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또 '거부권' 초읽기…이태원 유족들은 무릎 꿇고 15900배

한예섭 기자 2024. 1. 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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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특별법 촉구' 몸 던지는데 ... 특별법 거부 與는 '유족 위해서'?

정부가 오는 1월 30일 국무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안을 심의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며 희생자 분향소에 15900배를 올렸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유족들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28일 오후 1시 59분께부터 서울광장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서 "특별법을 공포하라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다시 한 번 전달한다"며 15900배 배례를 시작했다.

15900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수인 159에 맞춘 숫자로, 유족들은 100인이 동시에 159배를 맞춰 올리겠다는 의미로 15900배를 기획했다. 이날 현장 배례엔 총 120명이 참석, 53명의 유족들과 50명의 시민들이 159배를, 12명의 유족들과 5명의 시민들은 반배를 올리며 15900배를 진행했다.

유족들은 오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여부가 정해질 가능성이 큰 가운데 '윤 대통령의 의사가 거부권 행사 쪽으로 기울었다'는 취지의 보도가 언론 등을 통해 이어지자 이 같은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전날 27일에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대회'를 열고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예외적 상황에서나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며 "(노조법, 방송법, 쌍특검법 등에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를 고려한다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 분향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이들에게 연대하는 시민들이 이태원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15900배 배례를 진행하고 있다.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제공

지난해 시민대책회의 등 시민단체들과의 협력 통해 직접 이태원 특별법 제정 건의안을 작성하고 각 정당을 방문했던 유족들은 해당 법안이 발의된 그해 4월 20일부터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9일까지 265일 동안 특별법 통과를 위한 거리 투쟁에 매진해왔다.

대통령에 대한 면담요청, 희생자 추모대회 및 159배 등 배례는 물론 유족들이 직접 국회 일대를 돌며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진행하는 등 말 그대로 몸을 던진 투쟁이 이어졌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측이 공식적으로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윤 대통령에게 거부했을 땐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을 포함해 10명의 유족들이 삭발투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5일에도 서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여당을 겨냥 "왜 이렇게 우리를 피하는 것인가? 대통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의 면담 요청에 응답하지 않고 묵묵부답이었다. 과연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지적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지난해 2월, 3월, 10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또 이들은 애초 본인들이 요구해온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대를 고려, 그 같은 내용을 수정한 국회의장 중재안과 더불어민주당 측 수정안 등에도 동의했음에도 '정부여당이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 국회를 통과한 현재의 수정안마저도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하고 있다.

유가족들의 이 같은 비판이 무색하게도, 윤 대통령에게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국민의힘 측은 특별법 협상 국면부터 현행 특별법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유족들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현재의 특별법은 과도한 권한을 가진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게끔 하여 이른바 "참사의 정쟁화"를 유발하려는 목적이라는 게 국민의힘 측 주장의 요지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엔 특조위를 배제하고 유가족 지원 등에만 초점을 맞춘 새로운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자당의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건의 결정을 발표, 거부권 건의의 이유로 현행안의 법률 구조상 "공정한 조사 기대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탕, 3탕 기획조사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들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또한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에 대해 "사실상 야당이 완전히 장악하도록 돼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다만 국민의힘 측은 거부권 건의 이후 이어지고 있는 유가족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표명 없이 침묵하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에서 이 같은 여당의 태도를 겨냥 "이태원 참사에 대해 무책임으로 일관하던 윤석열 정권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진상규명마저 거부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정권을 향해 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태원 특별법은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조위 구성에 대해 '특별조사위원을 총 11명으로 하되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와 합의해 3명, 국회 내 각 교섭단체가 4명씩 위원을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과 관련 단체의 합의' 추천인원 3인이 결국 야권 추천 인사라고 보고 있고, 유족들은 최소한의 당사자성 확보를 위한 추천 인사라고 보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앞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윤석열 대통령 면담 공개 요청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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