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뮤가 그린 무해하고 힙한 음악 세계…"10년 했지만 이제 시작"
(인천=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로워요. 10년을 했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진심으로 듭니다." (이찬혁)
남매 듀오 악뮤는 지난 27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전국투어 '악뮤토피아'에서 데뷔 음반 타이틀곡 '200%'를 부른 뒤 "10년간 이 노래를 정말 많이 불렀는데도 이렇게 웃으며 따라 불러주시는 걸 보니 전혀 질리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악뮤는 2024년 새해를 콘서트로 연다는 점이 감회가 새로운 듯 "우리가 이전 연도를 정리하고 다음 연도의 계획을 짜는 시기인데, 이 자리에 모여 같이 기운을 나눈다는 게 의미 있다"고도 했다.
오빠 이찬혁과 동생 이수현으로 이뤄져 가요계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남매 듀오인 이들은 지난 2012∼2013년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 스타 시즌 2'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우승을 거머쥔 뒤 2014년 정식 데뷔했다.
이찬혁이 써 내려간 쌉쌀하거나 혹은 달큰한 가사에 이수의 맑고 깨끗한 보컬이 얹어지면서 악뮤는 '200%',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오랜 날 오랜 밤', '러브 리'(Love Lee) 등 숱한 히트곡을 내놨다.
워낙 어릴 때 데뷔했기에 10년이 지났어도 이들은 여전히 20대 중·후반이다.
이번 전국투어 '악뮤토피아'는 지난 2019∼2020년 '항해' 이후 약 4년 만의 콘서트다. 공연명 '악뮤토피아'는 악뮤와 '유토피아'를 합친 말로, 악뮤만이 만들 수 있는 이상향의 세계라는 뜻이다.
악뮤는 이에 걸맞게 꽃, 덩굴, 버섯 모양 조형물이 어우러진 환상의 공간을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
빨간 바지에 세련된 검은 재킷 차림의 이찬혁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무대에 등장해 '벤치'(BENCH)를 짧게 부르고 뒤이어 편안한 하트 무늬 원피스 차림의 이수현이 나타나 히트곡 '러브 리'(Love Lee)를 함께 부르자 장내는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악뮤는 남매다운 '찰떡궁합'을 마음껏 선보이며 라이브 밴드의 반주에 맞춰 '물 만난 물고기', '째깍 째깍 째깍', '고래' 등을 들려줬다.
특히 이찬혁이 일상 속 평범한 사물 혹은 경험에서 뽑아낸 섬세하면서도 번뜩이는 가사는 무대마다 가슴에 꽂혔다.
'너는 꼭 살아서, 죽기 살기로 살아서, 내가 있었음을 음악 해줘'(물 만난 물고기), '고래야 적어도 바다는 네가 가졌으면 좋겠어'(고래), '돈보다 사랑이 필요한 걸 우린 왜 몰랐을까'(전쟁터) 같은 가사는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새해를 맞이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안겼다.
데뷔 초 악뮤의 트레이드 마크 같았던 '다리꼬지마' 같은 포크풍 음악에서 발라드(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와 트로피컬 하우스(다이노소어·DINOSAUR)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도 듣는 이를 즐겁게 했다.
악뮤가 10년 동안 그려나간 무해하면서도 힙(HIP·멋진)한 음악 세계가 남매의 목소리로 한 획 한 획 그려지는 듯했다.
'첫 맞짱으로 엄마의 속상함을 산 5학년 꼬마'(맞짱) 혹은 '공룡 꿈에 펄쩍 뛴 어린이'(다이노소어)가 10년 차 뮤지션으로 거듭나는 성장 영화 같기도 했다.
이찬혁은 "지난 10년 동안 감사했고, 앞으로 10년·20년 이후까지 우리가 좀 더 해 먹어 보겠다"고 장난스레 포부를 밝혔다.
이수현도 "(이번 투어를 통해) 내가 살아 있는 의미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이 생각난 것 같다"며 "콘서트를 통해 생생한 기억과 에너지를 채웠다. 데뷔 10주년인 만큼 금방 (또 다른) 콘서트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고 귀띔했다.
숱한 혼성 그룹 가운데 남매이기에 할 수 있는 '티키타카' 역시 공연의 볼거리였다.
절절한 이별 발라드를 부르면서도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각자 앞만 보고 노래하는 모습은 역시 남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찬혁은 "대한민국 최고의 음색을 지닌 20대 보컬리스트"라고 동생을 소개했고, 이수현도 "악뮤의 모든 명곡을 작사·작곡한 이 시대 살아 있는 천재"라고 오빠에게 화답했다.
지난 2022년 솔로 앨범을 발표한 이찬혁은 이번 공연에서는 해당 음반 수록곡으로는 '파노라마' 한 곡만 들려줬다. 그는 기회가 되면 솔로 콘서트를 열고 싶다며 음악적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전국투어로 주말마다 두 시간 반씩 노래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랜만에 무대 위에서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고 감사합니다." (이수현)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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