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얼죽아'의 습격, 네 가지 가설 뜯어보니
실제 한겨울에도 아이스 음료 판매 늘어
가설1. 식후 보리차·숭늉에 익숙한 식습관
가설2. 한국 사회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가설3. 철분 결핍성 빈혈 환자, 얼음 선호
가설4. 커피 '제4의 물결', 탄산음료 대용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신혜림 PD, 조석영 PD
◇ 채선아> 좀 더 밀도 있게 알아볼 이슈 짚어보는 <뉴스탐구생활> 시간입니다. 오늘은 신혜림 PD가 준비해 왔는데, '얼죽아', 즉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해서 탐구해 본다고요.
◆ 신혜림> 네. 이번 한 주 내내 강추위가 계속되었는데요. 이 와중에 '얼죽아'를 고수하신 분들 많으시죠. 이번 한파에서도 사진 기자들이 열심히 일했어요. 행인들이 테이크아웃한 아이스커피 들고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사진을 찍으려고 노고가 많더라고요. 덕분에 일명 '얼죽아 짤'이 온라인상에서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 '얼죽아'의 유래는 트위터에 올라온 이미지로 알려져 있어요. 2018년 12월에 생성된 건데 당시가 영하 20도에 육박하던 시점이었어요.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줄어서 얼죽아 협회입니다. 여러분 지금 너무 추운데 소신을 유지하시어 여름까지 버텨봅시다." 이런 내용의 재치있는 글이었죠.
◆ 조석영> 이때까진 '얼죽아'가 소신이었다는 거네요.
◆ 신혜림> 근데 이 '얼죽아'가 급속도로 유명 신조어가 되면서 다음 해부터는 소신이 아니라 대세로 거듭납니다. 2019년에 스타벅스가 한 해를 통틀어서 아이스커피 음료 판매 비중이 64%로 뜨거운 커피보다 높았고요. 11월~12월, 그러니까 좀 추운 날씨에도 아이스 음료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증가하면서 따뜻한 음료랑 비중이 6:4에서 5:5로 같아졌어요. 그리고 2022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기간 판매량을 보니까 아이스 음료가 6, 따뜻한 음료가 4가 돼요.
◇ 채선아> 역전을 한 겁니다.
◆ 신혜림> 저렴한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유명한 '메가커피'에서는 지난해 아메리카노만 1억 7천만 잔을 팔았다는데요. 그중에서도 아이스를 차지하는 소비자 비중이 무려 82%, 여기는 무려 8대 2입니다.
◆ 조석영> 이 정도면은 '얼죽아의 습격'이죠.
◇ 채선아> 그래서 이 습격을 외신에서도 주목했어요. 한국이 대체 왜 저러나, 하고요.
◆ 신혜림> 맞아요. 작년에 프랑스 유명 통신사 AFP에서는 '한국인은 한겨울 맹추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면서 'Eoljuka'라고 표현해 화제 되기도 했었습니다.
◇ 채선아> 근데 해외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잘 안 먹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제가 파리에 갔다가 너무 놀란 게 뭐냐면, 한국 가이드가 '여기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안 드시면 아무 데서도 못 먹습니다. 여기에 줄 서십시오' 했는데 갔더니 다 한국인들이 줄을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파리에 아이스아메리카노 가게를 하나 차려야 되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 신혜림> 일단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전에 아메리카노부터가 해외에는 잘 없어요.
◆ 조석영> 해외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먹으려고 현지 카페가 아니라 스타벅스 같은 체인점을 갈 때가 많아요. 이름이 '아메리카노'인데 정작 미국도, 이 방식이 주류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 신혜림> 맞아요. 아메리카노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거잖아요. 미국도 사실 아메리카노를 마시긴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배치 브루'라고 해서 대량으로 한 번에 커피를 내려두고 한 잔씩 그냥 바로 따라 마시는 방식이 주류였다고 하고요. 에스프레소 기반으로는 오히려 우유를 섞는 카페라떼나 카푸치노를 주로 마시고요. 실제로 검색엔진에 iced coffee, cold coffee 이렇게 영어로 검색 해보면 다 라떼가 나와요.
이 아메리카노의 유래는 2차 대전 때로 갑니다. 이탈리아의 점령군으로 갔던 미군이 연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여기는 다 에스프레소를 먹는 거예요. 그게 너무 쓴 거죠. 그래서 미국에서 마시는 그 커피 맛이 나게끔 에스프레소에 물 타서 마시는 걸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고 약간 좀경멸의 의미로 '아메리카노'다, 라고 한 게 정설입니다.
