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핫 플레이스…이색 공간 '사유원'을 가다
거장 알바로 시자의 소대는 사유원 랜드마크
한국전통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풍류지대 유원
명정이 있어 사유원은 사유원이다
가을에 노오란 열매를 맺는 모과(木瓜)는 천년을 산다. 여염집 정원이나 공원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모과가 수백년을 넘어 천년을 살아낸다는 얘긴 낯설다. 고목이 된 모과를 좀처럼 보기 어렵기 때문일거다.
대구(군위 부계) 한 귀퉁이에 300~600년 묵은 모과 거목 108그루가 한 곳에 사는 곳이 있다. 사유원(思惟園)이다. 원림(園林)도 아니고 수목원도 아니고 공원도 아닌, 하지만 이 모든 속성을 갖춘 독특한 공간이다.
사유원에서 가장 이색적인 풍경…'풍설기천년'
35년전 겨울의 일이다. 부산항 화물부두 커다란 군용 모포에 쌓인 몽둥이 상태의 거목들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몽둥이'는 수송편의를 위해 가지를 쳐낸 나무다.
철강유통사업을 하던 사야(史野) 유재성은 희귀 모과목이란 직원의 보고를 접하고 일본으로 팔려나갈 운명의 4그루를 사들인다. 거래가에다 4배를 얹어줬다고 한다. 사유원에 안착한 네 그루엔 각기 1,4,5,6이란 고유번호가 매겨졌다.
그로부터 수십년간 모은 모과만 108그루. 수령은 모두 300년 이상이다. 모과원엔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이란 멋진 이름이 붙여졌다. 어디에 간들 이런 이색적인 풍경을 접할 수 있을까 싶다!
내가 가 본 사유원, 적어도 지형은 평범한 곳이었다. 해발 350미터 남짓한 야트막한 구릉과 산비탈에 리키다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야산. 하지만 달구벌 제1 명산 팔공산과 영천 보현산, 멀리 금오산까지 병풍처럼 둘러싼 지세의 중심에 위치해 명산을 보기에 이 만큼 좋은 입지도 없다 싶었다.
사유원에는 영남 명산을 감상하라고 만든 3곳의 뷰 포인트가 있다. 거장들의 손을 거친 전망대 자체가 작품이고 그 곳에서 마주하는 초록의 산맥과 설산 풍경은 겨울 사유원 제일 명승이다.
알바로 시자의 소대…승효상의 첨단.금오유현대는 랜드마크
사유원 정상의 '첨단'은 건축가 승효상이 만들었다. 사방팔방 뻥뚫린 개방감이 시원하다. 구미 금오산을 향한 전망대 '금오유현대(金烏幽玄臺)는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정취에 빠져드는 곳"이라고 사유원은 설명한다.
전망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포르투갈 거장 알바로 시자의 소대(미라도로)는 사유원이 보유한 인공물 가운데 1,2위를 다툰다. 잠망경 모양의 전망대(20.5m)는 콘크리트 그대로 마감 처리돼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4방에 뚫린 전망창(窓) 속으로 팔공산맥과 보현산, 겹겹이 에워싸인 산세들이 가지런히 수렴돼 있다. 분리된 사유원과 주변의 자연이 '소대'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로 이어진다고 하면 정확한 표현일까, 이 랜드마크 조형물은 건축가 시자의 제안으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유원 14년 역사의 증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한상철 상무는 25일 인터뷰에서 "희소성, 희귀함이란 말로 사유원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사유원 경내에는 희소한 것들이 많고 알바로 시자의 작품 3가지는 국내외의 수많은 관람객을 불러 들이는 큰 동인"이라고 말했다.
문을 연지 올해로 3년째, 한 해 이 곳을 찾는 외국인은 300명 정도. 알바로 시자와 승효상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히로시마여대와 시드니공대 건축과 학생들도 다녀갔다. 경상도 오지를 찾는 이유는 세계적 거장 '시자'를 보기 위함이다. 시자의 작품을 유치한 게 단기간에 유명세를 타게된 계기가 된 것이다.
소요헌(Art Pavilion)은 시자 건축의 걸작
시자가 건립한 나머지 두 개의 건축물은 소요헌(Art Pavilion)과 내심낙원(가톨릭 경당)이다. 여기에도 단순함을 추구하는 시자의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애초 알바로 시자는 1992년 피카소의 '임신한 여인'과 '게르니카'를 전시할 미술관을 마드리드의 한 공원에 지을 예정이었지만, 사정상 보류되었던 건물이다. "생명과 죽음의 순환 공간을 한국전의 격전지였던 군위에 짓자"는 사유원측의 제안에 생각을 바꿨다.
1933년생으로 연로한 시자는 제자 카를로스의 도움으로 이 아트파빌리온을 완성했다. 임신한 여인 대신 '생명의 알', 게르니카 대신 위태롭게 매달린 녹슨 철판 조각을 설치했다. 소요헌은 시자 건축 철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도성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 원림을 조성한 건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지배계층이 향유했던 일종의 건축문화였다. 서울 인왕산과 삼각산, 북악산이 만나는 지점, 종로구 부암동에 누각과 정자, 천연의 계류가 어우러진 대표적 별서(別墅)가 있다. 한 때 흥선대원군이 거처했던 석파정이다.
