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귤이 이어준 바다 건너 내 친구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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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면 기다리는 못난이귤이 있다.
귤은 껍질이 단단하게 과육에 달라붙어 있어 까먹을 때 손톱이 빠질세라 애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껍질을 다 까기도 전에 퍼지는 향긋한 내음에 군침이 고이고, 마침내 귤알을 한입 깨물면 톡 터지는 과육이 새콤달콤하게 입에서 녹는다.
껍질조차 버리기 아까운 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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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해마다 겨울이면 기다리는 못난이귤이 있다. 귤은 껍질이 단단하게 과육에 달라붙어 있어 까먹을 때 손톱이 빠질세라 애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껍질을 다 까기도 전에 퍼지는 향긋한 내음에 군침이 고이고, 마침내 귤알을 한입 깨물면 톡 터지는 과육이 새콤달콤하게 입에서 녹는다. 껍질조차 버리기 아까운 귤이다. 잘 말린 껍질은 겨우내 우리 식구의 감기를 예방하는 진피차가 된다.
이 귤은 노지에서 자랐다. 화학비료를 전혀 먹지 않아서 관행농 귤보다 수확량이 적다고 한다. 제초제나 살충제 같은 농약 없이 자라기 때문에 새들도 온갖 벌레들도 맛을 먼저 알고 반긴다. 그러니 사람 눈엔 흠집투성이 귤이 된다. 나무가 고유한 성장의 속도 대로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란 새들도 벌레들도 깃들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런 귤은 제주의 햇볕과 바람, 눈과 비에 마음을 기대고 새나 벌레들과 협상해 가며 농사짓는 농민들 덕분에 나에게 온다. 7년 전쯤 제주도로 귀농해 농사짓는 젊은 부부와 이 귤로 연을 맺었다. 귤을 주문했더니 못난이귤과 함께 귤나무 잎을 붙인 편지가 왔다. 편지 맨 위에는 귤나무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위에는 “노랑노랑 깊어가는 겨울”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 서울에 살 땐 나도 겨울을 묘사하라면 허허로운 빈 들판 어쩌구 했겠지. 그런데 남도에 살고 보니, 이곳 고흥만 해도 한참 자라는 마늘과 양파로 겨울은 푸릇푸릇 깊어간다. 그런데 제주의 겨울은 노랑노랑 깊어가는 구나. 선과기도 없이 귤을 골라 크기가 개성 있을 거라며 그래도 정성껏 농사지었으니 맛있게 드셔주면 좋겠다고 쓰인 편지에선 젊은 농민들의 염려도 읽혔다. 벌레가 반긴 자국을 흠이라 여기진 않을까, 들쭉날쭉한 크기에 상품성 없는 귤을 보냈다고 오해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
그 편지는 색채 찬란한 애니메이션처럼 제주의 겨울을 내 머릿속에 펼쳐주었지만, 한편으론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한해 동안 구슬땀은 얼마나 흘렸을까? 예상하기 힘들어진 날씨에 마음은 얼마나 졸였을까? 이런 귤 몇키로를 팔아야 이 농민들은 농사로 먹고살 수 있을까? 수확철이면 일손이 모자라 쩔쩔맬 텐데, 그 와중에 이런 편지까지 쓰는 정성을 기대하는 건 소비자의 과한 욕심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진 않은가 보다. 세상엔 두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귤껍질에 벌레 먹은 흔적을 보면 안전한 농산물이라고 오히려 안심하는 사람과 인상을 찌푸리거나 심지어 이따위 귤을 보냈다고 불평하며 반품하는 사람. 이른바 상품성이 없는 귤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다른 생명은 다 죽이고 자라는 나무들은 더 많은 양의 귤을 생산해내지만, 맛도 향도 싱거워지기 마련이다. 농약 때문에 새들도 벌레들도 깃들지 못하니 흠집 없이 깨끗하다. 게다가 왁스로 코팅하고 왁스를 말리기 위해 약간의 열처리를 하니 껍질이 잘 마르지 않아 과육에서 들떠 까기도 쉽고 반들반들하다. 귤이 말랑말랑한 건 유통과정에서 시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귤이라야 좋은 귤인 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공산품은 잘만 질러대는 사람들이 농산물은 유기농이라면 일단 비싸다고들 한다.
인간이 인간 이외의 종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인간이 다른 인간과 어떻게 관계 맺고 살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단지 상품이 된 생명들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먹고 먹히는 세상과 먹고 먹이는 세상은 천지 차이다. 못난이귤로 이어진 인연 덕분에 나는 이제 제주의 날씨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제주도에도 내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들이 있다. 너무 빠르고 가벼운 이 시대에 느리고 좀 모자란 사람으로 뚜벅이처럼, 거북이처럼 걸어가겠다는 젊은 친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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