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윤 대통령, 보수 유튜브 대신 중도의 장으로 나와야”[인터뷰②]
“저는 국민께 표를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현재까지 불출마 의사를 밝힌 여당 의원은 공교롭게도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과 비윤석열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김 의원 등 2명뿐이다.
지난 27일 김 의원을 서울 송파구 김 의원 지역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의원은 3시간 가까이 4년 간 의원직을 수행하며 든 생각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당이) 안 변하는 건 그냥 안 변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우리 당은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과 여당의 태도가 “너무 혐오스러웠다”며 불출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계기로 꼽았다. 김 의원은 당장 국민의힘을 탈당할 가능성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이준석 대표가 이끌고 있는 개혁신당이 “그 어느 정당보다 큰 힘을 가진 캐스팅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한 애정 담긴 쓴소리도 남겼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이 “무조건 옹호해주는 보수 유튜버들로부터 위안을 받는 것 같다”며 “만주벌판같이 넓은 중도의 장으로 나왔을 때 더 각광받았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에게는 “지금의 지지율에 취할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며 “스스로 얘기한 여의도식 정치 사투리에 너무 익숙해진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아래는 일문일답.
-21대 전반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환경, 노동은 보수정당 입장에선 수세적인 분야인데, 플랫폼 노동 문제 등에서 개혁적인 얘기들을 했다.
“사람들이 다 내가 법제사법위원회에 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당이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더라. 다들 기피하는 상임위더라. 우리 당이 대선에서 이기려면 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환노위를 지망했다.
헌법상에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만들어놨으면, 보수정당이 앞장서서 싸워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만 노조를 적대시하는 거다. 그리고 ‘클린에너지’를 안 쓰면 물건도 못 파는 세상이 됐다. 10대들과 얘기해보면 환경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그들이 몇 년 있으면 유권자가 된다. 쌍용차 노조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청구소송 취하 촉구 결의안에 아마 내가 우리 당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을 거다. 내가 노조 출신이 아님에도 후원금 대부분이 노조원들로부터 들어온 게 자랑 아닌 자랑이다.”
-대통령과 같은 시기 검찰에서 근무했는데, 국민의힘에 와서 비윤석열계 대표 주자가 됐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을 텐데.
“‘좋게 좋게 갔으면 잘 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들을 한다. 그런데 옳고 그름의 문제는 양보를 하거나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 제기했던 것은 대통령 스타일에 대한 게 아니었다. 명백히 옳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 거다.”
-2년 전 5·18 기념식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참석했다. 당시에 윤 대통령에 대한 큰 기대를 표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당의 약점은 결국 역사 문제다. 우리 당의 뿌리 중 일부는 어찌 됐든 민정당이고 쿠데타로 세운 정당에서 왔다. 그때 일어났던 광주민주화 운동은 우리 당한테 영원히 벗어나기 힘든 굴레 같은 것이다.
우리 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김영삼 대통령식 해법이다. 하나회를 해체했고, 군정 종식을 했고, 쿠데타의 주역을 법정에 세워 형사 처벌을 받게 한 빛나는 역사가 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한테 김영삼 대통령이 가졌던 담대함이나 전향적인 역사 인식을 기대했다.
그런데 잘 하시던 분이 갑자기 홍범도가 빨갱이니 뭐니 하면서 이념이 중요하다는 거다. 제주 4·3 사건도, 어찌 됐든 우리 국민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죽어 갔으면 가슴 아파해주고 안고 가는 게 맞는 거다. ‘우리가 다 잘못했으니까 우리 같이 갑시다’라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게 보수정당의 강점이다. 그걸 좀 잘 살리면 되는데 그 후에 보였던 모습은 ‘역사 인식이 후퇴한 게 아닌가’ 하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낳고 있다.”
-대통령이 변한 계기가 있을까.
