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억 모으며 자찬했지만…2년차 고향사랑기부제 ‘리스크 주의보’

오종탁 기자 2024. 1. 2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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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내실 떨어지고 미비한 시스템에 운영·홍보비 부담까지 지자체들 삼중고
국회에 막힌 민간플랫폼 허용안, 시행령 개정·지침 마련으로 활로 뚫을 수 있을까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첫해인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650억여 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선방했다' '제도 안착에 성공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과 달리 고향사랑기부제는 여러 단점을 노출하며 지자체들에 잠재적 리스크를 안기고 있다. 조기에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현행 방식을 고수하면 모래 위에 계속 집을 지어가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2003년 시행한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한 해 동안 전국 243개 지자체의 총모금액이 650억2000만원으로 집계됐다고 지난 1월10일 밝혔다. 한 곳당 2억7000만원을 모금한 셈이다. 

지난해 1월19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농협중앙회 직원, 한국철도공사 관계자 등이 고향사랑기부제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조한 흥행세를 '선방했다' 포장해선 안 돼" 

고향사랑기부제는 국민 개개인이 고향이나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원 이내로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지역 답례품 수령 등 혜택을 받는 제도다. 현재 등록된 주소지 지자체에는 기부할 수 없어 인구가 많은 지역의 기부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다른 지역으로 출향민이 많은 시도의 기부액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실적 상위 30곳(7억8127만원)과 하위 30곳(4188만원)의 평균 모금액 격차는 19배에 달했다. 

행안부는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더욱 적극적인 모금 활동을 통해 많은 금액을 모금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분석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맹점이 드러난다. 재정자립도 하위 지자체 20곳 가운데 강원 화천군(1억5530만원), 전남 구례군(2억2376만원)·신안군(2억3889만원), 경북 영양군(1억8690만원)·봉화군(2억863만원), 경남 의령군(2억3229만원) 등의 모금액은 전국 평균을 밑돌았다. 전국 89개 인구감소지역 중 평균 모금액에 못 미치는 지자체도 36곳이나 됐다. 

더구나 지난해 일부 지자체의 호실적 요인 중 하나는 출향민의 고액 기부였다. 특히 향우회가 발달한 전남의 모금 실적이 전반적으로 좋았다. 22억4000만원을 모금해 1위를 차지한 전남 담양군의 경우 500만원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 83명이 전체 모금액의 5분의1을 담당했다. 애향심에만 기댄 기부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많은 국민이 출신지뿐 아니라 학업·근무·여행을 통해 관계를 맺은 '제2의 고향'에 기부하게 하는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제도 외연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통합플랫폼 '고향사랑e음' ⓒ고향사랑e음 홈페이지 화면 캡처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전혀 알기 어려운 '깜깜이' 구조는 외연 확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8년 도입된 일본 고향세(고향사랑기부제의 롤모델)는 애초에 민간이 지역 사업을 기획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민간플랫폼에 편리하게 기부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자연스레 기부자가 늘어나고 선의의 경쟁 속에 민관 협력의 우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고향사랑기부제는 모금 창구를 정부 통합플랫폼 '고향사랑e음'으로 일원화하고 기부금을 이용한 다양한 지역 사업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등 단점을 노출하며 끊임없이 관치(官治)행정 논란에 휩싸여 왔다. 

한 민간플랫폼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플랫폼을 통하면 무한하게 열릴 가능성을 차단한 채 고향사랑기부제 2년차에도 여전히 고향사랑e음 만을 고집하는 건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격"이라면서 "일본이 고향세 도입 첫해 81억4000만엔(현재 환율 기준 735억원 상당)을 모은 것과 비교하며 (우리는 650억원을 모았으니) 선방했다고 안심하는데, 이런 식으로 저조한 흥행세를 얼렁뚱땅 넘겨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일본 고향세 실적과 지난해 고향사랑기부제 실적을 비슷하다고 여기는 데 대해 이 관계자는 "일본은 온라인 기부가 불가능했고 공제 절차도 까다로웠다"며 "더구나 회계연도 때문에 4월부터 12월까지 모금한 기부금으로 산정했다. 15년 전이라 화폐 가치도 지금과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올해도 고정비 부담에 허리 휘는 지자체들 

가뜩이나 모금 규모가 저조한 가운데 지자체들은 제도 홍보비와 정부에 내는 분담금 등 고정비 탓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일본 정부는 고향세를 도입할 때 지자체로부터 분담금을 걷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난해 통합플랫폼 구축·운영비 90억7000만원을 각 지자체로부터 걷어 고향사랑기부제를 시작했다. 올해 운영비도 36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지난해 운영비(19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행안부 산하기관인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서 독점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의 운영이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동안 시스템 오류, 서버 다운 등 문제가 수시로 불거졌다. 

