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인 10명 중 2명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한국 직장인들이 전반적으로 가벼운 우울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노동시장 내의 약자들일수록 증상의 정도가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10명 중 2명은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 비율 기준에 따라 진행한 정신상태 점검 설문조사 결과를 28일 공개했다.
설문 결과를 보면 한국 직장인들의 우울 척도 평균점수는 5.62점으로 '가벼운 우울증상'에 해당했다. 해당 조사는 9개 문항의 응답 점수를 합산해 0~4점을 '우울증상 없음'으로, 5~9점을 '가벼운 우울증상'으로, 10~19점을 '중간 정도의 우울증 의심'으로, 20~27점을 '심한 우울증 의심'으로 판별한다.
응답자들은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여부에 따라 우울척도 점수에 차이를 보였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하지 않은 응답자들의 우울 척도 평균 점수는 4.64점이었던 반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들의 우울 척도 평균 점수는 8.23점에 달해 오차범위 이상의 격차를 기록했다.
고위험군 우울증을 판별하는 질문인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자해할 생각을 했다'와 같은 질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자가 0.48점, 비 경험자가 0.24점으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전체 응답자 중 지난 2주간 적어도 이틀 이상 그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비율은 20%에 달했다. 직장인 10명 중 2명은 본인의 현 상황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자해를 생각하는 정도의 심각한 우울 증상을 보인 셈이다.
고용형태, 직장규모, 임금수준 등 노동조건과 일터에서의 '낮은 지위'도 우울 척도 응답률에 영향을 미쳤다. 정규직보단 비정규직이, 3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나 공공기관 노동자보단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더 심한 우울증상을 보였다.
고용형태별 응답률 차이를 보면, 특히 지난 2주간 '내가 잘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신과 가족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했다'는 질문에 대해 그런 적이 있다고 답한 정규직은 34.7%에 그친 반면, 같은 대답을 남긴 비정규직은 50.3%에 달했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정규직 45.5%, 59.3%),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자해할 생각을 했다'(정규직 14.6%, 비정규직 28%) 등 문항에서도 비정규직의 응답은 정규직보다 1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직장 규모별로도 응답률에 차이가 나타났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는 질문에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61.2%가 해당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나, 300인 이상 사업장(44.3%)이나 공공기관(37.4%)에선 응답률이 다소 줄었다.
'내가 잘못했거나,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신과 가족을 실망시켰다고 생각했다'(5인 미만 49.2%, 300인 이상 33.3%, 공공기관 33.8%), '평소보다 식욕이 줄었다, 혹은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5인 미만 51.9%, 300인 이상 40.3%, 공공기관 30.9%) 등의 문항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응답이 300인 이상 및 공공기관 노동자 보다 1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외에도 △연령이 낮거나 △임금수준이 낮거나 △근속연수가 짧은 응답자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높은 우울경험 응답률을 보여줬다.
특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자해할 생각을 했다' 문항에 동의한 비율을 살펴보면 △20대는 31.3%, 50대는 15% △현직장 근로기간 1개월 미만은 36.9%, 현직장 근로기간 5년 이상은 11.5% △월 급여 150만 원 미만은 27.4%, 월 급여 500만원 이상은 13.8% 등으로 연령, 근속연수, 임금수준 등에 따른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 측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고용형태가 불안할수록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이후 신고 및 신고 이후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더 큰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가 많다"며 노동 취약계층이 처해 있는 '우울증상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5인 미만 사업장, 특수·간접고용 노동자 등으롞지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원청회사 단체교섭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기 위한 노란봉투법 재추진(노조법 2·3조 개정) 등을 제도적인 해결방안으로 꼽았다.
직장갑질119 김유경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에도 피해 근로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직장 내 괴롭힘은 한 직장인의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심각한 경우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재확인됐다"며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우울척도가 더 높은 만큼 법 사각지대를 하루속히 없애는 법·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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