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OCI와 그려낼 '청사진' [Why 바이오]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
글로벌 시장에서 협상력
한미약품(128940)그룹이 OCI(456040)그룹과 통합을 전격 발표하면서 오너 일가 내에 경영권 다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두 그룹의 통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연구개발(R&D)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온 동시에 가장 많은 성과를 낸 기업이다. 이번 통합을 바탕으로 더욱 신약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약품그룹은 12일 OCI그룹과 통합한다고 밝혔다. 두 그룹이 맺은 계약에 따르면 OCI홀딩스(010060)는 한미사이언스(008930) 지분 27%(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취득하고 장녀인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한다. 통합 홀딩스에서는 각 그룹별 1명씩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2명을 선임해 공동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우현 OCI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각자 대표를 맡는다.
이같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이 지분을 일부 매각하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상속세를 해결할 계획이다. 임성기 전 한미약품 회장이 2020년 작고하면서 송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는 약 5500억 원의 상속세가 부과됐으며 현재 잔여 상속세는 약 3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한미약품 오너 측은 상속세 해결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해왔으나 OCI그룹과 통합을 바탕으로 상속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두 그룹 간 통합 시너지를 모색하는 동시에 장녀인 임주현 사장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2020년 이후 한미약품의 경영은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이후 한미약품의 성장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기존 후보 물질의 개발도 지속하는 동시에 한국인 맞춤형 비만 치료제 개발에 나서면서 시장의 주목도 받았다.
한미약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펀드와 손잡을 경우 경영권을 잃을 우려가 있다”며 “결국 펀드도 투자자인데, 한미약품 측에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할 경우 담보를 잡힌 주식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경우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경영보단 경영의 목적이 주가에만 쏠릴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약 개발은 최소 10년이 소요되고 10년 후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큰 틀에서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을 세우고 대내외 경제 여건에 맞춰 그 전략을 조금씩 수정하며 나아가야 한다. 경영자가 주가에만 신경을 쓴다면 장기적인 전략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을 걸음마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중 신약 개발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이번 통합을 바탕으로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미약품은 기존의 사업 기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미약품그룹은 이번 통합의 배경으로 ‘규모의 경제’를 근거로 제시했다. 통합 법인에서 유상증자 등의 자금 조달을 통해 신약 개발에 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여기에는 회의론도 존재한다. 두 그룹이 애당초 남이었던 만큼 한미약품의 R&D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미약품 측은 OCI가 부광약품을 인수한 것을 근거로 들며 “OCI 측이 바이오 산업 진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OCI그룹이 한미약품에 대규모 자본을 수혈해줄 경우 한미약품은 신약 개발에 드라이브가 걸릴 수 있다. 자금의 여력이 있다면 기술 이전에서도 보다 강한 협상력을 갖고 임할 수 있다. 기술 이전은 쉽게 말해 갖고 있던 후보 물질을 매각하는 것이다. 인수자는 피인수자가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다면 시간을 끌며 더욱 유리한 가격에 거래하기를 원한다. 돈이 급한 쪽은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기업들은 주로 글로벌 기업에 후보 물질을 매각하는 입장이다. 자금력을 확보하게 되면 물질을 매각할 때 보다 동등한 조건으로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임상 3상을 직접 추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내 기업들은 임상 3상 이전 단계에 기술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통상 국내 판권은 우리 기업이 갖고 글로벌 판권을 해외 기업에 넘기는 식이다. 국내에서 기술 이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대단히 축하할 일로 여겨진다.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자체적으로 임상 3상을 할 능력이 없다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향후 사업 계획 등은 지켜봐야겠지만 OCI그룹이 한미약품에 우군으로 합류한 만큼 한미약품의 자체적인 임상 3상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Why 바이오 코너는 증시에서 주목받는 바이오 기업들의 이슈를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주가나 거래량 등에서 특징을 보인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해 시장이 주목한 이유를 살펴보고, 해당 이슈에 대해 해설하고 전망합니다. 특히 해당 기업 측 의견도 충실히 반영해 중심 잡힌 정보를 투자자와 제약·바이오 산업 관계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김병준 기자 econ_ju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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