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까지 가서 정말 피라미드만 보고 온다고?”
국내 최고 이집트 전문가 ‘곽민수’가 뽑은 이집트에서 반드시 봐야 할 유적 5곳
연간 이집트를 방문한 한국인 수는 2019년 3만1946명을 기록한 후 2021년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4354명까지 급감했다. 본격적인 탄력이 붙기도 전에 식어버린 것 같던 열기는 하늘길이 열린 2022년 극적인 반전을 맞는다. 전년 대비 약 400% 폭증한 1만4600명이 다시 이집트를 찾았다. 2023년 해외로 출국한 전체 여행객이 2022년 대비 3배 넘게 증가한 만큼 지난해 이집트 관광객 역시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이집트 주요 호텔, 유적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집트를 방문한 한국인이 증가 추세라고 여행 정보도 함께 증가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1961년 처음 영사관계를 맺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피라미드, 스핑크스다. 2024년 1월 기준, 한국-이집트 간 직항 노선이 없어 이집트 입성에만 최소 13시간 이상이 걸린다.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역을 한나절 방문하는 것이 여행의 전부라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카더라’ 형태의 정보를 넘어 이집트를 방문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체계적인 정보가 필요한 때다.
이에 경향신문은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에게 정보 공유를 부탁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아부심벨 등의 필수 코스는 제외하고 관광객들이 중요성을 잘 몰라 지나쳐버리기 쉬운 유적 위주로 추천해 달라는 전제를 달았다. 곽 소장은 “이집트학과 같은 순수학문을 전공할 수 있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혜택을 입었다는 뜻”이라며 “그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드리고 싶다”며 요청에 응했다. 그는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으면서도 고대 이집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곳들로 추천지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선정 이유에 관한 짧은 설명도 보내왔다.
이하 내용은 곽 소장이 추천한 장소와 해당 유적지에서 실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내용 일부를 덧붙인 것이다. 모두 곽 소장 감수를 받아 정리했다. 소제목은 곽 소장이 추천한 ‘장소: 그곳에서 꼭 봐야 할 유적’들 순서로 구성돼 있다. 이집트 여행을 계획할 때나 실제 현장에서 유적을 감상하며 읽는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함께 이집트를 방문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구도 정보에서 배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다슈르: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
“아직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피라미드가 실제로 세워졌던 고대 시대 경관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특히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피라미드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기에 용이하다.”
다슈르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40㎞ 떨어져 있다. 차로 이동한다면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이곳을 방문해서 볼 수 있는 대표 유적지가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다. 두 피라미드를 만든 것은 고왕국 시대로 분류되는 제4왕조를 연 파라오, 스네페루(Sneferu·BC 2613~BC 2589)다. 그는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의 주인, 쿠푸 파라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두 피라미드 중 먼저 만들어진 것은 굴절 피라미드(Bent Pyramid)로 추정된다. 명칭의 연원은 모양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사각뿔의 각 변이 직선으로 내려오는 일반적인 피라미드와 달리 한 번 꺾여 있다. 구조가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스네페루 직전 파라오는 제3왕조의 후니다. 스네페루는 메이둠(Maydum) 지역에서 건설 중이던 후니의 피라미드를 이어 짓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다슈르에서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때 외부 경사각은 후니의 메이둠 피라미드와 같은 약 54도로 설정했다. 그런데 다슈르 피라미드가 절반쯤 완성됐을 때 메이둠 피라미드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지나치게 가파른 경사각으로 하중이 제대로 분산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스네페루는 다슈르에 짓고 있던 자신의 피라미드의 설계를 변경한다. 54도 경사각으로 하단부부터 만들어지고 있던 피라미드의 상단부를 약 43도로 낮추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굴절 피라미드를 위쪽부터 보면 상대적으로 완만한 각도로 내려오다 특정 지점부터 급격하게 떨어지는 형태다.
문제는 한 번 꺾인 형태의 피라미드가 스네페루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온전한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를 원한 스네페루는 굴절 피라미드 북쪽에 처음부터 경사각을 약 43도로 완만하게 설정한 새 피라미드를 지었다. 피라미드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형태다. 외부를 감싸고 있던 외장석이 떨어져 나가며 노출된 내부 석재가 붉은 색깔로 보여 ‘붉은 피라미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네페루는 붉은 피라미드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두 피라미드 모두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피라미드가 북쪽부터 남쪽을 잇는 축을 기준으로 입구-통로-현실(무덤 속 관이 들어 있는 네모형의 방)을 만든다면, 굴절 피라미드에는 서쪽부터 동쪽을 축으로 하는 입구-통로-현실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이다. 각각 굴절 피라미드의 하단부와 상단부에 있다. 이중구조인 셈이다.
