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변화 이끄는 '전문경영인'… 위기 선제대응 백신 놓는다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2024. 1. 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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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기존 질서의 붕괴는 갑자기 발생하고
새 질서 선제적 준비해야 미래사업 선점"
계열사 중복사업 전수조사해 운영효율화
아침 7시 전 출근 근면성으로 조직 긴장감
SK

SK그룹 경영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신임 의장을 맡은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의 '광폭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펙스는 물론 SK그룹 전반적으로 발 빠른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펙스는 최근 사장단 회의인 '전략글로벌위원회 회의'를 격주 토요일에 열기로 했다. 지난해 말 수펙스 내 인원을 축소하며 운영 효율화에 나선 데 이어 조직을 정비하는 모습이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변화의 기조가 조직 전반에 퍼져 나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으로 꼽히는 최 의장은 지난해 12월 수펙스 의장으로 취임한 이후 부지런함과 솔선수범을 바탕으로 조직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최 의장은 연초에 임직원과의 미팅 자리에서 새로 의장을 맡은 뒤 소회와 다짐을 밝혔다. 최 의장은 올해를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기존 질서의 붕괴는 갑자기 발생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소에 철저한 준비가 중요하며, 시간이 지나면 선제적으로 준비해온 만큼 성공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최 의장은 위기를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미래 유망 분야를 선점해 꿋꿋이 나아가자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의장을 맡으면서 최태원 SK 회장과의 이른바 '사촌 경영'이 부각됐으나 최 의장은 전문경영인의 자세로 수펙스 사업을 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 의장은 "나는 전문경영인"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며 "외부에선 형제간 우의, 형제 경영을 얘기하지만 최태원 회장과는 엄격한 수직 관계"라고 강조한 바 있다.

최 의장은 근면성실한 태도로 임원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며, 아침 7시 전에 출근해 업무를 미리 꼼꼼하게 챙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 수펙스 계열 사업을 살펴보기 위해 늦게까지 서류를 보며 야근하고 있다고 한다.

최 의장이 아침 일찍 보고를 받다 보니 사장과 임원들도 아침형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최 의장과 SK 계열사 사장들이 수펙스 사장단 회의를 아침 7시에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여는 이 회의는 통상 9시에 시작했는데 최 의장이 취임한 후 2시간 일찍 열리게 됐다.

SK 관계자는 "최 의장은 SK바이오사이언스 백신 사업을 이끌었듯, 그룹에 예방주사를 놓아 조직의 건강을 선제적으로 유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 의장은 음주를 하지 않고 명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최근 경기 용인에서 진행된 SK그룹 신입사원 연수 현장을 찾아 "직장 생활은 술 안 먹어도 능력 있고 성실하면 된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최 의장은 외부에 보이는 것보다 실질적인 것을 중요시하고, 실사구시를 강조하며 의전과 격식에 얽매이는 것을 지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선 비서실장이나 비서팀장이 없고, 직원 한 명이 업무를 보조한다. 수펙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 SK 서린사옥에선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직원들과 함께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 시 이용하는 차량은 기아 카니발로, 고급 외제차를 타는 임원들 사이에선 "차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 의장이 솔선수범하며 자연스럽게 조직 전체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SK 관계자는 "최 의장이 연초 임직원 미팅 자리에서 발표한 자료는 전날 저녁까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펙스 임원들에게도 이같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최 의장은 최근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전부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계열사 간 겹치는 사업을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펙스와 SK(주)는 경쟁적으로 투자해 중복되는 신사업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SK그룹은 동박은 왓슨과 KCFT(현 SK넥실리스)에, 수소는 플러그파워와 블룸에너지 등에 지분을 투자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 의장이 교통 정리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SK디스커버리 대표를 겸직하고 있는 최 의장은 평소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라면 직원들이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경기 판교에 있는 SK가스 본사 1층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은 외부인에게도 개방되며 SK가스, SK케미칼 등 SK디스커버리 계열 임직원이 도서를 빌릴 수 있다.

이외에도 SK디스커버리그룹은 임직원을 위한 사내 인문학 강좌와 클래식 공연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우수 고과 대상자에게는 이탈리아 문화 탐방을 할 수 있는 '아레테'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같은 사내 프로그램 운영에는 인문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최 의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창원 의장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1994년 SK그룹 입사 △2011년~ SK가스 부회장 △2014년~ SK경영경제연구소 부회장 △2017년~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 △2023년~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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