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 밝히는 한국과학]⑦ 토종 유전자가위 치료제 첫 후보 물질 나온다

유병훈 기자 2024. 1.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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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삼 진코어 대표 인터뷰
몸 안에서 유전자 교정하는 ‘인비보’ 방식 치료제 개발
미국 바이오 기업에 4500억원 규모 기술 수출
“좋은 기술이 좋은 벤처 만든다…10년 이상 연구해라”

2023년 초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출신인 김용삼 대표가 이끄는 진코어가 미국의 바이오 기업에 3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우리 돈으로 45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계약 규모였다. 웬만한 제약사나 바이오 기업의 시가총액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계약을 이름도 생소한 기업이 성사시킨 비결은 뭘까.

진코어가 가진 비밀 병기는 바로 ‘유전자 가위’였다. 유전자 가위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래에나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로 여겨졌다. 하지만 작년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기반으로 한 겸상 적혈구 빈혈증 치료제 ‘엑사셀’의 판매를 승인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가 FDA 승인을 받은 건 엑사셀이 처음이었다.

치료제가 없는 난치성 질환까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유전자 편집 시장 규모는 2022년 69억4000만달러에서 2032년에는 299억3000만달러(약 38조83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삼 진코어 대표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 중에 치료제 후보물질을 선정해 동물실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조선DB

김용삼 대표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진코어는 이미 상용화된 ‘캐스9′ 대신 ‘캐스12f1′를 이용해 유전자 편집 치료를 하는 플랫폼 ‘타켓(TaRGET)’을 개발하고 있다. 진코어가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 타겟 플랫폼이었다. 캐스12f1은 캐스9보다 크기가 3분의 1 이하로 훨씬 작다. 덕분에 사람의 몸 속에서 원하는 부위까지 캐스12f1을 보내서 유전자 교정을 할 수 있다.

사람의 몸 밖에서 유전자를 교정한 뒤에 다시 몸 안에 넣어야 하는 캐스9보다 훨씬 간편한 방법이다. 이렇게 사람의 몸 안에서 유전자 편집을 하는 방식을 체내 교정(in-vivo)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체내 교정은 상용화가 되지 않았다. 엑사셀 역시 체외 교정(ex-vivo) 방식이다. 김 대표의 진코어가 체내 교정 방식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개발하면 엑사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경제적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부작용 우려가 적은 대신 일부 세포에만 적용할 수 있는 체외 교정과 달리 체내 교정은 대부분의 유전 질환에 적용할 수 있어 범용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김용삼 대표를 직접 만나 진코어의 기술이 가진 장점과 앞으로의 사업 계획을 들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제는 이미 상용화됐다. 진코어의 기술이 가지는 다른 장점이 있다면.

“현재 유전자 가위 기술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크리스퍼-캐스9 효소 이용법은 오프타겟의 문제가 있다. 오프타겟은 쉽게 말해 유전자 가위가 목표로 한 유전자가 아닌 엉뚱한 유전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본질적인 이유는 캐스9의 크기가 커서 이를 몸속의 원하는 부위까지 보내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진코어는 캐스9보다 크기가 3분의 1 이하로 작으면서 유전자 교정 효율은 그대로인 ‘크리스퍼-캐스12f1′을 개발했다. 여기에 크리스퍼-캐스12f1을 이용해 만든 유전자가위 플랫폼 ‘타겟(TaRGET)’도 개발 중이다. 타겟의 주요 유전질환 대상 평균 교정 성공률은 20%로 크리스퍼-캐스9과 엇비슷하고, 오프타겟률은 크리스퍼-캐스9의 20~30% 수준으로 낮다.”

-타겟을 이용해 엄청난 기술 수출에도 성공했다.

“지난 2022년 미국 제약·바이오 업계를 통틀어 20위권에 있는 글로벌 기업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타겟의 사업화에 성공하면 3억5000만달러(약 4500억원)를 해당 기업으로부터 받고, 매출에 따른 로열티도 받기로 했다. 진코어의 역할은 물질개발과 전임상(동물실험)까지 완료하는 것이고, 이후의 임상과 승인, 출시는 해당 기업이 도맡아서 하는 조건이다.”