지자체들이 각자 부담해야 하는 제도 홍보비는 간혹 '배(모금액) 보다 배꼽(홍보비)이 더 큰' 결과를 불러왔다. 지난해 11월10일 대전시 행정사무감사 자리에서는 고향사랑기부제 홍보비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시 자체 모금액 4600만원과 5개 자치구 모금액을 합쳐 2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는데, 홍보비로 나간 돈이 1억여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 자체적으로 모금한 기부금이 홍보비의 절반도 되지 않은 셈이다. 

이는 비단 대전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광주시 자치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자체들에 홍보 부담을 떠넘긴 것도 모자라 광고 매체, 방송, 신문 등 언론을 통한 고비용 광고만 할 수 있도록 규제까지 해놨다"면서 "SNS나 문자, 서신 등을 통한 저비용 홍보도 인정하고 제도 전반에 관해 알리는 고비용 홍보는 중앙정부가 도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이해도가 여전히 낮고 모금 실적도 답보 상태인 현실을 고려하면 홍보뿐 아니라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때다. 이대로 가다간 올해부터 모금액이 감소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 홍보 방법을 다각화하고 기부 상한액을 연간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높이는 내용의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려 입법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21대 국회 내 통과'라는 목표는 불투명해졌다. 

민간플랫폼 가로막히는 현실에 대한 불만 고조 

실패 위기에 빠진 고향사랑기부제를 살릴 구원투수로 꼽히는 민간플랫폼 허용 방안도 국회에 가로막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1월15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운영 근거를 관련법에 명시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보류했다. 다양한 민간플랫폼을 참여시키기보다 그냥 고향사랑e음을 보완해서 쓰면 되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꽉 막힌 상황에서 지자체들의 불만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민간플랫폼을 활용해 모금하다가 행안부로부터 제지당한 전남 영암군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영암군은 고향사랑e음과 민간플랫폼에서 동시에 '공공산후조리원 의료기 구입, 영암맘 안심 프로젝트' 모금을 진행해 봤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민간 플랫폼(3억7900만원)이 고향사랑e음(3억2800만원)보다 많은 기부금을 모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쁨도 잠시, 행안부는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업무를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위탁한다'는 법 시행령 8조 1항을 들며 영암군에 제동을 걸었다. 

우승희 영암군수는 "지역 균형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입법 취지에 맞게 제도를 운영했더니 '불법' 꼬리표를 붙는 게 말이 되느냐. 법에서 포괄적으로 허용한 지자체장의 권한도 축소·제한한 불합리한 조치"라며 "민간플랫폼을 전면 허용해 지자체장들이 지역을 위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안부가 지난해 1월 중단시킨 강원도 양구군청의 민간플랫폼 지정기부 프로젝트 ⓒ위기브

전광섭 한국지방자치학회장도 "행안부는 민간플랫폼으로 기부금을 모금하는 지자체를 제지하기보다 시범 실시를 적극 권장하고, 모금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민간플랫폼 허용을 22대 국회로 미룰 게 아니라 지방의 문제를 한시라도 빠르게 해결하려는 적극 행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법 개정 어렵다면 다른 활로 뚫어야" 

일각에선 행안부 역시 민간플랫폼 허용 문제를 놓고 지자체와 국회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제3의 방안'으로 활로를 모색해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지난해 11월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가운데) ⓒ연합뉴스

행안부는 지난해 10월12일 공식 설명자료를 통해 "건실하고 다양한 민간플랫폼이 진입해 운영될 법령상 근거와 플랫폼이 갖춰야 할 세부 기준, 신청 절차 등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고향사랑e음은 민간플랫폼에 기부 제한 사항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게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자체를 비롯한 각계에서 빗발치는 민간플랫폼 허용 요구에 부응해 '고향사랑e음 고집'에서 '민간플랫폼 전면 허용'으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법을 손질하는 작업에 계속 미온적이다 보니, 이미 수명이 다한 기존 방침을 어쩔 수 없이 이어가는 형국이다. 

권선필 목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당장 법 개정이 어렵다면 다양한 지자체 정보시스템을 통한 모금이 가능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거나, 법에서 기부금 접수처를 '그 밖의 공개된 장소'라고 명시한 데 대한 세부 지침을 마련해 지자체들이 모금 방법을 다변화하는 근거를 마련해 주면 얼마든 활로가 뚫릴 거라 본다"며 "모금 플랫폼 다변화가 이뤄져야만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성화되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지방 소멸 위기 해소라는 전 사회적 염원에도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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