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영건설 하청업체 보호하는 발주자가 태영?…정부가 숨긴 폭탄[위기의 건설업②]

윤지원·김경민 기자 2024. 1. 2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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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하도급계약 1057건 중 직불합의 283건
사업장 25%, 발주자 태영건설 및 태영 종속기업
건설공제조합 보증 중복 가입 안 해 '미납' 가능성
공동시행사 있어도 대금 지급 원활하지 않을 수도
태영건설이 시공 중인 서울 성동구 용답동 청년주택 개발사업 공사장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들과 현장 노동자들이 8일 태영건설 측에 임금체불 문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01.08 권도현 기자
건설공제조합의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가입 또는 발주자 직불합의가 되어있어, 원도급사 부실화 등으로 협력업체가 하도급대금을 받지 못할 경우 보증기관 등을 통해 대신 하도급대금을 지급 받을 수 있다.
- 2023년 12월 28일 금융위원회 주관 정부부처 합동 보도자료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대금을 못받는 하도급사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금융당국,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는 그간 선을 그어왔다. 이미 하도급사를 보호하는 장치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근거로 하도급계약 96%가 건설공제조합 보증에 가입됐거나, 발주자가 직접 대급을 지급하도록 만든 발주자 직불합의를 체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불합의가 체결된 사업장 중 태영건설이 발주자인 경우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 상황에서 대금을 대신 물어줄 제3의 발주자가 사실상 없는 것으로, 이 계약은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

28일 경향신문이 국토교통부 취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태영건설이 체결한 하도급계약 1057건 중 건설공제조합 보증 건수는 774건, 발주자 직불합의가 체결된 계약은 283건이다. 직불합의 283건이 체결된 하도급 현장은 총 63곳인데 이중 25%인 최소 16곳은 태영건설이 직접 발주한 자체사업장(4건)이거나 태영건설이 지분을 가진 종속기업 및 계열사가 발주한 사업장(12건)으로 나타났다.

직불합의는 건설 사업장에서 원도급사가 지급정지 및 파산을 해 공사 대금을 하도급사에 지급하지 못할 때 발주자가 직접 대금을 지급하게 하는 일종의 보호장치다. 통상 직불합의를 체결한 하도급업체는 건설공제조합 보증 상품에 중복 가입하지 않는다. 때문에 발주자도, 원도급사도 태영인 사업장에서 직불합의 계약만 믿고 있는 하도급사는 대금 미납 가능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선분양이 안되고, 공사 진행율이 낮은 사업장일수록 부실 위험이 크다. A건설사 관계자는 “통상 80%가 분양되면 전체 공사대금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금을 못받을 위험은 낮다”면서 “반대로 후분양이거나 분양에 실패한 사업장 중 공정률까지 낮은 경우는 원도급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공사가 중단되거나 연기돼 대금이 유예되고 미납될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의 경우는 부산항 신항 웅동지구 1종 항만배후단지 개발 사업장 및 대구 신천동 동부정류장 주상복합 사업이 향후 공정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신항 웅동지구 사업장은 이달 15일 기준 공정률이 11.6%, 신천동 사업장은 공정률 50%대다. 두 사업장 모두 선분양이 아니다. 신항 웅동지구는 이달 기준 총 982억원(6건) 규모 하도급 계약이 체결됐고 이중 직불합의 계약이 포함됐다. 신천동 역시 직불합의가 체결된 사업장으로 이미 이 단지는 골조공정 대금이 밀려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신항 운동지구는 PF자금이 없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 “워크아웃 개시 이후 PF대주단이 운동지구를 포함한 모든 사업장을 검토하는 만큼 추후 관련 절차를 따를 것이고 미지급된 노무비는 설 연휴 전에 최대한 지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태영 받을 채권에 압류 붙어 하도급사 위험”

국토부 관계자는 경향신문 취재에 “발주자가 태영건설이라도 공동 시행사가 있는 경우가 많아 대금 지급이 안 될 위험은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동시행사가 포스코건설인 양산사송과 SK디앤디가 공동시행하는 생각공장 구로 사업장 등을 제외하면 공동시행사가 태영건설보다 훨씬 영세하거나 태영과 지분 등으로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신천동 사업장의 시행사 대동개발은 지난해 4월 감사보고서를 보면 당기순손실 243억원을 기록했고, 태영건설이 지분 19.8%를 보유하고 있다. 공동시행사가 별도로 있더라도 대금 위기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조계에선 설령 태영 외 다른 대형건설사가 발주자라고 하더라도, 하도급사의 대금 지급이 현실적으로 원할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2007년 대법원은 발주자가 원도급사에게 줄 대금이 남아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하청업체가 발주자로부터 대금을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건설분쟁 전문 최은영 변호사는 “이미 태영이 발주자에게 공사대금을 받아갔다면, 발주자는 태영에게 줄 채권이 없기 때문에 하도급사에게 이중변제를 할 의무가 없다”면서 “태영이 받을 기성대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각종 채권자들의 압류가 들어오면 하도급사 대금이 선순위 채권이 아닌이상 지급이 안되거나 밀릴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 볼 때 지난 12월 정부가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하도급사에 미칠 영향을 과소 평가해 발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건설업계는 이미 자체적으로 태영건설 하도급사 부실 위험 분석에 들어가기도 했다. B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태영건설 하도급 전문건설사 대부분이 다른 시공사 공사 현장에서도 일하는만큼, 태영 현장에서 생길 하도급사 위험을 자체적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발주자 직불합의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실장은 “건설산업기본법은 발주처-원도급사-하도급사가 각각 달라야 직불합의를 체결할 수 있지만 하도급법은 원도급사와 발주처가 같아도 직불합의가 가능하다”며 “하도급사를 보호하려는 애초의 법률 의도와 달리 허점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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