-작년 말 상용화의 문을 연 엑사셀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가장 중요한 차이는 유전자 편집이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느냐다. 전통적인 유전자 편집은 몸속 유전자를 밖으로 빼낸 후 시험관에서 교정해 몸 속으로 다시 집어넣는다. 이런 방식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 또는 엑스비보(ex-vivo)라 부른다. 엑사셀이 대표적이다. 반면 진코어의 타겟 플랫폼은 몸속에 유전자 가위 효소를 집어넣어서 그 효소가 알아서 유전자를 교정·개선하도록 하는 인비보(in-vivo) 방식이다.”

투여방식에 따른 유전자편집 치료의 유형./BRIC

-인비보 방식이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엑스비보 방식은 면역세포와 그 모체인 조혈모세포, 생식세포만 이용할 수 있는데, 그중 생식세포는 생명윤리의 문제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용이 법적으로 금지돼있다. 문제는 조혈모세포로 다룰 수 있는 질환이 한정적이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빈혈과 면역질환 같은 혈액질환, 암질환에 국한돼 있다. 이를 제외한 안과질환, 근육질환, 간질환 등 대부분의 유전질환은 인비보 방식의 치료 대상이다. 유전질환 환자의 대부분은 인비보 방식의 치료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개발자 입장에서 전달체(Delivery)를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기술적 장점도 있다. 엑스비보는 또 환자 본인의 조혈모세포를 추출하고 수정한 후에 다시 투여하는 자가 조직적 방식이라, 조혈모세포를 환자에 맞게 QC(퀄리티 컨트롤)하는 일련의 과정이 복잡해 환자의 신체는 물론 재정적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 인비보 방식의 잠재력이 훨씬 큰 이유다.”

-구체적인 치료제 개발 계획이 궁금하다.

“2022년 미국의 대형 제약사에 기술이전을 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특히 ‘뒤센 근이영양증(DMD)’과 ‘레버 선천성 흑암시(LCA)’라는 두 질환에 대해 본격적으로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후보물질도 거의 다 나와 확정 수순이다. 올 상반기 안에 후보물질이 확정돼 동물실험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부적으로는 미국 제약사 파트너 외에 따로 뇌 질환과 안과 질환을 중심으로 파이프라인(신약 개발 프로젝트)을 진행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엑스비보 방식의 세포 연구에 특화한 인게니움, 차 바이오 등의 회사들과 협력해 초기 연구를 시작했다. 진코어의 초소형 유전자 가위 기술이 지난해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중에서도 최우수 기술로 선정된 것도 낭보였다. 올해도 글로벌 제약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비보나 마우스를 이용한 초기 데이터로 파트너가 임상을 진행하도록 할 계획이다.”

-타겟 플랫폼 다음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

“당장은 희소 질환을 다루더라도 아주 희소한 질환은 시장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병률이 나와 시장 규모가 되고 환자의 중증 정도가 큰 질환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개발하려고 한다. 유전질환에서 기술이 검증되면 시장 규모가 더 큰 암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암 역시 유전질환처럼 DNA의 변형에 따른 질환이기도 하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 암과 대사질환, 당뇨, 뇌졸중 등 유병률이 높은 난치질환으로 확대돼 치료법의 새 모델이 되는 것이 중·장기적 목표다. 또 세포 치료법과도 혼합해 근노화 등 근골격 질환들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노화와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한국이 아닌 해외 제약사와 협력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에서 연구개발(R&D)을 진행하기엔 명목적 장애물과 실질적 장애물이 있다. 일단 한국은 생명윤리법에 따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할 수 있는 질환을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에이즈, 암, 치료제가 없는 선천성 질환 등 명시된 질환에만 유전자 가위를 활용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가 적용됐다. 그에 반해 미국 등에서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해 특정 질환을 제외하면 기술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실질적인 장애물도 있다. 임상에 따른 규제당국의 승인이나 인·허가가 보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전자 가위가 아직 본격적으로 상용화하지 않은 기술이다 보니 전례가 없어 당국으로선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벤처기업들에겐 큰 허들(장애물)로 작용해 대규모 국제 임상 경험이 있는 글로벌 제약사와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전략적·현실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펀딩 규모가 큰 점도 고려됐다.”

-한국 바이오 분야의 후학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바이오 산업 자체가 국가의 미래 먹거리인데다 K-바이오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본질은 기술창업이기에 글로벌 경쟁력이 있어야 한국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 기술이 세계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고 기술의 수명은 어느 정도 될지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해야한다. 논문과 특허, 지식재산권으로 기술의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연구 경력은 갖추길 권한다. 가장 좋은 기술이 가장 좋은 벤처를 만들기 때문에 연구 경력을 성숙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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