“국민들의 엄청난 희망을 안고 당선됐는데, 국민들이 자꾸 (자신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봤을 때, 그럴수록 의연해지셨어야 되는데, 무조건 옹호를 해주는 유튜브 같은 데서 위안을 받으시는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은 보수 유튜버들이 파놓은 덫 속으로 계속 기어들어 가실 게 아니라, 만주벌판같이 넓은 중도의 장으로 나오셨을 때 오히려 더 각광을 받으실 수 있다. 언제 사람들이 자기에게 환호를 했었는지, 그때 그 모습으로 다시 찾아가셔야 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한 긍정 평가가 과반이고, 특히 보수층에서 이전 당대표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MB(이명박 대통령)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유사한 수준이다. 어떻게 보고 있나.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과 반발, 보수층의 위기감이 결집된 거라고 본다. 지금 (한 위원장) 지지율이 우리 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표로 갈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은 별개다. 지지율에 취할 게 아니고, 방향을 어떻게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 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보였던 모습을 보고 복기를 하는 게 좋을 거다.”
-윤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한 위원장 지지율이 반대로 움직이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같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사과 문제를 놓고 대통령과 충돌한 걸로 차별화에 성공하면서 한 위원장에게 득이 된 것 아닌가. 총선에는 유리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는 (윤 대통령 압력을) 아무도 버텨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버틴 것이 성과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여사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갈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이게 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고 단단한 자기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지금 휴전에 들어가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여사가 (한 위원장이) 자기를 밟고 가는 건 절대 용서를 안 할 것이고, 국민들은 안 밟으면 용서를 안 할 거다. 그 딜레마에 빠져 있는 거다. (한 위원장이) 과연 밟을 만한 배짱이 될까.”
-공천 과정과 총선 후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충돌할 수밖에 없을까.
“대통령이 (이 사람 공천주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한 위원장이) ‘이렇게 가면 총선 판이 어려워진다’고 비토를 놓았을 때 대통령은 배신으로 생각하고 격노하실 것 같다. 그때 갈등이 있을 거다.
총선이 끝나고 나면 대통령은 이준석(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가려 할 거다. 한 번 파열음이 나면 수습을 못한다. 하지만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한 위원장에게로 당은 급속히 기울 거다. 지금까지 대통령이 공천권으로 당을 장악했는데, 장악할 방법이 없다.”
-한 위원장이 5대 정치개혁 방안(불체포특권 포기, 금고형 이상 확정시 세비 반납, 당 귀책 재보선 무공천, 의원 정수 축소, 출판기념회 정치자금 수수 금지)을 제시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반대로 질문을 던져보겠다. 우리나라 정치의 지금 문제점이 그것들 때문에 발생한 건가. 체포동의안(불체포특권) 제도가 있기 때문에 이재명이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부정부패를 했나.
대증요법이란 게 있다. 제일 안 좋은 정치가 포퓰리즘, 다른 이름으로 대증요법이다. 위암에 걸려있는데 열이 난다고 해열제를 먹고 열이 떨어지면 치료가 됐다는 거다. 정작 암 걸린 부분을 떼어낼 만한 용기는 없는 거다. 의원 정수를 줄인다고 국회의원들이 이제 올바른 국회의원이 되고 갑질 안 하고 전문성도 갖춰지나. 저런 것들이 한 위원장이 얘기한 여의도식 정치 사투리다. 지금 거기에 너무 익숙해지는 거 아닌가.
우리나라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는 대통령이 너무 힘이 강하다는 거, 너무 중앙집권화돼 있다는 거다. 승자독식을 하는 소선거구제가 국민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을 낳는 문제인데, 거기에 대한 답은 없다.”
-여야가 비례대표제 병립형 환원과 준연동형 유지를 두고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평소 선거제에 대한 소신은 무엇인가.
