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이죠?" 승객 자수 설득한 택시기사…'중간책'까지 한번에 잡았다

김지은 기자 2024. 1. 28.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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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 정명석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 정명석 경위(왼쪽)가 택시 기사(오른쪽)와 함께 표창장을 받는 모습. /사진=독자제공
"택시 기사인데요. 승객이 보이스피싱범 같아요."

지난해 12월28일 오후 5시59분쯤 대구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에 112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택시 기사로, 그는 보이스피싱범으로 의심되는 승객을 태워 동대구역에 가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구대로 오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승객과 함께 동대구지구대를 찾았고 그곳에서 정명석 경위를 만났다.

정 경위는 우선 자초지종 설명을 들었다. 택시 기사는 승객을 경주에서 태워 대구까지 이동했다고 했다. 택시 기사는 "뒷좌석에서 승객이 통화하는 것을 들었는데 어딘가 이상했다"며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의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됐다고 한다. 승객은 대구 달성군의 한 장소에 내려달라고 하더니 돈뭉치가 담긴 종이 가방을 들고 다시 택시에 탔다. 택시 기사가 승객에게 "혹시 그거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넌지시 묻자 승객은 당황한 기색으로 "저도 지금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택시 기사는 보이스피싱으로 의심이 되는데 경찰에 자수하면 참작될 것이라며 승객을 설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지구대까지 함께 방문하게 됐다.

승객은 구인 사이트에서 부동산 중개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텔레그램으로 주로 소통했고 건당 5만~8만원의 일당도 받았다고 한다. 이날은 경주에서 대구로 이동해 3800만원 현금을 전달받고 오후 6시50분까지 동대구역 광장에 도착해 돈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정 경위는 이 같은 정황을 보고 승객이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보이스피싱 수거책과 중간책이 만나기로 약속한 동대구역 광장 모습. /사진=독자제공


정 경위는 계획을 세웠다. 승객이 보이스피싱 중간책과 동대구역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6시50분. 약 50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정 경위는 급하게 사복으로 갈아입고 승객, 택시 기사와 함께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광장에 중간책이 등장하면 빠르게 달려가 검거할 생각이었다.

광장에 도착한 지 10분이 지났을 무렵, 멀리서 검은 패딩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남성이 슬며시 다가왔다. 그는 승객에게 다가가 3800만원 현금을 받고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정 경위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긴급체포했다. 중간책은 "왜 그러세요, 왜 그러세요"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찰에 따르면 승객과 중간책 모두 사기 방조 혐의로 입건됐다. 두 사람은 구속됐으며 돈을 벌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파악된 피해자는 총 2명이다. 사기방조죄의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 경위는 "피해자들은 자신이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도 몰랐을 텐데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며 "동대구역은 대구 교통의 중심지로 평소에도 이런 종류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잦았다. 평소 사건을 자주 접한 덕분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경위는 올해 20년차 베테랑 경찰이다. 그는 "국가기관에서 돈을 보내달라는 전화가 오면 의심부터 해야 한다"며 "보통은 소포 우편을 보내거나 기관으로 출석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단순히 전화 통화로만 사안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경위의 목표는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범죄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정 경위는 "요즘은 물리적으로 피해자에게 해를 가하는 것 외에도 재산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범죄도 많다"며 "범죄자들이 좀 더 강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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