석파정 떠올리는 풍류지대 '유원'
사유원에도 단아한 누대와 그 옆을 흐르는 계류(溪流)-연못, 소나무 정원으로 구성된 풍류지대 '유원'이 있다. 사유원의 모든 건축물이 그렇듯 '사야정'(史野亭) 건축은 박창열, 조경은 정영선 등의 명장이 맡아 품격이 남다르다. 직접 가본 유원엔 반(半)자연의 공간인 석파정이나 담양 소쇄원에 못지 않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사유원이 사유원인 이유는 생각하는 공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사색하며 걷다가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생각할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사야 유재성의 오랜 염원이 시작이었다. 평생 소나무와 조경석 수집에 천착한 이유가 사유원이다.
그의 수집목록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수백년된 모과는 물론이고 수백년 배롱나무, 소나무 등 8천~1만 그루의 수집본이 10만평 산야에 식재됐고, 사유원에 놓인 바윗돌, 다종다양한 돌들, 석상들까지 모두 그가 눈여겨보고 사들인 것이다. 조성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유원내 유일한 레스토랑인 '사담', 현암' 등 크고작운 건축물은 대부분 건축가 승효상의 손을 거친 것들이다. 잡풀과 나무들이 우거진 야산을 수집품으로 꾸미고 그 위에 예술적 경지의 건축물로 마감한 곳이란 필자의 탐방소감이 사유원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사유원이 사유원인 이유는?…'명정'
경내 모든 구조물과 공간 중에서도 가장 '생각하는 공간스러운 곳'은 명정(승효상作). 관람객들이 만나게 되는 유일한 지하공간이다. 물이 흐르는 망각의 바다와 붉은 피안의 세계를 둘러싼 작은 성소, 삶의 좁은 통로로 구성됐다. 작가는 하늘만 보이는 지하 공간에 조성한 이곳을 현생과 내생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설립자 유재성이 경내 곳곳에 세워둔 표어에서도 사유원을 조성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사유원은 훗날 땅이 되어 굳건히 제자리에 지켜질 것이다. 땅에서 자라 땅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언젠가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100% 예약제 운영…서울 관람객이 태반
독특한 공간이란 입소문과 프리미엄급 시설, 볼거리들은 전국 각지로부터 관람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2021년 9월 문을 연지 3년 누적 관람객은 7만 명에 이르렀다. 내부에 식당과 세미나 시설을 갖춰 기업과 공공기관들의 모임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과 전국 행정기관 구성원들의 워크숍 장소, 완성차 업체의 신차 촬영장소, 백화점 특급고객을 위한 회원 상품으로도 팔린다.
사유원에 따르면 수도권 관람객이 전체의 60%, 대구경북은 20%라고 한다.
10만 평 사유원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짧아도 경내 진입후 2시간은 잡아야 한다. 먼 길을 달려와 2시간을 보고 가긴 아쉽다. 그래서 알찬 탐색을 위해선 최소 한나절은 잡아야 한다. 경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천천히 둘러보는 데는 하루가 걸린다. 경기도 용인의 시민 A씨는 사유원에 매료돼 12회 재방문했다고 한다.
100% 사전예약제로 입장 가능하고(입장료 5만 원), 수준급 레시피를 갖춘 레스토랑의 한 끼 식사비용(6만 원)에 교통비를 감안하면 부담을 느낄 수준이다. 사유원을 단순히 곳곳에 있는 수목원 정도로 생각한다면 지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사유원에는 독특한 조형물과 압도적인 경관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용부담은 고려해볼만 수준이다. 비수기에는 좀 더 여유롭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승용차를 위한 주차공간은 갖춰져 있지만 차가 경내로 진입할 수는 없다. 정해진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면 도보관람이 시작된다. 사유원에 닦인 오솔길(Trail)은 약 6.3km 알차게 돌아보면 만보 이상을 걷게 된다.
팔공산맥을 사이에 둔 대구와 사유원간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영천과 팔공산순환로 가산 구간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대구 도심지에서는 1시간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신설될 대구국제공항으로부터는 자동차로 20분거리여서 수도권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접근성이 한층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대구CBS 이재기 기자 dlworll@daum.net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대 때부터 두 번 살인한 60대 무기징역수 가석방하자 '또'…
- 지구대에서 바지 벗고 소변 본 '택시기사 폭행' 70대 최후
- 이낙연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사진만 붙여놓은 사진관으로 전락"
- "尹이 왕인가? 명품백 해명해 줄 테니 기다리란 태도"
- "日 피하려던 전략이었나" 굴욕적 질문인데…클린스만은 껄껄
- 민주노총 주말 도심서 "尹, 중처법 유예 압박…용서 못해"
- 내달 스트레스 DSR 도입…주담대 갈아타기 열풍 '부채질'
- '음주 적발'에 경찰이 귀가시킨 60대, 1시간만에 다시 운전대
- 초등교사들 "서이초 재수사, 늘봄학교 지자체 이관" 촉구
- 플랫폼법 강행 구도에···긴장하는 이커머스, 두려운 소상공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