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도면 유출 맞나… 해외 도피에 수사는 `속수무책`
한화오션 "군사기밀 아냐" 반박
유출방법·보안관련 의문 여전
방산업계, 재발방지 대책 촉구
이달 초 전직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직원 A씨 등 2명이 잠수함 설계 도면을 해외로 유출한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관련 피의자들이 해외로 도피한 이후 수사에 진척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송환 요청을 하려면 구체적인 혐의점이 나와야 하는데, 빼간 기술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해외로 유출됐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방산업계에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정부 차원의 빠른 진상규명과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경남지방경찰청 한 관계자는 "(잠수함 도면 유출과 관련해)수사에 크게 진척은 없다"며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언급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관련자들이 해외에 있어 수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부연했다. 지난 5일 경남경찰청이 전직 대우조선해양 직원 A씨 등 2명을 내부 기술을 대만에 유출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에 들어갔지만, 피의자를 소환할 방법이 없다 보니 수사도 멈춰있다.
당초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도면은 과거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인도네시아로부터 11억달러(약 1조4393억원)에 3척을 수주한 'DSME1400' 모델로 전해졌다. 이달 초 대만 내 친중 성향의 국회의원이 옛 대우조선해양의 설계 도면이 대만국제조선공사(CSBC)의 주요 관계자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주타이베이 대한민국 대표부에 알린 것이다.
이를 두고 방산업계에서는 군사기밀 여부와 무관하게 최근 이어지는 기술 유출 논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잠수함 설계도면 유출 논란 역시,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해외로 유출됐는지를 수사당국이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잠수함 도면 유출과 관련한 논란을 해소하려면 한화오션이 자체 보안 감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방사청도 합동보안감사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경찰 수사를 통해서 진상을 신속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경찰 측과 한화오션이 함께 도면을 확인한 결과 해당 도면은 옛 대우조선해양의 'DSME1400' 도면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오션 측은 "해당 도면은 인도네시아가 1970년대 말 독일로부터 수입한 독일 잠수함 도면"이라며 "방산기술 및 군사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경찰 측도 "독일 잠수함 도면이 맞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 측은 해당 도면이 회사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해당 건과 관련하여 군사기밀·방위산업기술 유출 혐의점은 국가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이 확인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한화오션은 군사기밀·방위산업기술 보호에는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국가정보기관 등과 상시적인 공조와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회사는 또 해당 건이 2019년부터 관계기관과 협조해 수사하고 있는 사안으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여타 수사 대상자들은 현재 기소중지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도 해당 문제를 두고 비판에 나서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은 울산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앞서 한화오션은 이미 세 차례 해킹 사고가 발생한 전력이 있지만 당시 진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며 "이번 대만 잠수함 설계 도면 유출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관계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술 유출이 지금도 산업계 현장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막아야 하는 사법당국의 대응은 너무 안이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검찰은 지난해 10월 최소 3000억원대 가치를 지닌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 관련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은 전직 삼성 수석연구원을 구속 기소했는데, 수사에만 약 3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신속하고 엄정한 일벌백계 처벌이 없는 한 국가안보와 첨단기술 유출 사례는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 양형위는 지난 19일 국가핵심기술 등을 국외로 유출한 범죄에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 권고안을 마련하긴 했지만, 전문성 있는 재판부의 부재 등 현실을 고려하면 실효성은 아직 미지수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상현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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