◇ 채선아> 동영상 플랫폼에서 '이탈리아인 아메리카노 반응' 이렇게 검색을 해보시면 막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죽을 맛이라고 하는 영상이 나와요.
◆ 신혜림> 호주에는 '롱블랙'이라고 해서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가 있는데요. 이런 호주를 제외하면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관광객 때문에 이제야 생기는 분위기입니다.
◆ 조석영> 한국인들이 와서 아메리카노 없냐고 뭐라고 하니까 만드는 걸까요? (웃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메리카노를 카페의 기본 음료라고 생각하잖아요.
◆ 신혜림> 사실 그것도 이제 20년쯤 된 것 같아요. 99년에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에 처음 생겼거든요. 그때부터 에스프레소 머신 기반의 카페 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됩니다. 그러면서 커피값이 아무래도 약간 비싸졌잖아요. 그래도 가장 만만한 가격의 아메리카노가 보편화됐다, 이런 얘기가 좀 많죠.
◇ 채선아> 그리고 지금은 대체 왜 한국인들은 아메리카노 중에서도 아이스를 먹는가.
◆ 신혜림> 지금부터는 추측이 가미된 여러 가설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째, 보리차 대용이다. 아메리카노는 약간 진한 커피라기보다는 약간 밍밍한 맛에 먹는 게 맞잖아요. 그래서 예전에 우리 델몬트 유리병에 보리차를 차게 넣어 마시던 문화 있죠. 이건 차게 마셔야 되거든요. 그런데 아메리카노가 구수해요. 약간 보리차 같아요. 우리 약간 식후에 숭늉같이 뭔가를 마셔줘야 되는 문화도 있고 해서 보리차 대용이라는 가설이 있고요.
◆ 신혜림> 두 번째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라는 가설입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달리 빠르게 카페인 수혈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사실 다른 나라에서 커피는 앉아서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뭔가 먹는 기호 식품이거나, 아니면 에스프레소처럼 후루룩 자극하는 용으로 마시거나 하는 문화죠. 근데 우리나라는 커피가 일하다가 짬 내서 빠르게 카페인을 수혈하는 용도라는 거죠.
◆ 조석영> 외신 AFP에서도 그렇게 분석했죠.
◆ 신혜림> 네. 한국인이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더 빨리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라고 AFP가 분석했었습니다.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교감신경의 자극을 받으면서 스트레스가 해소가 된다는 거예요.
아메리카노 이전에 한국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던 커피라고 하면 사실 인스턴트 커피, 커피 믹스였잖아요. 이때는 엄청 열심히 노동하다가 '잠깐 일 내려놓고 커피 한잔 마시고 합시다' 이런 모드였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맥락이 비슷한 거예요. 밤샘 공부를 한다거나 사무직 노동자들이 한참 일하다가 잠깐 수혈하기 위해 카페에 다녀오는, 그런 애환이 담겨 있는 음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아이스아메리카노는 후루룩 마실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로 아주 길게 마실 수도 있어요.
◇ 채선아> '카공족' 있잖아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많이 먹어요.
◆ 신혜림> 따뜻한 거는 빨리 식잖아요. 근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비록 농도는 연해지지만 많이 오래 마실 수 있으니까 선호한단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설로 넘어가보면, '얼죽아'는 철분 결핍성 빈혈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근거는 미국의 미네소타 주립대 연구팀의 발표인데요. 철분이 부족해서 빈혈이 일어나는 환자의 60% 이상이 얼음 중독 현상을 보였다는 거예요.
◇ 채선아> 제가 빈혈기가 좀 있는데 얼죽아잖아요. 저는 심지어 가끔 먹고 싶은 얼음 모양이 생각나요. 그래서 카페별로 얼음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얼음 모양을 기준으로 카페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 신혜림> 주변에 그렇게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거 좋아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얼음과식증'이라는 증상도 존재한대요. 이게 일종의 섭식장애래요. 그러니까 얼음을 씹으면 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류가 증가해서 빈혈 환자의 인지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이것도 아주 명확하게 규명된 바는 아니라고 합니다.
◆ 조석영> 사회문화적인 요인부터 한국인의 습성과 건강 문제까지 온갖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만 이러냐, 이게 궁금해지는데요?
