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대부가 되어줄래?”…“안 돼, 걔랑 사귀게 될 것 같아”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1. 2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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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10] 영화 ‘어바웃 어 보이’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뉴스에선 위대한 인격자가 몰락하는 모습을 자주 비춘다. 인간은 남의 비상만큼이나 추락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죄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균적인 인간에게서도 발견되는 허물인 경우가 많다. 겨우 이 정도 잘못을 가지고 이런 비난을 들어야 하냐는 질문이 나온다.

주인공 윌은 친구가 딸의 대부가 돼달라고 부탁하자 당황한다.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어바웃 어 보이’(2002)는 이와 정반대의 이야기로 관객을 성찰하게 한다. 이 영화는 자기밖에 몰랐던, 부유한 백수가 따돌림당하는 한 남자아이를 만나 바뀌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아이를 위해 낸 용기는, 물론 따뜻하긴 하지만 영화의 결말이 될 만큼 대단한 게 아니다. 아이가 혼자 학예회 무대에 올라 망신당할 뻔한 순간에, 자기도 올라가 함께 조롱당하는 것이다.

특별한 것도 없는 이 결말은 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 그건 애초 주인공이 자기 인격의 부족함을 늘 인정하는 사람이었던 것과 관련 있는지 모른다.

윌은 아버지가 남긴 저작권으로 평생 일하지 않고 살아왔다.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대부가 돼달라”는 친구 부탁에 “술 먹이고 딴 생각할지도”
주인공 윌 프리먼(휴 그랜트)은 백수다. ‘원 히트 원더’였던 아버지가 남긴 저작권 수입으로 매일 먹고 논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은 쉬기 전엔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묻는다. 윌은 “쉬고 있었다”고 답한다. 한 번도 노동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화 초반부엔 그가 어떤 남자인지를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갓 태어난 딸의 대부가 돼달라는 친구 부부의 요청에 윌은 “난 최악의 대부가 될 것”이라고 거절한다. “세례식 때는 애를 떨어뜨리고, 평생 생일도 못 챙기다가 18살 생일에야 데려가서 술을 먹이고는 덮칠지도 몰라.”

출산의 기쁨에 겨워 있을 친구에게 한 말로는 최악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윌은 자기 한계를 아는 남자다.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도전하지 않는다.

윌은 아이가 없음에도 싱글 부모 모임에 참석한다. 싱글맘과 데이트하기 위해 아이가 있는 척한다.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싱글맘과 사귀려고 싱글대디인 척한 남자
이 뒤로는 윌의 성장 스토리가 이어진다. 서로 책임감을 요구하지 않는 이성 관계를 어디에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윌은 싱글 부모 클럽을 해답으로 여기게 된다.

아무래도 삶의 어려움을 한 차례 겪었던 사람들이 더 외로워할 것이고, 결정적인 순간엔 이성보다는 자기 애를 돌볼 것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쉽게 접근해서 만나다가 상대방이 자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먼저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게 그의 전략이다. 정직하지 못한 인물인 것이다.

매력적인 여성과 만나기 위해 그는 싱글대디인 척한다. 애를 데려가야 하는 상황에선 애가 감기에 걸렸다고 둘러대는 식이다. 사진은 윌이 데이트 상대의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결혼한 적도, 애를 가진 적도 없는 그는 애 아빠인 척을 하고, 싱글 부모 클럽 모임에 나가는데, 거기서 12살짜리 소년 마커스(니콜라스 홀트)를 만나며 곤경에 처한다. 마커스는 우울증에 고통스러워하는 자기 엄마(토니 콜레트)와 윌을 연결해주려고 하지만, 윌은 그녀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마커스는 우울증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어느 날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약을 먹고 자살 시도한 엄마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의 내면이 피폐한 상황임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그렇지만 마커스가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오는 통에 윌은 원치 않게 아이의 고민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나이를 초월한 친구 관계가 된다.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며 어두워졌던 아이는 점차 밝아지고, 온종일 혼자 놀던 윌 또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마커스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학예회에 나간다고 하고, 윌은 이를 말린다. 가뜩이나 따돌림당하는 마커스가 학예회에서 노래했을 때 어떤 망신을 당하게 될지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어코 무대 위에 올라선 마커스에게 조롱이 쏟아지자, 윌 또한 올라가서 함께 노래한다는 게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두 사람이 함께 놀림 받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가까이 비춘다.

마커스는 자기 엄마(왼쪽)와 윌을 연결해주고 싶어한다. 엄마가 연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윌은 그녀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밑바닥이라고 인정한 남자가 한 걸음 나아갈 때의 감동
앞서 말했듯 이건 영화의 주인공이 낸 용기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그런데도 여러 관객이 이 스토리텔링에 마음을 뺏겼다.

어쩌면 그건 애초 자기 인격이 밑바닥이라고 인정한 남자가 한발 더 나아간 모습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따뜻한 사람이라거나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면 이 정도의 감동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란 기대가 전혀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남자가 딱 한 발자국 나아가는 건 다른 이야기다. 평범한 인격의 소유자가 큰 걸음을 내딛는 것보다 훨씬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마커스가 윌이 사준 음악 CD를 들으며 노래하고 있다. 그는 윌을 만나서 밝아진다. [이미지 제공=유니버설픽쳐스]
‘내가 되고 싶은 인격’과 ‘나’를 구별해야 한다
인간은 본디 의외의 면모에 눈이 가는 존재다. 검은색 옷을 입고 나온 사람에게 묻은 하얀 티끌에 자연스레 눈이 간다. 스스로 웃긴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선 재미없는 부분이 더 잘 보일 수 있다.

인격자로 알려졌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사소한 일에 추락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일지 모른다. 그가 속한 세계의 평균과 비교해봤을 때, 대단한 흠결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인격자로 스스로를 알린 사람은 또 다른 짐을 지게 된다.

그렇기에 남다른 인성과 인격을 바탕으로 인기를 얻는 건 어쩌면 그 사람에겐 가혹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은 예수나 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크고 작은 결함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예수나 부처가 종교가 되는 건, 이들처럼 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어바웃 어 보이’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인격은 굳이 흉내 내지 않는 게 인간관계에 낫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물론 우리는 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그건 남들 모르게 혼자 하면 된다. ‘내가 되고 싶은 인격’과 ‘나’는 다른 것이다.

‘어바웃 어 보이’ 포스터. [사진 제공=유니버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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