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의 기업과 경제] ESG 판 벌여 놓고 도망친 블랙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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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ESG 광풍이 불고 있을 때, 필자는 이 정기 칼럼에 '워런 버핏의 ESG 비판'이라는 글을 실었다.
'ESG의 상당 부분은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정당성도 없는 사람들이 기업에 맹종을 강요하는 것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극좌와 극우에서 (블랙록을 비판하는) 무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블랙록이 이렇게 ESG 널뛰기를 하면서 그 피해는 전 세계 기업과 금융사들이 떠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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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ESG단어 사용 중단
올들어선 "본분 돌아가겠다"
초대형 투자자 힘 견제 없어
피해는 기업·금융사 떠안아
3년 전 ESG 광풍이 불고 있을 때, 필자는 이 정기 칼럼에 '워런 버핏의 ESG 비판'이라는 글을 실었다. 'ESG의 상당 부분은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정당성도 없는 사람들이 기업에 맹종을 강요하는 것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알지도 못하고 정당성도 없는' 대표적인 주체가 블랙록이다. 10조달러(약 1경3000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 블랙록은 세계 주요 기업의 상당한 지분을 골고루 갖고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지분이 5%가량, 엔비디아와 아마존 지분이 2% 이상이고,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지분이 5% 정도에 달한다. 전 세계 기업의 가장 막강한 종합 주주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기업 사장(CEO)들에게 매년 편지를 보내왔다. 투자 방침을 설명하는 것이라지만 훈계조 얘기가 종종 포함된다. ESG가 등장할 때 핑크는 '지각 변동'이라며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자금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기 ESG 전도사들의 설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기업들도 핑크가 말하니까 ESG 부서를 만들고 대응을 대폭 강화했다. 금융사들도 ESG 투자 지침을 만들고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핑크는 불과 2년여 만인 2023년 7월 "ESG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극좌와 극우에서 (블랙록을 비판하는) 무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우파는 블랙록이 사회적 가치에 대해 의견을 밝히도록 기업을 압박해 좌파 사상과 행동을 강화한다고 공격했다. 반면 좌파는 블랙록이 ESG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작년에 핑크는 ESG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내용은 기업에 계속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 들어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 19일에 발표한 2024년 기업관여보고서는 '금융 탄력성(financial resilience)'을 전면에 내세웠다. 수익을 내고 위험을 관리하는 자산운용사의 본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블랙록의 스튜어드십 팀장 주드 마제드는 "그것이 (돈 맡긴) 고객들이 지금 실제로 원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사실 ESG는 너무나 광범위해서 구체적 행동을 제시할 수 없다. '사회(S)'가 뭘 하라는 말인지, '지배구조(G)'나 '환경(E)'은 '사회'에 포함되는 것인지 등의 기본 질문에 답이 없다. 블랙록은 알지도 못하는 판을 벌였다가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고 도망쳤다고 할 수 있다. 정당성도 없었다. ESG를 밀어붙일 때도 블랙록은 고객의 요구라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블랙록의 고객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전 세계인이 ESG 강화를 요구했을 리는 만무하다.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이 ESG 강화 목소리를 내는 일부의 요구를 고객 일반의 요구로 포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추구할 사회적 가치를 자산운용사가 선도할 정당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추구할지는 각 기업이 법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금융투자자가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관을 기업에 강요하는 것은 직권 남용이다.
블랙록이 이렇게 ESG 널뛰기를 하면서 그 피해는 전 세계 기업과 금융사들이 떠안고 있다. 초대형 투자자의 힘이 견제 없이 사용되면서 나타난 폐해다. 이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금융투자자와 기업 사이에 중간자 역할을 잘하며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정부는 '투자자 요구'라는 것에 따라 더 크게 널뛰기했던 것 같다. 변하는 세계 시장 흐름을 직시하고 정부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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