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패권 중국으로 넘어가나…"美가 지고 있다" 이야기까지 [강경주의 IT카페]
우주로 확전하는 미국 중국 기술 패권 전쟁
"톈궁서 시험한 반도체 100% 설계·제조"
중력 없는 우주정거장…각종 시험 최적화
"한국도 우주환경 시험조건 규격 마련해야"
미국과 각 분야에서 주도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이번엔 '우주 반도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연구진이 우주에서 반도체 테스트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 중심의 우주 패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머지않아 많은 반도체 회사들 톈궁에 줄 설 것"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우주기술연구원(CAST)은 지난달 중국 학술지 '우주환경공학'에 우주정거장 '톈궁'에서 100개 이상의 컴퓨터 프로세서를 동시 시험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28~16나노미터(㎚·1나노는 10억 분의 1m) 공정을 통해 고성능 반도체 20여개가 이미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른 국가가 우주에서 사용하는 칩보다 훨씬 발전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주 반도체는 미국이 중국에 뒤처졌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 NASA가 우주에서 사용하는 칩은 30년 전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에 탑재된 'RAD750' 프로세서는 250나노 레거시(구식) 공정으로 제작됐다.
연구진은 톈궁에서 시험한 반도체가 100% 중국에서 설계·제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이 독자 개발한 '스페이스OS' 운영 시스템에서 테스트가 이뤄졌다고 덧붙여 소프트웨어(SW) 경쟁력도 갖췄음을 시사했다. 연구진은 머지않아 많은 중국 반도체 회사가 각 사의 최고 제품을 우주에서 시험하기 위해 톈궁에 줄을 설 것으로 전망했다.
우주 제조업 시대 미리 준비하는 중국
중국은 톈궁에서의 반도체 시험을 통해 '우주 제조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는 2040년 글로벌 우주산업 시장 규모가 약 1조달러(13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30년 1조4000억달러(187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 한계 극복 측면으로 접근하면 우주 제조업의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지구에선 중력 때문에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반도체, 바이오·제약, 의학 등 첨단 기술을 우주정거장의 미세중력(micro gravity) 상태에선 훨씬 더 쉽고 저렴하게 테스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의 공장과 실험실에선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의 경우 웨이퍼를 생산할 때 중력 때문에 최대 크기가 12인치(300㎜)로 제한된다. 더 크게 만들면 웨이퍼 표면 위에 화학 물질을 도포할 때 평탄성을 유지하는 게 어려워지고 급격한 수율 저하로 이어진다. 모두 중력과 연관이 있다.
미세중력 상태인 우주정거장에선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웨이퍼를 500㎜까지 키울 수 있다. 웨이퍼는 커지면 커질수록 수율이 높아진다. 질화갈륨(GaN)과 같은 신소재를 사용하는 특수 반도체를 시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지상에선 밀도 차가 커 합성하기 힘든 소재도 우주의 무중력 상태에선 완벽하게 합성할 수 있다.
바이오·신약 분야도 마찬가지다. 중력 때문에 만들기 어려운 '결정'도 우주에선 훨씬 잘 생성된다. 특정 물질의 순수 덩어리인 결정은 미세중력 상태에서 더 빨리 성장한다. 당뇨 치료를 위한 인슐린 공장을 우주에 구축하면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바이오 업계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신약 연구개발(R&D), 줄기세포·인공장기 배양도 우주정거장 연구의 주요 항목이다. 미세중력 상태에선 세포가 중력의 방해를 받지 않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서다.
중국은 톈궁에 20여개의 연구실을 설치해 10년간 1000건 이상의 과학 실험을 진행했다. 원심 분리기, 영하 80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온 체임버 및 고온 가열기, 다중 레이저 및 광학 원자시계 등 첨단 과학 장비를 갖췄다. 특히 미국 제재 때문에 한계를 겪고 있는 첨단 반도체 개발을 위해 우주정거장을 적극 활용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우주 선진국 도약한 '중국의 힘'…풍부한 인재풀
중국은 글로벌 우주 원격 탐사 20위권 안에 5개, 100위권 안에는 14개 대학을 보유한 '우주 선진국'이다. 중국 후베이성 최고 명문대인 우한대는 원격 탐사 분야에서 7년 연속 세계 대학 순위 부동의 1위다. 역시 우한에 위치한 중국지질대는 중국의 첫 화성 탐사선의 연구를 주도했다. 이 두 대학은 달 탐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중국 교육부는 2022년 5개 대학에 행성과학과 신규 설립을 인가했다. 우주 인재를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국가 차원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풍부한 인재풀을 구축한 중국은 달 탐사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달 탐사 계획 '창어 프로젝트'는 2007년부터 성과를 냈다. 2007년 창어 1·2호는 달의 궤도를 돌면서 달 표면의 3D 지도를 만들었다. 2013년에는 창어 3호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2019년에는 창어 4호가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2020년 말에 발사한 창어 5호는 1m 깊이의 구멍을 파 암석 표본 2㎏을 싣고 귀환했다.
중국 국가항공우주국은 올 상반기 내 무인 달 탐사선 '창어 6호'를 발사해 달 남극 착륙에 도전한다. 창어 6호의 임무는 달 역주행 궤도 설계와 제어, 달 뒷면 샘플 채취, 달 뒷면 이륙 상승 등이 포함된다. 특히 달 남극의 뒷면에 위치한 SPA(South Pole-Aitken) 분지에 착륙해 이곳의 토양 샘플을 수집할 예정이다. 지름 약 2500㎞에 달하는 SPA는 지금까지 알려진 달의 분지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 달의 진화에 영향을 줬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구 가치가 높은 구역이다.
2028년께 발사할 창어 8호는 남극 기지 건설을 위해 달 현지 토양 등을 3D 프린팅으로 가공하는 등의 실험에 나선다. 이들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선 우주에서도 오류 없이 작동하는 반도체 생산이 필수로 꼽힌다. 중국 연구진이 톈궁에서 반도체 R&D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장하이롄 중국 유인우주공정판공실 부총사는 지난해 7월12일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제9회 중국 상업우주정상포럼에서 "2030년까지 유인 달 착륙을 실현해 과학탐사를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달 탐사 프로젝트 총설계자인 우웨이런 중국공정원 원사는 "미국이 반도체 못지않게 중국의 우주 개발을 억압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달과 행성 탐사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자신했다.
SCMP는 "2045년까지 우주 분야 세계 최강 국가라는 목표를 세운 중국이 이제는 NASA가 아니라 스페이스X를 더 큰 경쟁자로 여긴다"고 보도했다. 김용석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는 "우주 반도체는 일반 반도체와 달리 우주 방사선 및 초고온·초저온 등 극한의 환경을 버텨야 한다"며 "중국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주발사체 부품과 소재의 안정적인 개발을 위해 우주환경 시험조건의 규격화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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