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시커멓게 멍든 소방관들···10명 중 6명 ‘근골격계 이상 증세’ 실태조사
3년차 소방 구조대원인 허모씨(38)는 지난해 4월 체력 경연대회를 준비하다 허리를 다쳤다. 근무일·비번일 구분 없이 훈련을 해오느라 피로가 쌓였던 게 원인이 됐다. 숱한 현장, 자잘한 부상을 달고 다녔던 허씨는 처음에는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두 달 뒤인 지난해 6월 갑작스럽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추간판탈출증’이었다. 허씨는 지난 28일 통화에서 “디스크 손상은 완치가 안 된다고 한다. 조심조심 일할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또 다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소방본부 제주노조와 원진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지난해 10월부터 제주소방안전본부 소속 소방공무원 708명 대상으로 근골격계질환 종합 실태조사를 벌였다. 고인홍 전국공무원노조 제주소방지부장은 “그간 소방공무원의 근골격계 질환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자세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구급·구조대원 특성상 만성적인 근골격 질환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설문에 응답한 소방관의 61.4%는 “근골격계 이상 증세가 있다”고 했다. 이들 가운데 허리 부위 이상 증세를 언급한 응답자가 44.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어깨(29.6%), 무릎·다리 (28.4%) 순이었다. ‘심한 통증이 한 달에 일주일 이상 이어진다’고 응답한 이들은 7.5%였다.
고 지부장은 “4년 전까지만 해도 소방관 2명이 들것으로 여러 층을 오르내리며 환자를 이송해야 했다”면서 “지금은 3명이 한 조로 투입돼 환경이 좀 개선됐지만 오랫동안 누적된 업무 탓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했다.
15개 작업환경에 대해 실시한 근골격계질환 위험성 평가에서 개선 및 개입이 필요한 업무는 12개(80%)로 나타났다. ‘교통사고 차량 절단’ ‘피구조자 운반’ ‘화재 진압’ 등 활동이 특히 위험성이 큰 활동으로 꼽혔다. 허씨는 “기본적으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산악구조 활동 등은 불안정한 자세로 들것을 옮기는 경우가 많아 부상 위험이 크다”고 했다.
정신건강 조사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는 응답은 10.3%, ‘우울증을 겪는다’는 응답은 4.8%였다. ‘수면장애를 겪는다’는 응답도 22.3%에 달했다. 고 지부장도 과거 6개월가량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그는 “영유아 심정지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보면 잔상이 특히 오래 남는다. 또 현장에서 응급 처치 판단을 빠르게 내려야 할 때의 부담감도 크다”면서 “‘내 판단 때문에 환자가 악화됐나’ 싶을 때는 죄책감이 심하다”고 했다.
이들은 정형화가 어려운 소방작업 특성상 누적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팀장은 “소방대원 업무가 순간적으로 큰 힘을 요구하는 작업이 많다 보니 한 번의 조사로 업무강도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실태조사 빈도를 늘려 누적평가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고 지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 수 50인 이상 사업장에는 안전·보건관리자가 있어야 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는다. 사전에 안전 모니터링을 할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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