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ETF , 상장 성공했지만 본질적 리스크는 그대로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4. 1. 2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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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현물 ETF 둘러싼 오해와 진실
소송에 패해 상장 승인했으나 높은 변동성 여전히 부담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승인을 받고 거래를 시작했다. 11개 자산운용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면서 보유한 증권계좌를 통해 비트코인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코인 거래소를 통할 필요도,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에 보관할 필요도 없다. 비트코인을 실제로 소유하는 건 ETF 운용사며 운용사들은 SEC의 감독 아래 있기 때문에 설사 파산한다고 해도 투자자들 자산은 보호된다. 투자 장벽은 낮아지고 보호장치는 강화된 셈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을 승인한 가운데 1월1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강남센터 내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비트코인 현물 ETF 잇단 상장 주목

시장에서는 개인은 물론이고,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도 비트코인을 투자 대상으로 고려하기 쉬워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SEC 결정에 대해 "비트코인은 확실히 하나의 투자 대상으로 자리 잡은 것 같고, 투자자산으로서 가치와 안정성을 시험해볼 시기"라고 했다. SEC는 승인을 발표하면서 현물 ETF 대신 현물 상장지수상품(ETP)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앞으로 ETF에 이어 ETN(상장지수증권)도 상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은 세계 최대 자본시장에서 제도권 자산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자.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이 화폐로 기능할 가능성까지 높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매우 큰 변동성으로 안정적인 결제 수단이 되기에는 위험한 투자자산이다. SEC가 승인한 계기를 봐도 시장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원래 SEC는 암호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2013년부터 11년 동안 20건 이상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이 있었지만 모두 승인을 거부하기도 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의 지난해 판결 때문이었다. 2021년 유명 투자사인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은 자신이 운용하던 비트코인 투자용 비상장 펀드(GBTC)를 비트코인 현물 ETF로 전환하겠다는 신청서를 SEC에 제출했다. SEC는 그러나 전환 신청을 반려했고, 그레이스케일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중요한 것은 미국에는 이미 2021년 10월부터 비트코인 선물 ETF가 승인을 받아 출시돼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그동안 ETF 시장을 선물과 현물로 나눠 차별적인 규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선물 ETF는 승인하면서 현물 ETF를 승인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기와 시장조작 가능성' 등을 들었다. 하지만 선물은 시장 감시와 투자자 보호가 되는데 현물은 안 된다는 설명을 합리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레이스케일은 선물로 운용하는 비트코인 ETF는 승인하면서, 유사한 상품 설계를 가진 현물로 운용하는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지 않는 것은 '자의적이고 일관되지 못한 결정'이라고 주장했고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결국, SEC가 이번에 현물 ETF 상장을 승인한 것은, 오로지 소송에서 졌고 소송을 계속하거나 이기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미국 증권 당국은 여전히 가상자산을 위험하다고 보면서 심한 변동성을 우려한다. 비트코인은 물론 비트코인 연계 상품도 투자자 보호를 담보할 수 없다는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개리 겐슬러(Gary Gensler) SEC 위원장도 성명을 통해 "이번에 현물 ETF 상장을 승인한 계기는 소송에서 패했기 때문이고 상장을 승인하지만, 비트코인을 인정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비트코인은 투기적이고, 가격 변동이 크며, 자금 세탁, 경제 제재 회피 등 불법 활동에 활용되고 있는 점 등에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듭 밝혔다.

내키지 않는 승인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길게 한 셈이다. SEC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차라리 상장 승인을 통해 증권 거래 관련 규제 아래 두는 것이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월가에서는 SEC가 상장을 신청한 투자사들과 사전에 신청 내용을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물밑 절충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미국 시장에서 현물 ETF 상장이 승인됐다고 해서 암호자산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든,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든 투자자가 높은 변동성에 노출된다는 점은 같다. 내재적 가치가 명확하지 않고, 이에 따라 변동성이 이례적으로 크다는 본질적인 특성은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여전히 자산운용사 뱅가드 같은 곳은 고객의 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며 비트코인 ETF나 관련 자산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감독 당국과 시장의 '동상이몽'

심지어 현물 ETF 상장을 승인받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이번에 제출한 상장 승인 신청서에서 "극단적인 가격 변동성 등 비트코인 자체가 가지는 위험에 더해 ETF 계약의 설정, 해약 등을 담당하는 참가자들이 거래를 조작할 가능성도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암호자산에 대한 SEC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트코인 외에 다른 암호자산들의 상장도 기대하는 만큼 순조롭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이더리움(Ethureum)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뒤를 이을 다음 주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SEC 측은 위원회의 조치가 비트코인에 한정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암호자산 증권에 대한 상장 기준을 승인할 의향이 있다는 신호는 결코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상황이 조금 달라진 것은 맞지만 미국의 증권감독 당국과 암호자산 시장 참가자들 간 동상이몽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사정은 미국과 다르다. 국내 금융 당국은 관련 법 개정이 없는 한, 미국 증시에 상장된 현물 ETF 상품을 국내에서는 거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가상자산에 대한 기존의 정부 입장이나 자본시장법에 어긋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투자 중개 상품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상황이 달라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장은 해외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를 차단했지만,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차단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비트코인 현물 거래는 허용하면서 ETF는 막는다는 게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알고 보면 다른 나라의 비트코인 ETF 상장이 처음인 것도 아니다. 3년 전인 2021년 2월 캐나다를 시작으로 독일과 호주, 그리고 브라질 등에서 비트코인 ETF가 제도권에 이미 입성했다. 물론 우리 현실에서 지금 당장은 한국 투자자가 미국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게 그다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 환전 수수료도 들고, 차익의 22%는 세금으로 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가상자산 과세가 2025년으로 미뤄져 있다. 올해 안에 사고팔 생각이라면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냥 비트코인 실물에 투자하는 게 낫겠다.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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