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롤 모델 필요 없어… 나만의 삶 살아라” [엄형준의 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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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 출연,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아카데미상을 받은 후) 시나리오가 많이는 아니지만 제 나이나 평소보다 많이 들어왔는데 제가 주인공이고 젊은 사람들하고 뛰고 그러는 건데, 인생을 많이 산 사람으로서 씁쓸했어요. 그 상을 탔다고 갑자기 주인공으로 이렇게 등급을 높여 주는 건가. 사람 참 간사하다고 나는 나대로 살리라 그랬는데, 역할 좋고, 감독 좋고, 시나리오도 좋고 그런 건 없어요. (도그 데이즈를 연출한) 김덕민 감독은 조연출 때 만났는데, 김 감독도 '노바디'(별 볼 일 없는 처지), 저도 '노바디'로 전우애가 생겼고, 김 감독이 데뷔하면 나는 하리라 결심을 했고, 그래서 출연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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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오스카 수상 배우인 윤여정은 자신을 롤 모델로 삼는 후배들을 향해 이렇게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그는 평소에 연기 후배들에게 조언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 출연,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이후 3년 만의 영화 출연작인 ‘도그 데이즈’의 다음 달 7일 개봉을 앞두고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직설 화법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놨다.
“친절한 것과 비굴한 게 다른데, 우리는 친절·비굴이 같이 갈 때가 있어요. 난 비굴해지고 싶지는 않다고. 감독한테 잘 보여서 뽑혀야 하고 그런 거 싫다고. 내가 잘해서 나를 필요로 해서.” 누구를 닮는 게 아닌, 나다움을 강조한 윤여정이 연기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존감’이었다. 윤여정은 지난해 6월까지 애플TV플러스 시리즈 ‘파친코’를 촬영했는데, 자존감 있는 여자를 표현하고 싶은 욕심에 재일조선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노년의 ‘선자’ 배역에 지원했다고 한다.
파친코 출연을 확정한 건 아카데미상 수상 전으로, 이번 영화가 사실상 오스카 이후 윤여정의 첫 작품이다. 이번 역할은 어떻게 맡게 됐을까.
덧붙이자면 그는 작품을 선택할 때 사람, 시나리오, 돈 중 하나만 생각하고,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에 상관없이 ‘사람’만 보고 한 선택이라고 한다.
윤여정이 이번에 맡은 역할은 까칠한 성격의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로, 단둘이 사는 반려견 ‘완다’를 잃어버리면서 젊은 배달 라이더인 ‘진우’(탕준상)와 얽힌다. 민서는 진우나 동물병원 건물주인 ‘민상’(유해진) 등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역할로 윤여정의 성격을 투영한 듯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는 배역의 이름까지 민서가 아닌 윤여정으로 돼 있었다고 한다. 그와 성격이 닮았을 수 있지만, 이 완고한 배우는 애드리브 없이 작가가 쓴 대사 그대로 연기했다고 한다.
“저는 대사를 수정하는 배우나 애드리브 많이 하는 배우들을 개인적으로 싫어합니다. 옛날에 텔레비전 할 때는 소설가 같은 분들이 (대본을) 쓰셨는데, 살얼음판 같은 시절이기 때문에, 그렇게 애드리브를 한다거나 그런 건 있을 수도 없죠. 작가들이 대사를 쓸 때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쓰고 했겠어요. 그리고 김수현 선생 드라마로 훈련받은 배우들은 절대로 애드리브 안 합니다. 하면 큰일 납니다.”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해선 “그건 거의 불가사의한 일이었던 거 같다”고 했다.
“지름길은 없는 거 같더라고요. 타고난 배우들 있죠. 미모를 타고났다거나, 그거는 다 없어질 수 있어요. 유지하는 건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을 거 같아요. 난 그게 제일 좋은 명언인 거 같아요. 브로드웨이에 어떻게 가냐고 길을 물었다잖아요. ‘하우 투 겟 투 더 브로드웨이’ (답은) ‘프랙티스’, 연습하라고. 재주는 잠깐 빛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유지하는 건 열심히 안 하면 (불가능하죠).”
77세의 윤여정이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올까. 주 2∼3회 빠지지 않고 트레이너와 운동을 하며 체력 관리를 하고 있다는 윤여정에게 연기는 이제 ‘일상’이 됐다고 한다.
“일상을 못 살면 사람이 죽는 거잖아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제일 행복한 죽음은 자기 일을 하다가 죽는 거래요. 나한테는 연기가 일상이 됐겠죠. 자기 일상을 살다가 죽는 것이 제일 행복한 죽음이라고, 그러더라고.”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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