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학대에 시달리다 부모 살해한 명문대생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시신 토막 내 쓰레기장 등에 유기하며 완전범죄 노려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경기도 중서부에 자리한 과천시는 북쪽으로는 서울시, 동쪽으로는 성남시, 남쪽으로는 의왕시와 맞닿아있다. 1982년 정부청사가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행정도시이자 계획도시이고, 관악산과 청계산에 둘러싸인 전원도시로 탈바꿈했다. 과천시 자치단체장들은 늘 과천을 '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라고 내세웠다. 과천시 별양동에는 도심 속 공원으로 불리는 '과천 중앙공원'이 있다. 넓은 녹지에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시민을 위한 최고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5월24일 오전 7시30분쯤, 과천시청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공원 내에 있는 쓰레기 수거장에서 밤사이 내놓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었다. 이때 환경미화원 이아무개씨(57)의 눈에 20L짜리 쓰레기 규격봉투 3개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사람이 버린 듯한 이 봉투들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비릿한 냄새가 나고 핏물이 배어있는 등 다른 것과는 달랐다.
이씨는 이 봉투들을 옮기면서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자 "이게 뭐지" 하며 내용물이 궁금했다. 그는 이 중 한 개의 봉투 묶음을 풀고 그 안을 들여다봤다.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씨는 "여…여기 시체가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환경미화원들이 달려왔고, 그는 곧바로 112에 "쓰레기 치우다 사람 시체를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부부의 훼손된 시신, 환경미화원이 발견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쓰레기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시신이 한 명이 아니라 중년 남녀 두 명의 것이었다. 남성의 토막시신은 오른쪽 다리와 왼쪽 손 등 5토막, 여자 시신은 왼쪽 다리와 가슴 부분 등 3토막이었다. 발견된 시신들은 8묶음으로 비닐과 신문으로 싸인 채 다시 3개의 쓰레기 규격봉투에 나눠 담겨있었다.
경찰은 시신을 싸고 있는 신문의 발행 시점과 시신이 담겨있던 쓰레기 봉투가 과천 시내 특정 아파트 단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시된 점으로 볼 때 숨진 남녀가 최근 인근에서 살해된 후 이곳에 버려졌을 것으로 판단했다.
나머지 시신 부위를 찾기 위한 수색도 진행됐다. 오후 5시쯤 인근 갈현동 쓰레기 소각장 내 쓰레기 더미에서 역시 비닐 봉투에 들어있던 여성의 시신 일부가 추가로 발견된다. 경찰은 지문감식을 통해 토막시신이 인근 아파트에 사는 이아무개씨(60)와 황아무개씨(여·50) 부부인 것으로 확인했다.
누가 이렇게 극도로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범인 추적에 나섰다. 먼저 이씨 부부의 집을 찾아가 인터폰을 눌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여러 차례 현관문을 두드린 후에야 집 안에 있던 둘째 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대 산업공학과에 다니다 휴학한 이은석(23)이었다. 그는 1학년을 마친 후 공군에 입대, 전년도 12월에 전역하고 복학을 앞두고 있었다.
경찰은 부모가 실종됐는데도 찾지 않은 데다 말이 오락가락하는 등 미심쩍다고 판단하고 경찰서로 임의 동행했다. 그사이 집 안을 수색하고 정밀감식을 벌였다. 방 안과 화장실 등에서는 피해자들의 혈흔반응이 나왔다. 집 안과 경비실 재활용품 수거장 등에서 범행에 사용된 망치와 길이 30cm짜리 쇠줄톱을 찾아냈다. 쓰레기 봉투에서는 이은석의 지문이 나왔다.
이씨는 처음에는 "난 모른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부모가 사라졌는데도 실종신고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추궁하자 횡설수설했다. 경찰이 집 안에서 나온 혈흔반응, 범행도구, 지문 등 확보한 증거를 들이대자 심리적인 동요를 보이더니 이내 "내가 그랬다"고 자백했다.
그는 범행 당시 상황도 비교적 담담하게 진술했다. 사건 당일인 5월21일 이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부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자꾸만 망설여졌다. 집 안에 있던 양주를 꺼내 마시다 새벽 3시쯤 되자 무언가 결심한 듯 컴퓨터 책상 밑에 있던 망치를 꺼내들고 어머니가 잠들어있던 안방으로 들어간 후 그대로 내리쳐 살해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잠들어있는 건넌방으로 가려다 멈칫거린다. 자기 방으로 가서 한참 동안 앉아있다가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날이 밝자 아버지가 깨어날 것이 두려운 나머지 어머니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한다.
이씨는 시신 처리를 고민하다가 토막 내 버리기로 한다. 집 안에서 시신 훼손에 필요한 칼과 쇠톱, 가위 등을 찾아다 화장실 바닥에 늘어놓았다. 그런 다음 어머니와 아버지 시신을 차례로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시신에 칼을 대는 순간부턴 거침이 없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성을 잃은 야수의 모습이었다. 이씨도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짐승이었다"고 말했다.
