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재능 없다”는 ‘오스카 위너’ 윤여정…“성실함 덕에 지금까지 연기”
"'그것만이 내 세상' 인연에 '전우애'로 출연"
"제가 롤모델? 모두 각자의 모습 보여주면 돼"
말투는 여전히 심드렁했다. 무심한 듯 말하면서 핵심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유머가 배어 있었고, 인간미가 스며 있었다. 지난 26일 배우 윤여정(77)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미나리’(2020)로 2021년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배우상(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국내 언론과는 첫 인터뷰였다. 그는 다음 달 7일 개봉하는 ‘도그데이즈’로 한국 영화계에 복귀했다.
"모든 게 좋을 순 없어... 이번엔 사람 보고 출연"
윤여정은 오스카를 받은 후 “제 나이에 비하면 예전보다”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역할과 시나리오와 감독이 모두 좋은 경우”는 없다. 윤여정은 “그때그때 사람이나 시나리오를 보거나 돈을 벌겠다는 기준을 정하고 출연작을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그데이즈’ 출연엔 김덕민 감독과의 “전우애”가 작용했다. 윤여정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 때 (조연출이었던) 김 감독도, 저도 노바디(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여서 그가 감독 데뷔하면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19년이나 영화계 있으면서도 감독이 못 됐다고 하니 제가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미나리’도 사람에 끌려 출연했다. “정이삭 감독이 너무 고생하니 도와주고 싶어 함께했고, 영화가 잘돼 제 아들 일처럼 기뻤다”고 돌아봤다. “정 감독 아버지가 '아들 둘 있으신 분이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뺏어가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윤여정은 정 감독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그려낸다. 김윤진과 유해진, 김서형, 탕준상, 다니엘 헤니 등이 출연한다. 윤여정은 저택에서 반려견과 외로이 지내는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를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역할 이름은 ‘윤여정’이었다. 김 감독이 윤여정을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윤여정은 “(제작자) 윤제균 감독이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며 “‘선생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며 시나리오를 읽어보라 했다”고 말했다.
"미국 영화 출연 적극 검토했다가 무산"
오스카 상을 받으면서 미국 영화 출연 제안이 많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할 생각”은 있다. 최근에는 비올라 데이비스가 주연인 영화 ‘G20’ 출연을 적극 검토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테러 위협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한국 대통령 부인 역할을 제안받았다. “‘파친코’ 촬영이 끝난 직후 촬영 개시라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해 포기했지요.”
윤여정은 지난해 6월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시즌2 촬영을 마쳤다. 그는 “이 나이에 외국에 왔다 갔다 하며 촬영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며 “계속 쉬어야 했고, 건강검진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오스카 위너’의 위상을 실감한다. “식사 한번 하려 해도 ‘오스카 위너’니까 어떻게 주문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쉴 때는 “집에서 미라처럼 있다”. 65세 때부터 시작한 운동이 활력소다. “일주일에 두세 번 하는데, 트레이너가 자신이 지도하는 사람 중 가장 성실하다”고 할 정도로 열심이다. 윤여정은 “지인들과 와인 마시며 스트레스를 푼다”면서도 “나이 들수록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들면 주변 사람에게 기대가 크고 실망도 크기 마련”이라는 이유에서다.
"쉴 때는 집에서 미라처럼... 자존감 지키려 해"
1966년 방송국 탤런트 공채로 연기에 입문한 지 58년. “남들과 달리 독특해서 뽑혔다는 생각”에 “열등감이 있었다”. 오래 현장을 떠났다가 복귀한 점도 마음에 걸렸다. 윤여정은 “잘나가던 삼성 임원이라고 해도 그만두고 10년 뒤 돌아오면 재입사할 수 없다”며 “연기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게 고마웠고 더 열심히 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능보다 성실함 덕분에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자신을 롤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후배가 많다는 말에 “부담스럽다”며 “저는 '롤모델이 필요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때는 모두 김혜자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했는데, 저는 그때 ‘대한민국에선 김혜자 한 분만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돼야지, 윤여정은 윤여정 연기를 해야지’라고 말했어요. 후배들에게 조언이요? 제가 그럴 위치인가요?”
윤여정은 배우 활동을 하며 “디그니티(Dignity), 자존감을 지키려 한다”고 했다. 그는 “비굴해지고 싶지 않다”며 “감독에게는 연기로 잘 보여 캐스팅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기가 가장 힘들 때는 “서로 안 맞는 감독과 함께 일할 때”다. 그는 “주인공 선자에 자존감을 담아 연기하고 싶어 ‘파친코’에 출연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차기작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선택한” 영화가 될 듯하다. “감독을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으나 노인들의 이야기를 밝고 건강하게 그려낸 점이 좋아 반쯤 결정”했다. 활동 폭을 미국으로까지 넓힌 배우답지 않게 독립영화다. 윤여정은 최근 한국 영화가 부진한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작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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