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 폼 미친 '밤에 피는 꽃', 원톱 이하늬만 믿는 게 아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1. 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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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피는 꽃’, 술술 풀어 확실히 세워진 대립구도

[엔터미디어=정덕현] 이것이 바로 빌드업 드라마의 묘미일까. 과부와 하인이 정분이 난 사건 하나인 줄 알았는데, 술술 풀어나가더니 드라마 전체의 확실한 대립구도가 세워졌다. MBC 금토드라마 <밤에 피는 꽃>은 이로써 앞으로 펼쳐질 사건 전개가 더 팽팽해지고 쫄깃해질 거라는 기대감이 만들어졌다.

사건의 시작은 '남녀상열지사'. 수절 과부로서 시어머니로부터 남편 따라 가라며 은근히 자결을 종용받아온 백씨부인(최유화)이 호조판서 염흥집(김형묵)의 하인 용덕(이강민)과 정분이 났다. 그런데 갑자기 염흥집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으로 용덕이 지목되었고, 용덕은 사건시각에 백씨부인과 함께 있었지만 그걸 토설할 수 없어 참형될 위기에 처했다.

이 사실을 알아챈 조여화(이하늬)는 시어머니의 자결 종용 앞에 죽을 위기에 처한 백씨부인을 먼저 구해내고, 또 용덕 역시 갑작스런 전염병으로 죽은 것처럼 꾸며 포청에서 빼낸 후 함께 도망치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호조판서를 살해한 이가 그의 아내이자 대비의 질녀인 오난경(서이숙)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 뒤에는 좌상 석지성(김상중) 또한 이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게 드러났다.

또 이 사건을 수사하다 호조판서의 사인이 그가 갖고 있던 그림에서 나온 꽃잎들에 의한 독살이라는 걸 알게 된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는 이 사실을 형님이자 왕의 충실한 신하인 좌부승지 박윤학(이기우)에게 알렸고, 그걸 본 왕 이소(허정도)는 그 독이 자신들이 은밀히 수사하고 있는 15년 전 사건에도 쓰인 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로써 한 수절 과부와 하인의 정분 이야기로 시작된 스토리는 이 작품이 목표로 하고 있는 15년 전 사건으로 나뉘게 된 대결구도를 명백히 드러낸다. 즉 그 사건의 주모자로서 가장 꼭대기에 있다 여겨지는 좌상 석지성과 그가 수족처럼 부리는 필여각 강필직(조재윤) 단주 그리고 대비와 연결된 오난경이 그 사건을 숨기려 하는 인물들이라면, 이에 맞서는 왕과 박윤학 그리고 그의 동생 박수호와 이들과 엮이게 된 조여화와 그가 사실상 이끄는 명도각의 장소운 단주가 다른 한 축으로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로써 15년 수절 과부지만 밤이 되면 복면을 한 채 어려운 이들을 도와 '전설의 미담'으로 불리는 조선시대판 과부 슈퍼히어로의 단순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밤에 피는 꽃>은, 이 분명해진 대결구도 속에서 본격적인 사건 전개를 위한 예열을 모두 끝냈다. 조여화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사라진 오빠 조성우는 다름 아닌 왕과 박윤학이 15년 전 사건을 은밀히 수사하며 찾는 인물이기도 해 각자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는 걸 실감케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잘 짜여진 사건과 대결구도를 지루한 설명이 아닌 하나의 사건을 통해 줄줄이 이어지는 관계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그저 평이한 복수극의 색깔이 아니라 보는 내내 통쾌한 사이다 전개는 물론이고 때론 달달하고 때론 웃음이 빵빵터지는 코미디로 끌고 나갈 수 있었던 건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를 맛깔나게 소화해낸 배우들의 공이 아닐 수 없다.

이하늬가 있어 조여화가 가진 수절과부로서의 고충이 코믹하게 그려지면서도 '전설의 미담'으로서의 시원시원한 액션과 사이다 전개가 가능해졌고, 그러면서도 박수호와의 달달해지는 멜로는 물론이고 사라진 오빠와 연결된 과거 진상에 다가가는 추리극적 묘미도 한층 깊어질 수 있었다. 여기에 초반에는 평이하게 느껴졌던 박수호라는 인물의 매력 또한 이종원 배우의 빌드업 연기에 의해 조금씩 드러나면서 시너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곧이 곧대로의 모습처럼 보였지만 조여화에게 차츰 마음을 빼앗겨 수사가 아닌 연모를 해가는 과정들이 공감가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원하는 삶을 사십시오." 조여화의 도움을 받아 정인과 새 삶을 살게 된 백씨부인이 길을 떠나며 하는 말처럼 과연 조여화 역시 끝까지 살아남아 자신이 원하는 '나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이제부터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나도 자네도." 왕 이소가 박윤학에게 하는 말처럼 이제 <밤에 피는 꽃>의 본격적인 사건들이 전개될 전망이다. 석지성이 15년 전 꾸몄던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도 궁금하고, 이를 박윤학, 박수호, 조여화가 어떻게 풀어나갈 지도 궁금하며 나아가 그 과정에서 조여화와 박수호의 달달한 멜로가 어떻게 펼쳐질 지도 못내 궁금해졌다. 여기에 갑자기 등장한 여화의 남편 석정(오의식)이 만들어낼 변수들까지.

그러고 보면 <밤에 피는 꽃>이라는 제목 또한 새삼스러운 의미로 다가온다. 그건 밤이 되어 담장을 넘어 피어나는 조여화의 진짜 하고픈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깜깜한 밤처럼 미궁에 싸여있던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은유한 의미처럼도 느껴진다. 다름 아닌 15년 전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연결하는 단서가 바로 독으로 쓰인 꽃이라는 점도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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