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휴일 마트 열어도 골목상권에 발길···입점 자영업자는 '반색'
둘째·넷째주 수요일로 휴업일 전환
입점한 상인들도 매출 상승 효과
인근 양재시장 가족동반 인파 몰려
대형마트·전통상권 '윈윈' 기대도
근로자·소상공인 반발 해소는 숙제
“마트가 쉬는 날인지 미리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젠 일요일에 올까 해요. 지난주까지는 토요일에 장 볼 여건이 안 되면 일요일 새벽 배송을 받을 수 있게끔 온라인으로 주문했어요.”
28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한 대형마트. 두 아이와 함께 점포를 찾은 김 모(37) 씨의 카트에는 이른 아침부터 대파를 비롯한 채소류가 가득 담겼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의무휴업일이 정상영업일로 바뀐 첫날 오픈을 앞둔 매장 입구 앞에는 그를 포함해 30명에 이르는 인파가 길게 줄을 늘어섰다. 소비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사람이 이렇게 많냐”고 말하는 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오전 10시가 지나자 이달 정기 휴무를 31일 수요일로 변경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서초구는 이날을 시작으로 관내 대형마트가 매주 일요일 정상영업하고 둘째·넷째 주 수요일에 쉬도록 의무휴업일을 전환했다. 킴스클럽 강남점은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에, 이마트 양재점과 롯데마트 서초점을 포함한 나머지 매장은 모두 같은 주 수요일에 휴업하게 된다. 이는 서울시 지방자치단체 내 첫 사례다. 서울 동대문구도 다음 달부터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꾼다.
같은 날 양재시장이 위치한 서초구 ‘말죽거리’에도 시민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일요일에 영업하는 대형마트가 전통 상권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골목마다 가족을 동반한 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말죽거리는 대표적인 ‘골목형 상점가’다. 2000㎡ 이내 면적에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가 30개 이상 밀집해 있는 장소다.
앞으로 서초구 대규모 점포에 입점한 자영업자들 역시 일요일 영업 효과를 누리게 된다. 이전까지 의무휴업일에 마트와 함께 문을 닫았던 식당가와 카페 등 임대 매장도 마찬가지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점포에서 주말 매출은 평일 대비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2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전했다.
대형마트와 SSM의 의무휴업제도는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인근 상권과 전통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소비자 편의성을 희생한다는 비판이 나온 데다 상생 효과에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실제 지난해 2월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대구시가 이후 6개월간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전통시장(32.3%)과 음식점(25.1%), 대형마트 및 SSM(6.6%)의 매출이 모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 대규모 점포를 제외한 주요 소매 업종의 매출 증가율(19.8%)은 의무휴업일을 일요일로 유지하는 인근 지자체인 부산(16.5%), 경북(10.3%), 경남(8.3%)보다 모두 높았다.
이에 서울 성동구를 포함한 다른 지자체도 이런 방안을 검토하며 규제 완화에 탄력이 붙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자체별로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거치면 공휴일이 아닌 날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정부도 장기적으로 법 개정을 통해 의무휴업 공휴일 지정 원칙 자체를 없앤다는 방침이다. 평일에 장보기가 어려운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등 국민 불편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앞서 22일 동대문구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민생 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생활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설을 앞둔 대목에 규제가 완화되자 유통 업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또 다른 유통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휴업의 반사이익은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이 누렸다고 본다”면서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에 대한 움직임은 반갑지만 유통산업발전법 자체를 개정해 영업시간 외 온라인 배송까지 허용해야 그간 부진했던 업황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마트 근로자들과 인근 상권 소상공인의 반발은 여전히 숙제로 꼽힌다. 이 때문에 서울 다른 지자체들로 확산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이해당사자인 상인들은 평일 대비 매출이 높은 주말에 손님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잠겨 있다. 송유경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은 “소비자 편익 관점에서는 당연히 대형마트가 휴일에도 여는 게 좋겠지만 처음부터 의무휴업제도 취지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가 아니었냐”면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존치를 검토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도 앞서 17일 서초구청 앞에서 의무휴업일 평일 변경 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도 상생 협약의 이해당사자에 해당된다며 구청이 근로자들의 공휴일 휴식권을 보장해달라는 주장이 골자였다. 이에 대해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부교수는 “백화점이나 레저시설처럼 대형마트와 유사한 다른 업종의 근로자들도 주말에 일하고 있다”면서 “휴일에 오히려 보수가 높아지는 측면도 있으니 이는 결국 소득과 휴식 사이에서 이해관계자들 선택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대구시와 서초구를 포함해 비공휴일을 의무휴업일로 실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상생 효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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