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1심 무죄…'사법농단' 책임은 누구에게

'재판개입 의혹' 양승태 등은 무죄…임종헌은 일부 혐의 인정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임종헌 일부 직권남용만 인정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사법농단' 혐의 전체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으면서 사법부 전체의 신뢰를 뒤흔들었던 사건의 책임이 단순히 일부 실무자들에게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총 14명의 피고인 중 13명에 대해 하급심 법원 판단이 나왔거나 대법원에서 확정된 가운데, 일부 혐의만이라도 유죄를 선고받은 사례는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2명뿐입니다.

하급심의 결론을 종합하면 '최상위 실행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다음 달 초 1심 선고에서 일부 유죄 판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7년 전 나라를 들썩였던 사법농단의 최종 법적 책임자가 대법관도 아닌 차관급 판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만큼 후폭풍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 사진=연합뉴스

오늘(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 '재판개입' 의혹의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우선 강제동원 재상고심 재판과 관련해 주심 대법관에게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한 것에 대해 "대법원장은 소부 사건에 대해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며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에 '직권 취소' 의견을 담당 재판부에 전달한 것에 대해서는 재판개입에 해당한다며 박 전 대법관이 가담했다고도 언급했지만, 마찬가지로 실행자인 이규진 전 부장판사에게 재판개입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서기호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판사 재임용 탈락 불복 행정소송과 관련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통해 재판부에 '기일 진행' 의견을 제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직권을 남용했으나 당시 수석부장판사나 재판부가 이에 따라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반면 재판부는 이들의 전 단계인 임 전 차장의 '재판개입' 관련 일부 혐의는 유죄로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앞선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과 관련해 심의관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행위는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본 겁니다.

2015년 9월 전주지법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과 관련해 사법총괄심의관에게 재판부 심증을 확인하도록 하고 재판장에게 '법원행정처가 수립한 판단방법'이라는 법리를 전달하게 한 행위,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이 헌법재판소가 한 통진당 소속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해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 각하 판결을 한 것에 대한 비판 보고서 작성을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지시한 행위 모두 직권남용죄의 4가지 구성요소를 충족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 전 대법관과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판단도 이와 유사합니다. 재판부는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직권을 남용하지는 않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의혹에서도 임 전 차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탄압 관련 직권남용 혐의는 일부 성립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2016년 3월∼2017년 2월 임 전 차장이 심의관에게 지시해 인사모 와해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거나 '중복 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탈퇴하도록 유도한 것에 대해 직권을 남용해 법관의 표현·연구의 자유를 침해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이나 고 전 대법관과의 공모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의 2심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모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의 결론과는 배치되는 만큼 상급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 사진=연합뉴스

이와 같이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가 임 전 차장의 일부 혐의에 대해 사실상 인정 판단을 내린 만큼 임 전 차장 재판부도 다음 달 5일 예정된 선고에서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판사 가운데 유죄 선고는 임 전 차장과 이민걸·이규진 전 부장판사 등 3명에 그치게 되는 셈입니다.

아직 1심 판결뿐이지만, 2017년 2월 첫 의혹 제기 후 7년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법농단의 책임소재를 임 전 차장 등 몇몇 고위 실무자들에게만 묻는 허탈한 결과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사법농단 폭로자'로 불리는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양승태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박지윤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bakjy785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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