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수, 거짓말은 하지 않는 배우 [인터뷰]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24. 1.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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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사진=넷플릭스

안 그런 배우가 있겠냐마는 배우 류경수는 항상 작품에 진심이다. 스스로 끌리는 작품을 선택해 온몸으로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리고 류경수의 진심은 항상 통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선산'(감독 민홍남)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치열한 고민을 거쳐 시청자들에게 제시한 김영호라는 캐릭터는 또 한 번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적어도 캐릭터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류경수의 당당한 말은 계속해서 힘을 얻고 있다.

'선산'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이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류경수는 윤서하(김현주)의 이복동생 김영호 역할을 맡았다.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영호는 윤서하 주변을 맴돌며 여러 사건과 연관된다. 류경수는 의문스러운 점으로 가득 찬 김영호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하며 또 한 번 호평을 받았다. 

류경수는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은 류경수는 오히려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보실까 걱정했다"며 작품이 공개된 소감을 전했다. 

"반응을 찾아보지는 않고 조금 들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좀 긴장됐어요. 캐릭터를 표현하는 지점에 있어서 이렇게 갈 것인가 저렇게 갈 것인가 선택하는 순간에 놓였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초점을 맞춘 건 '이질적이고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듯이 나온다면 선산에 대한 논리 싸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보여주려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게 효과적일까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을 제시하게 됐는데 시청자분들이 어떻게 보실까 걱정했어요."

/사진=넷플릭스

류경수는 '선산'의 첫인상에 대해 "미스터리 했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김영호다. 류경수는 김영호라는 인물을 구현하기 위한 키워드로 '고립'을 꼽았다.

"일단 한다고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겠는지 감이 안 잡히더라고요.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딱 이거다라고 와닿는 게 없더라고요. 결국 김영호라는 인물이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지점이 있어 생각을 그쪽으로 가져가 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탈락한 야생동물을 떠올렸어요. 과거 서하가 어렸을 때 아빠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행복했던 영호의 모습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무리에서 떨어진 야생동물이 생각나더라고요. 경계도 심할 것 같고 외로움도 많을 것 같았어요. 건물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의 경우에도 사냥을 당하기 직전의 야생동물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드러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사회의 일상에 속해있지 못하고 최소한의 삶만 영위하며 오랫동안 고립됐던 느낌이면 어떨까 싶었어요."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고민이 묻어났다. 더부룩한 수염, 가지런하지 못한 치아 등 김영호의 분장을 하는 데만 두 시간가량이 필요했다. 나아가 절뚝이는 걸음걸이, 넓은 공터에서 혼자 제사를 지내는 모습 등 행동 하나하나는 시청자들에게 계속해서 의문을 남겼다. 류경수는 이 모든 것들이 "같이 가야 하는 지점이 있었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어느 정도 같이 가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겉모습을 가지고도 멀쩡하게 이야기하는 캐릭터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지금의 캐릭터를 제시한 거예요.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면 소통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렇다면 말을 걸 때 무서워서 도망가면 윤서하가 이상해질 수도 있고요. 누가 봐도 이 사람에게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줘야 인물들의 리액션이 연결될 것 같았어요. 물론 저도 멀쩡하게 생겼는데 말을 이상하게 하거나, 겉모습은 이상하지만 말을 제대로 하는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도 있죠. 저는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제시하는 것 같아요."