토막 낸 시신 부위는 차곡차곡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고, 일부는 쇼핑백에 넣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역 구내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음식물 쓰레기로 위장해 일부는 음식물 분리수거함에 버리고, 쓰레기 봉투에 담아 공원 쓰레기통에 넣기도 했다.
할인매장에서 세제를 사다가 방과 화장실 등 집 안 곳곳에 밴 핏자국을 닦아냈다. 피 묻은 옷가지는 세탁해 쓰레기장에 버리고 집 안 청소까지 끝냈다. 그렇게 정리작업을 한 지 얼마 안 돼 경찰이 들이닥쳤다. 나름 완전범죄를 노렸지만 과학수사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범인의 자백까지 받은 경찰은 범행동기에 초점을 맞췄다. '왜 부모를 살해했냐'고 묻자 이씨는 "평소 아버지는 나를 무시했고, 어머니는 나를 구박했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욕구 불만을 자식에게 표출했던 부모
이씨의 범행 뒤에는 끔찍한 가정폭력과 학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해군사관학교(19기)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다 중령으로 전역했다. 사회에 나온 후에는 대기업에 들어가 부장으로 재직했다. 어머니 황씨는 아버지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지만 많은 재산을 남겨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통령 영부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이은석은 이런 부모 슬하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경제적으로 풍족했으나 가족관계는 건강하지 못했다. 아버지 이씨는 군대식 원칙주의자였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두 아들에게도 부하 장병 다루듯 하며 엄격한 군대식 교육을 강요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에게는 남보다 못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어머니 황씨 또한 종교에 심취한 데다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였다. 늘 욕구불만에 따른 좌절감과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자신의 욕구와 불만을 자식들을 통해 충족하려는 경향이 강했으며, 남편보다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황씨 또한 종교활동 등을 핑계로 가정을 소홀히 했다. 친척과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이씨와 황씨는 중매로 만나 연애 시절을 거치지 않은 채 사랑 없는 결혼을 했다. 엘리트 장교였던 남편이 자신을 영부인으로 만들어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남편이 대령 진급에 실패하고 군복을 벗자 관계는 악화된다. 각방을 쓰면서 대화가 단절되는 등 남남처럼 지냈다. 겉만 부부일 뿐 각자의 삶을 따로 사는 '쇼윈도 부부'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식 중 막내인 이은석에게 증오를 퍼부었다. 외향적이고 반항적인 큰아들보다는 내성적이고 순종적인 둘째 아들이 만만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사소한 것도 문제 삼으며 폭언과 폭행을 밥 먹듯 하고 멸시했다. 신체적·정신적 학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신발끈을 못 묶는다고 때리고,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만화를 그린다며 머리카락을 잡아뜯은 적도 있었다. 전화 메모를 제대로 적어놓지 않으면 여지없이 뺨을 때렸다. 학대는 폭언을 동반했다. "차라리 나가버려라" "나가 죽는 게 낫다"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나이가 들수록 학대의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늘 남과 비교하며 심한 모욕을 줬다. 황씨는 아들을 심하게 때리거나 혼을 낸 후에는 무릎을 꿇리고 회개하라며 기도를 강요했다. 부부는 또 자식들의 생일을 한 번도 챙겨준 적이 없다.
이은석은 이런 부모 때문에 내성적으로 변해 가면서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체구까지 작아 학교에서는 놀림과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집과 학교 중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 만한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그나마 공부를 잘해 명문 사립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서울대 진학을 바랐던 부모는 이것마저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은석은 대학에 진학한 후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공군으로 입대했지만 군복무 기간에도 '왕따'를 당했다. 후임병들도 대놓고 이씨를 무시했다.
두 살 위인 이씨의 형은 서울의 중위권 대학에 다녔는데, 입학하면서 따로 나가 살았다. 부모는 독립을 허락하고 아파트까지 마련해 줬다.
반면 이은석에 대한 부모의 학대와 멸시는 멈추지 않았다. 군에서 제대하자 아버지는 이씨에게 "스스로 돈을 벌어 복학하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씨는 부모가 형과 자신을 차별한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범행 며칠 전 이은석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며 부모가 죽어야 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가슴속에 쌓였던 분노를 잔혹한 범행으로 폭발시켰다. 이씨의 형은 사건이 알려진 후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정 여론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검찰은 이씨를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은석의 변호인들은 주된 범행의 원인인 '가정폭력과 학대'를 참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한 죄가 가볍지 않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이씨 측은 항소했다. 이씨가 오랫동안 부모의 학대에 시달려왔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동정 여론도 확산됐다. 천주교 등 종교계에서도 적극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이씨를 살려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이씨의 형 또한 동생의 감형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원심을 뒤집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 피해의식 등으로 인해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형량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며 이은석은 사형을 면하고 무기수가 됐다. 현재 교도소에서 24년째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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