◆ 신혜림> 바로 마지막 네 번째 가설과 관련 있는 질문인데요. 이게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을 종합한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차가운 음료가 겨울철 포함해서 분기마다 스타벅스 음료 매출의 최소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대요. 2023년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의하면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1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가 구식 커피에 등을 돌렸다, 그래서 커피 체인점들이 차가운 음료에 크게 베팅하고 있다, 이런 분석 기사를 내놨습니다. 또 얼마 전에 한국에 상륙하기도 한 유명 캐나다 커피 체인점 '팀홀튼'에서도 캐나다 본토 음료 판매의 40%가 차가운 음료가 됐다고 해요.
◇ 채선아> 캐나다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추운 나라잖아요. '얼죽아' 협회 멤버들이 전 세계에서 생기고 있는 기분이 드네요.
◆ 신혜림> 미국 시장조사기관 민텔이 했던 2022년 조사가 되게 재밌어요. 조사에 따르면 지금 이 현상은 커피의 네 번째 물결이라는 거예요. 미국 기반의 분석이란 걸 감안하고 보시면, 일단 제1의 물결은 1800년대 후반부터 커피가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저렴한 음료가 된 현상을 말하고요. 제2의 물결은 198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커피숍 체인이 성장을 합니다. 마치 우리 99년 이후처럼요. 그래서 라떼랑 카푸치노가 인기를 끌었대요.
그리고 2천년대 후반부터는 제3의 물결입니다. 이제 고품질 수요가 증가한 거예요. 예를 들어서 원산지를 따진다든지, 맛과 향을 음미하는. 그리고 마지막, 지금 제4의 물결입니다. 지금 성인들 사이에서는 이게 제3의 물결에 대한 일종의 '백래시(Blcklash, 반발)'이라는 거예요. 지나치게 허세스러운 특성에 대한 반발이라는 거죠.
사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사실 커피를 되게 일찍부터 접해 온 거예요. 10대 때부터 마셔왔는데 그래서 알 맛은 다 알고, 이들에게 커피는 그냥 덜 진지하고 집에서 편하게 탄산음료처럼 즐기는 음료라는 거죠. 실제로 탄산음료에 대용이 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운 커피 수요가 굉장히 증가하고 있다.
◆ 조석영> 이게 보리차가 됐다는 말 같은데요? (웃음)
◆ 신혜림> 카페인 수혈까지 되고요.
◇ 채선아>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카페 가서 교복을 입고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공부하고 이런 모습은 없었거든요. 카페도 별로 없었죠. 그런데 요즘 카페에 가보면 학생들이 와서 큰 대용량 커피 시켜놓고 공부를 계속한단 말이에요. 요즘은 되게 빨리 시작하는 것 같아요, 커피를.
◆ 신혜림> 맞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젊은 세대는 하루의 시작을 깨우는 어떤 자극제도 아니고, 고품질 음료도 아닌 그냥 상쾌한 맛을 선호한다는 거죠. 여기에 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보면, 우리나라는 모든 게 고압축으로 성장한 것처럼 카페 문화도 20년 사이 굉장히 압축 성장을 했는데요. 그 사이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탑재한 카페가 너무 많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카페라면 에스프레소 머신을 무조건 하나는 들여놔야 된다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게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간편한 브루잉 커피보다는 에스프레소 커피로 그냥 정착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고요. 거기에다 전 세계를 관통하는, 차가운 커피를 선호하는 감수성과 결합돼서 '얼죽아' 현상이 나타난 거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번 해봅니다.
◇ 채선아> 저도 가설을 하나 세웠는데요. 저랑 똑같은 가설을 세우신 분이 계세요. 요즘 추운 바깥과 달리 실내는 너무 난방을 강하게 해서 실내에 오래 있게 되는 날은 자연스럽게 아아를 찾게 되기도 해요.
◆ 조석영>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 '얼죽아', 건강에 괜찮은지 궁금해요.
◆ 신혜림> 큰 문제 없답니다.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강재원 강북삼성병원 교수는 "위장이 약한 분께는 안 좋지만 그분들은 그냥 알아서 안 먹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사람에 따라 두통도 좀 있을 수 있어요. 그건 좀 조심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 채선아> 뭐든지 적당해야 하니까요. 여기까지, '얼죽아' 현상을 둘러싼 여러 가지 맥락들 살펴봤습니다. 신혜림 PD, 조석영 PD와 함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신혜림, 조석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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