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과·알·세] 풀리는 출연硏 `기타공공기관` 족쇄… `성배`일까 `독배`될까
인건비·채용 등 자율성 '한계'
후속조치 없을땐 새 규제 우려
운영 관련 법· 제도 마련 시급
"성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독배가 될 것인가."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16년 간 숙원이자 현안으로 꼽혀온 '기타공공기관 지정 해제' 결정을 앞두고 과학기술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된 족쇄가 풀리면 이전과 달리 기관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해 R&D 기관다운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다만, 기타공공기관 해제 이후 정부가 내놓는 관리 감독 방안이 또다른 새로운 규제로 이어질 수 있고, 관리 주체가 기획재정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바뀔 경우 출연연 소관 부처의 권한이 한층 강화돼 오히려 규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기타공공기관 해제 시 출연연 기관평가 주기를 3년에서 1년 단위로 바꾸는 방안이 부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져 새로운 규제에 대한 연구현장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선 기타공공기관 해제에 따른 철저한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출연연에 성배가 아닌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출연연 옥죈 '공운법'이 뭐길래
출연연들은 정부의 '기타공공기관 해제' 논의에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출연연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근거해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관리 감독해 왔다.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구분하는데, 출연연은 연구기관 특수성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대학병원, 강원랜드 등과 같은 기타공공기관에 속해 이들 기관과 동일한 잣대로 인건비, 정원, 채용, 평가 기준을 적용 받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성이 한계를 느낀 출연연의 우수 인재들이 대학이나 기업 등으로 이직하고, 국내외 우수 인력의 채용에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연구기관 특수성을 반영해 달라며 정부에 기타공공기관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그 결과 2018년 출연연을 '연구개발목적기관'으로 따로 분류하는 공운법 개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공운법 개정 이후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출연연 기관 운영은 이전과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만이 기타공공기관에서 해제되면서 출연연에서도 해제해 달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대통령 지시로 논의 탄력…기대와 환영 '만발'
올 들어 출연연 기타공공기관 해제가 급물살을 탄 발단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간위원 오찬 간담회에서 출연연 원장의 건의에 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개선을 주문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관계부처인 기재부와 과기정통부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검토작업에 나섰고, 과기정통부는 최근 '출연연 공공기관 지정 해제 시 개선사항 및 관리방안'을 25개 출연연에 전달해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출연연 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연총)와 과학기술 관련 노조 단체 등 7개 단체가 기타공공기관 해제에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연총은 "공운법은 그동안 출연연의 자율성을 해치는 족쇄로 작용해 와 지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며 "출연연의 발전을 위한 규제 혁신의 일환으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공운법 적용 해제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공공과학기술혁신협의회도 입장문을 통해 "출연연은 2007년 공운법 지정 이후 실익 없는 이중규제로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 발현을 막은 거대한 규제 덩어리였기에 줄곧 개선을 요구해 왔다"며 "지정 해제 결정이 자율과 책임의 연구개발 몰입환경 회복으로 국가 과학기술 선진화 이행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도 성명에서 "출연연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환영한다"고 했다. 공공연구노조는 "출연연이 공공기관에서 지정 해제되는 것은 향후 더 나은 개선을 위한 첫 걸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구체적 법·제도 마련 '절실'…새 규제 틀 갇힐 수도
출연연 연구현장의 환영과 기대에도 일각에서는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출연연 공공기관 지정 해제 후속 조치가 형식적으로 그칠 경우 이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또다른 규제의 파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4대 과학기술원은 총액 인건비 규제에서 벗어나지 못해 기대했던 만큼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소관 부처인 과기정통부 역시 4대 과기원에 대한 별도의 관리 방안을 세부적으로 마련하지 않아 이전과 달라진 면모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
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는 "형식적으로 출연연을 공운법에서 지정 해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목적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등 별도 법령을 제정하고, 과기정출연법의 세부 시행령을 제정하는 등 출연연의 안정적인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법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충분한 후속 조치 없이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이뤄질 경우 오히려 출연연을 또다른 규제로 옭아매는 독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 부처는 출연연의 기관 평가 주기를 1년 단위로 앞당겨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계 한 관계자는 "공운법에서 출연연이 제외되면 과기정출연법에 적용을 받아야 하는데, 출연연은 여전히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기관에 속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새로운 평가체계를 만들어 적용받아야 한다"면서 "이런 준비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자칫 지금보다 한층 강화된 새로운 규제 틀 속에 갇힐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오는 3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출연연의 기타공공기관 지정 해제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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