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회 신용 체계' 실험, 그 20년 후 [PADO]
[편집자주] 대부분의 시장경제 국가들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평가 제도가 발달돼 있습니다. 이 기업이나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도 되는지, 투자해도 되는지를 사전에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장의 작동을 위해 '최소한'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중국은 한발 더 나가 시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최대한'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원대한 실험을 지난 20년간 전개했습니다. 이른바 개인과 시장의 활동 주체들의 '사회적 신용'(경제적 신용을 훨씬 넘어선 개념입니다.)을 전방위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데 그치지 않고 꼼꼼히 점수화하겠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의 '사회적 신용' 현재 점수가 운전 중 속도위반을 하면 5점 감점이고 길에서 담배를 피면 2점 감점, 그리고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1점 플러스!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 중국 사회를 '법의 지배'를 넘어선 '덕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이름은 '사회 신용 체계'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나 나올 법한 이 '덕의 지배' 프로젝트가 어떻게 전개돼 왔고 결국 어떻게 폐기 직전까지 오게 됐는지를 자세히 소개한 더와이어차이나 2023년 12월 17일 자 기사를 읽어보시면서 중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중앙정부의 사회 통제 시도, 시민사회의 저항, 시장과의 긴장 등을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999년 좌절에 빠진 한 젊은 기업가가 주룽지 당시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황원원은 선전의 제조업 붐을 타고 교육용 장난감을 팔아 부를 어느 정도 쌓았지만 그녀의 사업은 벽에 부딪혔다. 그녀의 제품이 너무 성공적이어서 시장에 값싼 모조품이 넘쳐나면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고 사업에 큰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황원원은 중국 비즈니스 환경의 더 큰 문제인 불공정 경쟁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당시 42세였던 그는 미국 8개 도시를 순회하며 비즈니스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끝에 신용평가 시스템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한 경쟁을 유지하는 것은 제조업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습니다."라고 황은 주룽지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중국만의 개인 신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조언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이와 관련해 저의 지식과 부를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놀랍게도 총리는 황의 편지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이디어를 승인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기업 스캔들과 금융 사기를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중국은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삼각 채무'(三角債: A는 B에 빚을 지고, B는 이 빚을 담보로 C에 빚을 지고, C는 이 빚을 담보로 A에 빚을 지는 연쇄적 채무관계를 의미)가 경제 성장을 위협하고 있었고, 법 집행과 규제 준수는 취약했으며, 신용 조회와 시장 감독을 위한 인프라는 모두 처음부터 새로 구축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경제적 문제를 단지 금융이나 법률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다. 도덕적 위기에 대한 인식도 커지고 있었다. 지도자들은 신용 관리 시스템이 황원원과 같은 선량한 사업가들이 예기치 못한 난관으로부터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고 시장을 지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용 부족은 경제관계를 왜곡하고 사회적 거래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도덕을 타락시켜 현재 중국 경제의 건전한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2001년 국무원 보고서의 지적이다.
황원원은 주룽지 총리의 허락을 얻어 사비 30만 위안(4만 2270달러)을 내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연구그룹에 자금을 지원했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회학자 린쥔위를 비롯한 여러 학자를 영입했다. 17개 신용 관련 미국 법률 전문(前文)으로 무장한 린쥔위는 기업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사회 신용 체계'(社會信用體系)라는 아이디어를 개척했다. 그는 2019년에 "모든 기업이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다면 시장 경제 질서가 개선되고 기업윤리가 재편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2002년 중국 지도자 장쩌민은 법치주의 즉 '법의 지배'를 보완하기 위해 '덕의 지배'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사회 신용 시스템 구축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쾰른 대학교 연구원 마리안 폰 블롬베르크는 이때부터 "신뢰가 주요 거버넌스 패러다임이 됐다"고 말한다.
실제로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수백 가지의 다양한 버전으로 구성된 거대한 사회 신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은 계속 변화하는 구성요소와 목표가 너무 많아 학자들은 수년 동안 이 시스템을 가장 잘 정의하는 방법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법 집행 도구, 법의 확장, 감시 시스템, 범죄 기록을 위한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그리고 그 이상의 모든 것으로 묘사돼 왔다. 이러한 다양한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방식에 대한 세부 사항은 복잡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규제 기관이 정보를 공유한 다음 규정 미준수 블랙리스트에 사람과 회사를 추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정 준수 데이터를 취합하는 것은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다. 더 넓고 촘촘한 그물을 만들기 위해 당국은 악의적인 행위자에 대해 공동 처벌을 가할 뿐만 아니라, 시장과 대중의 불매운동을 유도하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명하고 수치심을 주는 경우도 많다.
(계속)
김동규 PADO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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