 식당을 찾았다가 ‘낚였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배만 채웠다고 툴툴거린 실패의 경험 누구나 있지 않은가. 그럴 때 이 동네 아는 친구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지인 찬스가 간절한 순간이다.

그렇게 몇년 전 찾아간 경남 통영의 맛집이 있다. 전통시장 안에 자리한 그 식당에서 생애 처음으로 도다리쑥국을 먹었다. 보통 3~5월에만 맛볼 수 있는 봄철 음식이다. 그래서 더 특별했나. 한입 먹었는데 입안 가득 쑥 향이 퍼졌다. 쑥으로 만든 음식이라곤 쑥떡밖에 몰랐던 나에게는 색다른 미각의 경험이었다. 맑은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했다.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 바다와 땅의 기운을 먹는 듯했다. 식당 주인이 통영 앞바다 섬에서 해풍 맞고 자란 쑥과 싱싱한 도다리를 넣어 끓인 것이라고, 여기 통영에서 먹어야 이 맛이 난다고 거듭 강조했다.

통영의 맛을 알게 된 날 통영의 멋도 보였다. 그림처럼 떠 있는 섬들, 짙푸른 바다, 비릿한 바닷바람, 세월이 켜켜이 쌓인 좁은 골목길. 그날의 통영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만족스러운 한끼의 힘은 그리 대단하다. 봄만 되면 그곳의 바다, 마을 풍경, 그리고 음식이 생각났다. 서울에도 도다리쑥국을 파는 곳이 있지만 가진 않았다. 통영에서만 완성되는 ‘맛의 서사’가 있으니까.

음식은 추억을 소환한다. 내게는 떡볶이가 그렇다. 마라탕도, 탕후루도 없던 학창 시절 몇천원으로 먹을 수 있는 분식이었던 떡볶이. 친구들과 수다 떨며 즐기던 음식이자 때론 차오르는 속울음을 삼키며 먹었던 위로의 음식이기도 하다. 내가 살던 읍내에는 떡볶이의 양대 산맥이 있었다. 대문분식과 스마일분식.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이 없던 시절 두 가게는 분식계를 평정했다. 두 가게의 스타일은 정반대였다. 대문분식이 긴 밀떡만 들어간 깔끔한 매운맛이라면, 떡과 양배추, 어묵 등 여러 재료가 들어간 스마일분식은 달콤하면서 매콤한 맛이었다. 각기 좋아하는 맛을 따라 대문파와 스마일파로 나뉘었다. 나는 스마일파였지만, 그래도 두 집을 번갈아 찾곤 했다. 스마일파와 대문파는 따지고 보면 범떡볶이파였다.

10여년 전 스마일분식이 문을 닫았다. 다행히 2대째 이어온 노포집이 된 대문분식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읍내에 다양한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왔지만 50여년간 자리를 지켜온 그 가게는 하루하루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노포는 변함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단골들에게는 향수의 공간으로, 새로이 찾는 이들에게도 좀체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긴다. 노포는 그렇게 그 지역, 그 골목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역사를 만들어간다.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일상의 행복 중 하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똑같은 평균화된 맛 말고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맛을 안다는 것 역시 즐거움이다. 어디에서도 베낄 수 없는 독특한 그곳만의 맛.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소, 그곳이 품은 역사와 문화,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맛은 한층 더 깊어지리라.

올봄에는 인생 살맛 안 난다는 친구를 데리고 그곳에 가야겠다. 도다리쑥국 먹으러. 벌써 입안에 상큼한 쑥 향이 퍼지는 것 같다. 짭짭, 짭짭.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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