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작년 7% 감소…"치솟는 톱스타 출연료 감당 안 돼"
"제작사·방송사가 드라마판 키우고 과실은 일부 배우만 가져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요즘 제작되는 드라마 자체가 워낙 적다고 들었어요."
최근 드라마 종영 인터뷰에서 배우에게 차기작을 정했는지 물어보면 가장 자주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으레 제작되는 드라마가 적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온다.
급격한 출연료와 제작비 상승, 광고 시장의 침체와 맞물려 방송사와 토종 OTT 플랫폼이 드라마를 줄이면서 드라마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드라마 줄이는 방송사·OTT…"올해는 더 적어질 것"
28일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 따르면 방송 또는 공개 시점을 기준으로 국내 방송사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드라마는 2022년 135편에서 지난해 125편으로 1년 만에 7.4%가량 감소했다.
방송사와 OTT 플랫폼별로 살펴보면 드라마 감소 추세는 뚜렷하다.
드라마의 '명가'로 꼽히는 SBS는 평일 드라마가 한 편도 없다. 목요일에만 방송하던 '국민사형투표'가 작년 11월 끝나자 후속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았고, 월화드라마 역시 작년 5월 종영한 '꽃선비 열애사' 이후로 작품이 없다. 일일드라마는 2017년 이후 방송되지 않고 있다.
MBC는 그나마 일일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지만, 월화드라마는 2020년 12월 종영한 '카이로스'가 마지막이었다. 수목드라마 역시 2021년부터 편성이 뜸해졌다. 작년 말부터 '오늘도 사랑스럽개'를 수요일에만 방송하다가 이달 10일 종영한 뒤로는 후속 작품을 편성하지 않았다.
종편 중 가장 많은 드라마를 방송해온 JTBC는 2021년 12월 '한 사람만'이 종영한 이후 월화드라마가 없고, 수목드라마도 작년 10월 '이 연애는 불가항력'을 끝으로 편성하지 않다가 3개월 만인 이달 31일 '끝내주는 해결사'를 방송할 예정이다.
많은 인기작을 쏟아냈던 tvN도 꾸준히 드라마를 편성해온 수목 저녁 시간대에 작년 5월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가 종영한 것을 끝으로 더는 새 드라마를 내놓지 않고 있다. OCN은 과거 '경이로운 소문'과 '보이스' 등 화제작을 선보였으나 평일드라마는 2019년, 주말드라마는 2022년이 마지막이었다.
드라마 감소 추세는 토종 OTT도 다르지 않다.
토종 OTT 티빙의 경우 2022년 13편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공개했으나 작년에 공개된 드라마는 6편에 그쳤다. 웨이브 역시 2022년에는 4편의 오리지널 드라마를 공개했으나 작년엔 '박하경 여행기'와 '거래' 2편뿐이었다.
다만 거대 자본력을 보유한 글로벌 OTT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작년에 2022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드라마를 공개했다. 디즈니+는 두 해 모두 9편을 공개했고, 넷플릭스는 2022년 11편에서 2023년 13편으로 늘렸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배대식 사무총장은 "올해는 작년보다 드라마가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며 "적게는 100편, 많아도 110편 미만의 드라마만 나오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드라마 제작도 자연히 위축되고 있다.
제작사들은 드라마를 납품할 플랫폼이 미리 정해지지 않으면 사전제작을 하지 않으려 잔뜩 웅크린 상황이다.
이미 만들어둔 드라마가 창고에 쌓여 빛을 보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제작을 완료하고도 공개되지 못한 드라마가 현재 20편에 달하고, 이 작품들을 제작하는 데 든 비용은 3천억원에 이른다.
치솟는 톱스타 출연료…"일부 배우가 과실 다 가져가"
방송사와 OTT가 드라마 편성과 공개를 줄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데 반해 드라마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악화했기 때문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광고비가 드라마 제작비에 못 미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광고 시장이 위축되면서 수익은 전과 비슷하거나 줄어들고 제작비는 치솟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제작비가 치솟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톱스타'로 불리는 인기 배우들의 출연료 상승이다.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 플랫폼 관계자들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실에 모여 드라마 산업의 위기와 해결 방법을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문제는 인기 배우들의 출연료였다.
이 자리에서 한 방송사 관계자는 "주연은 이제 회당 '억'소리가 아니라 '10억'소리가 현실"이라고 말했고, 한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사와 방송사가 드라마 판을 키웠지만 일부 배우만 그 과실을 가져가는 게 아닌가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특히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가 한국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면서 인기 배우들의 몸값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공룡 기업들의 투자가 산업을 성장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출연료 기준을 크게 올려 국내 중소 제작사와 방송사들은 출연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방송에선 400만원 받는 배우가 OTT에선 1천500만원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OTT로 넘어가면서 (출연료가) 배로 뛰고, 다시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드라마 시장의 침체를 피하려면 인기 배우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거나 인기 배우들의 출연료를 조정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배대식 사무총장은 "방송사와 OTT, 정부, 매니지먼트사까지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장을 마련해야 한다"며 "무엇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결국 논의의 장이 열려야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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