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SNL'도 '정년이'도…제작 생태계 파괴 우려

최지윤 기자 2024. 1. 2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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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 속 제작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에 상륙한 후 제작업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다. 중소제작사와 국내 OTT, 방송사간 상도의를 어기고 업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쿠팡플레이 코미디쇼 ‘SNL 코리아’와 하반기 방영예정인 김태리(33) 주연 tvN 드라마 ‘정년이’가 대표적이다. 어찌 보면 시장에서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만, 이런 행태가 지속되면 제작 산업 전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 목소리가 높다.

◇에이스토리, 쿠팡 측과 70억 소송전

에이스토리는 국내 OTT 쿠팡플레이에 SNL 코리아를 뺏겼다. 안상휘(55) 전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장(현 씨피엔터테인먼트 대표)을 포함해 직원 12명이 쿠팡 자회사 씨피엔터로 옮겼다. 에이스토리 총 직원 56명 중 예능을 만드는 제작2본부 전원인 12명이 퇴사, 전체 매출의 20%가 사라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안 전 본부장이 직원들의 집단이직을 종용했고, 쿠팡 측에 제작본부를 통째로 유인해 가 피해가 막심하다는 게 에이스토리 주장이다. 씨피엔터는 뉴시스에 “집단이직 종용은 사실이 아니다. 에이스토리 직원 중 5명만 이직했다”며 “에이스토리와는 SNL 코리아 시즌4까지만 함께 하기로 했다. 시즌5 권한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이스토리 전 직원인 강모 PD가 SNS에 올린 씨피엔터 사무실 사진 속 17명 중 12명은 에이스토리 퇴사자로 확인됐다.

에이스토리는 안 전 본부장과 씨피엔터 등의 영업방해에 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쿠팡 측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도 신고했다. 안 전 본부장은 70억원을 이적료료 표현하며 “에이스토리가 노예계약을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안 전 본부장은 2020년 12월 CJ ENM을 퇴사, 에이스토리로 이직했다. 에이스토리에서 근무하며 3년간 급여 포함 15억 원 이상 받았다는 전언이다. 안 전 본부장이 CJ ENM에서 받은 급여의 3배 이상이다. 이와 함께 BMW 차량도 제공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스토리 제작2본부 전원인 12명 사직 후 텅 빈 사무실.


씨피엔터는 지난해 9월4일 SNL 코리아 MC 신동엽(52)과 전속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안 전 본부장은 에이스토리에 사직을 통보했다.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씨피엔터는 언론 발표 두 달 전인 7월7일 설립했다. SNL 코리아 시즌4가 종방할 무렵이다. SNL 코리아는 tvN에서 2011~2017년 시즌9까지 방송 후 중단된 상태였는데, 에이스토리가 2021년 리부트 시즌으로 부활시켰다. 당시 미국 NBC유니버설과 6개월에 걸쳐 협상해 라이선스를 확보, 시즌1~4를 쿠팡플레이에 납품했다.

에이스토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디라이트 이병주 변호사는 “NBC유니버설은 시즌별로 SNL 저작권을 준다”며 “시즌1~2는 에이스토리가 라이선스 권한을 가졌다. 시즌3부터 쿠팡 측이 유튜브 국내 저작권 등이 필요하다고 해 SNL 라이선스 명의를 넘겨줬는데 뒤통수를 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팡 측이 씨피엔터를 설립해 예능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며 “안상휘와 짜서 (SNL과 제작 인력을) 빼돌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존 제작사인 에이스토리를 제끼고 다 먹으려고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쿠팡 측은 시즌5부터 씨피엔터에서 SNL 코리아를 자체 제작해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 19일 시즌5 첫 호스트로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 주연 임시완(35)이 출연한다고 알렸다. OTT 후발주자인 쿠팡플레이가 SNL 코리아를 통해 단기간에 성장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씨피엔터 설립 전후로 시즌5 제작에 돌입했는데, 에이스토리 인력과 노하우 등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공통적인 시각이다. 더욱이 공룡 플랫폼인 쿠팡 측이 앞장서서 제작 생태계를 파괴하고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주장하는데 비판이 적지 않다. 에이스토리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소송에서 지더라도 이런 불공정 거래를 세상에 알려 다시는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행동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정년이' 출연진. 왼쪽부터 김태리, 신예은, 라미란, 문소리.


◇MBC·tvN, 정년이 편성 잡음

정년이 역시 SNL 코리아와 닮은꼴 사례다. 애초 이 드라마는 MBC가 1년 남짓 기획·개발했다. 정지인 PD가 ‘옷소매 붉은 끝동’(2021)에 이어 연출을 맡았고, MBC 인력이 투입 돼 공을 들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께 CJ ENM 방송채널 tvN으로 편성이 바뀌었고, 그 무렵 정 PD는 MBC를 퇴사했다. MBC와 제작사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과정에서 CJ ENM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상도의를 어기고 무리하게 정년이 편성을 추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MBC는 법적대응을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다행히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제작사와 내부적으로 법적인 문제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정년이는 MBC에서 편성을 확정했으며 도장만 찍지 않은 상태였다”면서 “MBC가 회당 20억원 이상 주기로 했으나, tvN에서 약 30억원을 제안했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시장 질서를 망가뜨린 것”이라며 “‘앞으로 스튜디오드래곤과 일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소송까지 검토한 이유”라고 짚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쿠팡 측과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스튜디오드래곤 유상원 국장은 뉴시스에 “(제작사로부터 편성) 제안을 받아서 답을 한 것”이라며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절차를 따라서 우리에게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년이 제작사로 스튜디오드래곤을 비롯해 네이버웹툰 자회사 스튜디오N, 앤피오엔터테인먼트, 김태리 소속사 매니지먼트mmm이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정년이는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소리 하나는 타고난 ‘윤정년’(김태리)의 여성국극단 입성과 성장기를 그렸다. 동명 네이버웹툰이 원작이며, ‘너의 시간 속으로’(2023) 최효비 작가가 집필했다. 원작자인 나몬·서이레 작가는 정년 캐릭터 이미지를 잡을 때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2016) 속 김태리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드라마화 되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김태리가 가상 캐스팅 1순위로 꼽혔고, 출연까지 이어져 기대가 높다. 물론 일각에서는 판소리가 대중적인 소재가 아닐 뿐더러 각색이 재미없게 됐다는 얘기도 나와 쉽게 흥행을 판단할 수는 없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해 횡령 사건으로 내홍을 겪었다. 당시 스튜디오드래곤 소속 프로듀서 A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부당하게 금품을 수수하고, 회삿돈을 착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영규 스튜디오드래곤 공동 대표는 스스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경영부문 김제현 대표가 홀로 이끌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횡령 사건에 이어 정년이 편성 관련 잡음 등이 불거진 만큼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la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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