“국민한테 지지율 45%를 얻었다면 전체 의석에서 몇 퍼센티지를 얻는 게 가장 정당한가. 45%를 얻는 게 가장 정당하다. 이에 가장 적합하게 만든 독일식 (연동형)제도로 가는 게 맞는다. 지금 논의는 전부 양당에서 국민 상대로 사기치는 거다. 한 표라도 더 나오면 모든 것을 다 먹는다는 건 스포츠 경기다. 정확하게 국민들의 의사를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를 다 망치고 있는 요인은 소선거구제와 이로 인한 양당제다. 거기에 병립형까지 붙이는 건 대국민 사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와 연결되고, 다당제는 내각제와도 연결된다.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제왕제라는 사실이다. 5년 동안 그 누구도 컨트롤 할 수 없는 제왕을 만들어놓고 있다. 부족한 한 명이 (대통령이) 되면 그에 의해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이원집정부제가 됐든지, 책임총리제가 됐든지, 내각제가 됐든지 이제는 대통령제에 대한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대통령제는 바보가 권력을 잡기가 너무 쉬운 구조다.”
-21대 국회에서 대표발의한 법안이 가장 적은 걸로 꼽힌다. 대표발의를 적게 한 이유가 뭔가.
“처음에 의원이 됐을 때 ‘1년에 법안 한 건씩 4건 내겠다’고 얘기했는데 사실 그걸 초과해서 너무 많이 냈다. 우리나라는 미국·일본 등에 비해 의원당 발의 법안 건수가 지나치게 많다. 법안을 많이 내고 법안을 많이 통과시키는 국회가 훌륭한 국회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국회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국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법안들을 생각해 보면, 타다금지법, 민식이법, 검수완박법, 임대차3법, 공수처법 등이 있다. 그것 중에 국민들이 봤을 때 대한민국 사회를 좋게 만든 법이 뭐가 있는가.
우리나라 법안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아지기 시작했느냐.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의원 평가나 정당의 공천 심사에서, 발의한 법안의 내용이나 파급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발의 건수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본식 용어를 단어만 바꾸는 거다.
모든 법은 힘 있는 사람은 지키기 쉽고, 없는 놈은 지키기 어렵다. 법을 가지고 세상을 좋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국회의원 의정활동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본회의와 (비공개인) 상임위 법안소위 참석이다. 본회의장에 가서 법안들 중에서 찬성이 됐든 반대가 됐든 기권이 됐든 하나라도 의사표시를 하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소위에서 얼마나 머물렀느냐 하는 거다. (민주당) 오영환·최기상·임호선·장철민 의원을 좋아하고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이 사람들은 법안소위를 떠나지 않는다. 많은 의원들은 카메라가 들어오는 상임위(전체회의) 때만 나와서 어그로를 끈다. 그런데 소위에 출석 안 하고 상임위에만 나온 그 의원이 의정활동 잘 한다고 평가받는다.
법안을 막는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법안에) 반대(표결)도 제일 많이 했고 소위 때도 반대를 제일 많이 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인에 대해 무슨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은 절대 안 된다고. 나는 그게 의정활동이라고 생각한다.”
-21대 국회 입성 초기 인터뷰를 보니 “우리나라 정치판에 틈과 균열을 만들어내는 품격있는 또라이가 되고 싶다” “당내에서 기존 상식을 흔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더라. 4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에게 몇 점이나 주겠나.
“일단 일반적인 국회의원으로서는 낙제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인을 평가할 때 재선, 3선을 가느냐 안 가느냐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판을 흔들어보고, 다른 정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면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니까 B+ 정도 주겠다. 우리 당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중시해야 한달지, 시스템 공천이랄지, 노동·복지·환경 어젠다를 가져가는 것, 당내에 이견이 존재하고 그래도 버텨낸다는 걸 보여준 것 등도 역할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과 조국 사태를 비판하면서 검찰을 나와 정계에 입문했다. 그때로 돌아가면 또 정치를 할 건가.
“나는 가정이나 후회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 다른 길을 걸었으면 좀 더 나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당시에 내가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한 거고,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결론이 났을 거다.”
-초선의원 4년 생활을 끝내는 입장에서 국회의원 김웅을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있나.
“나는 기본적으로 빨리 잊히는 게 목표다. 그런데 22대 국회에서라도 정보경찰은 없어져야 한다.(※김 의원의 1호 대표발의 법안은 ‘정보경찰폐지법’이다.) 정보경찰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탄압하려 만든 제도인데, 이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건 국격의 문제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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