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원, 트럼프 1114억원 배상 판결…“성폭력 피해자 명예훼손”

트럼프 항소할 듯…“터무니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월7일 아이오와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흉내 내며 조롱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 작가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피해자의 명예를 계속 훼손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8330만달러(약 1114억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1990년대 중반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성추행을 당한 작가 E. 진 캐럴에게 그가 이런 거액을 배상해야 한다고 26일 결정했다. 배상액은 피해 자체에 대한 보상적 손해배상 1830만달러, 행위의 악의성 등을 고려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6500만달러로 구성됐다.

같은 재판부 소속 배심원단은 지난해 5월 별도 재판에서 성폭력과 명예훼손을 이유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500만달러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패션지 엘르 칼럼니스트였던 캐럴은 1995년 말 또는 1996년 초 뉴욕의 고급 백화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성 속옷을 고르게 도와달라며 접근한 뒤 탈의실로 따라 들어와 성폭행했다고 2019년에 낸 책에서 밝혔다. 이에 대해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럴의 주장대로 성폭행까지 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지만 강제적인 성적 접촉 사실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E. 진 캐럴이 26일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서 승소한 뒤 변호인들과 함께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욕/EPA 연합뉴스

캐럴은 지난해 5월 이런 판결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해 사실을 부인하면서 명예훼손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며 또 소송을 냈고, 이번 사건은 성폭력 사실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추가 배상 범위만 따졌다. 캐럴의 변호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해자에 대해 “사기치고 있다”, “미친 사람이다”라는 등의 비난을 계속했다며,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에는 하루에만 캐럴을 조롱하는 글 40개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캐럴은 법정에서 “트럼프가 내 명예를 산산조각 냈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판 일정 중에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 공화당 대선 경선이 진행되는데도 출석 의무가 없는 재판에 꾸준히 나왔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탄압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지난 25일에는 증인석에 앉아 “난 저 여자를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며 가해 사실을 부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너무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또 “우리 사법 시스템은 통제 불능이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조를 모두 제거했다”며 반발했다. 그가 이번에도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판결 내용이 그대로 확정될지, 실제로 거액을 물어줄지는 지켜봐야 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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