/사진=넷플릭스

류경수는 '선산'을 통해 연상호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지옥', '정이'에서는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았으며 '선산'은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썼다. 류경수는 "화목한 직장환경을 기대했다"며 '선산'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연상호 감독님과 '지옥', '정이'를 했을 때 촬영장 가는 게 정말 즐겁고 행복하고 편안했어요. 스태프분들도 행복해하면서 찍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상호 감독님이 제의를 주셨을 때 화목한 직장 환경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굉장히 화목하더라고요. 캐릭터만 봤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제가 했던 캐릭터 중에서 가장 고난이도 였던 것 같아요. 도전해보면 굉장히 많은 성장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연상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작품에서 류경수는 유독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옥'의 유지 사제, '정이'의 상훈 그리고 '선산'의 김영호까지 말이다. 연상호 감독이 류경수를 그만큼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연상호 감독은 여러 차례 류경수에 대한 칭찬을 남기기도 했다. 류경수는 자신에게 굳건한 신뢰를 보여준 연상호 감독에게 감사를 전했다.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해요. 캐릭터에 대해 몇 번 더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로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 플레이라는 지점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 같아요. 저에 가깝게 연기하면 편하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김영호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리액션을 생각했을 때 어떻게 표현하는 게 맞을까를 고민했어요. 꼬아도 보고 반대로도 생각해보고요. 제 나이 또래에 쉽게 할 수 없는 캐릭터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좋은 자산이 된 것 같아요. 연기적으로 언제 이런 캐릭터를 해볼 수 있겠어요.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주셔서 특별한 자양분을 많이 얻었어요. 또 불러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도 함께하면 진짜 감사할 것 같아요. 연상호 감독님을 만난 게 저에게 하나의 기점이 된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사진=넷플릭스

비단 연상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작품에서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아니다. tvN '이태원 클라쓰', '구미호뎐1938', 넷플릭스 '글리치' 등 류경수는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에서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를 맡으며 연기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류경수는 "항상 연기는 어렵다"는 겸손한 모습과 함께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밝혔다. 

"항상 할 때마다 어려운 것 같아요. 선배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실까 궁금하기도 해요. 항상 만족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건 제 연기가 아니라 더 어려운 것 같아요. 10년 정도 뒤에 경험이 쌓이면 잘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순해요. 제가 재미있어야 해요. 다른 거는 잘 안 따져요. 코미디라고 하면 일단 제가 웃겨야 해요. 저에게 웃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도 안 해요. 제가 웃겨야 관객분들에게 웃기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물론, 취향이 달라 관객분들이 웃지 않으실 수 있지만, 적어도 제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요."

다만,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는 '너무 강렬한 캐릭터만 하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 류경수 역시 덤덤하게 "맞는 말"이라며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배우는 관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인데 만약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이 계시면 그 분에게는 그게 맞는 거죠. 반대로 강렬해서 좋다고 하면 그것도 맞는 거고요. 같은 음식을 맛보고도 누구는 맛있다고 하고 누구는 간이 세다고 하는 것처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그런 의견을 알고 있고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악역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저도 그런가 싶어 따지고 보니 반반이더라고요. 다만 공교롭게도 제가 그런 캐릭터를 한 작품만 보실 수도 있는 거죠. 저도 사람이다 보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속상할 때도 있는데 적어도 캐릭터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보여드린 작품은 모두 제가 미쳤고 대본이 재미있어서 보여드렸어요. 그 이후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잇는 것에 감사하고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할 따름이에요."

/사진=넷플릭스

그렇다면 류경수가 대본을 선택하는 기준인 '재미'란 무엇일까. 류경수는 자신이 생각하는 다양한 지점에서의 재미를 설명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류경수가 생각한 재미는 자연스럽게 류경수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와도 이어졌다. 

"재미라는 포인트가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정이'에서는 내가 겪어볼 수 없는 미래 세계가 흥미로웠어요. '구미호뎐 1938'에서는 내가 산신이 되어 불을 다룬다는 과정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캐릭터상의 흥미일 수도 있고 세계관의 흥미일 수도 있고 도전했을 때 좋은 방향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연기 역시 포인트가 많은 것 같아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어요. 예전에 어떤 작품을 보고 문득 '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진짜 좋은 연기 같아요. 중요한 건 제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재미없는데 '여러분 재미있으니 시청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진짜 거짓말이잖아요."

이번에도 거짓말하지 않고 치열하게 임한 '선산'은 류경수에게 많은 의미를 남긴 작품이 됐다. 류경수는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과 고민이 가치있었다"며 '선산'이 자신에게 지니는 가치를 되돌아봤다. 

"어떻게 보실까 많이 걱정했던 작품이에요. 모든 분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과 고민들이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제 인생에서는 굉장히 가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평생 맡을 수 없는 캐릭터일 수도 있는데 그걸 제 나이대에 끝까지 완주했다는 것 사실도 가치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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