곽 소장은 그 이유를 당시 사회상을 통해 추론한다. “피라미드의 발전 과정은 태양신앙이 이집트 사회의 주류가 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하는데 당시 주류였던 별을 추종하는 집단이 남북축을 따른 반면, 태양을 추종하는 집단은 동서축을 따랐다. 주류 신앙을 두고 벌이는 두 집단의 권력 관계가 피라미드의 이중구조로 나타났을 수 있다.” 이 경우 굴절 피라미드는 별에서 태양으로의 권력 변화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고, 두 신앙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모든 피라미드를 이중구조로 만들면 막대한 노동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문제를 입구-통로는 남북축을 따르되, 현실의 방향만 동서축으로 바꾸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 시기 이후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은 모두 이 구조를 따른다. 피라미드를 방문한다면 직접 확인해볼 수 있다.
아비도스: 세티 1세 신전
“아비도스에 있는 세티 1세 신전은 오시리스 신앙의 중심지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도 성지순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접근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충분히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세티 1세의 신전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추천한다.”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OOPARTS·일반적 발전 과정을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유물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헬리콥터’ 모양의 부조가 남겨져 있는 그 신전이다. 다만 이곳을 직접 방문한 후에도 오파츠를 봤다고 한다면 무지를 드러내는 셈이 된다. 알고 보면 ‘비정상적’인 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비도스는 고대 이집트 역사의 중심이 됐던 곳이다. 이집트 왕정의 시작점인 선왕조 시대부터 이 지역 패권을 놓고 다퉜을 뿐 아니라 이집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시리스 신을 숭배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기원전부터 이집트인들이 성지순례를 오는 지역이었다. 제19왕조의 세티 1세는 이곳에 자신의 신전을 지었는데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고, 아들인 람세스 2세가 완성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첫 번째 열주실(Hypostyle hall·신전이나 궁전 등에 있는 많은 기둥이 세워져 있는 넓은 방) 상단에 부조된 아비도스의 헬리콥터를 궁금해 한다. 초현실 기술의 증거라는 이유로 관심을 끌지만 곽 소장 설명에 따르면 이는 “고대 이집트 문자를 몰라서 생기는 착각”이다.
세티 1세는 자신의 신전을 지으며 문자를 새겼는데 람세스 2세가 해당 문자를 수정했다. 문자가 새겨진 석재에 회칠을 하고, 새로운 문자를 새겨 넣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며 회칠을 한 부분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두 시대 문자가 우연히 겹쳐 보이는 부분이 생겼다. 아비도스의 헬리콥터 역시 이렇게 탄생했다. 곽 소장은 두 시기에 쓰인 문구까지 정확히 짚어낸다. 우선, 세티 1세 시대 때 새겨진 것은 ‘데르 페제트-페세제트’라고 읽는 문자로 ‘아홉개의 활을 제압하다’는 뜻이다. 그 위에 람세스 2세가 새긴 문자는 ‘메키 케메트 우아프 케수트’로 ‘이집트를 지키고, 외국을 쳐부순다’는 의미다. 두 문자 모양을 겹쳐보면 유사 역사학자들이 오파츠라고 주장하는 헬리콥터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세티 1세 신전에서 정말 가치 있는 부분은 ‘아비도스 왕명표’라고 부르는 역대 파라오 72명의 이름과 재위 기간을 새겨둔 벽면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 왕가가 모두 같은 조상 아래에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아비도스 왕명표는 후대 역사학자들이 이집트 파라오의 계보를 정리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후세대가 인정한 파라오들만 기록하다 보니 중간중간 빠져 있는 이름들도 있다.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Hatshepsut)나 종교개혁을 시도한 아케나텐(Akhenaten) 등이 대표적이다. 곽 소장은 세티 1세 신전을 두고 “가장 아름다운 신전”이라고 했다. 특히, 세티 1세 시기에 만들어진 신전 내부 벽면은 인물들을 양각으로 새겼는데, 금방 살아 움직이기라도 할 것처럼 생생하다.
룩소르 서안: 세티 1세 무덤
“입장료는 매우 비싸지만, 왕들의 계곡에서 볼 수 있는 무덤들 중 가장 아름답고 보존 상태가 좋다. 이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다른 왕묘들은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다시 세티 1세다. 이번에는 룩소르에 있는 그의 무덤이다. 제18왕조의 투트모스 1세는 피라미드 도굴 문제가 만연하자 무덤을 산 깊숙한 곳에 숨기는 방법을 택한다. 이로 인해 룩소르 신전에서 직선거리로 약 10㎞ 정도 떨어진 곳에 파라오들의 무덤군이 만들어진다. 이를 ‘왕들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모두 65기의 무덤이 발견됐다.
왕들의 계곡은 입장료 600이집트파운드(1월 21일 환율 기준·약 2만6000원)를 지불하면 무덤 3곳을 자유롭게 선택해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 곳들이 있다. 세티 1세와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특히 세티 1세 무덤은 1800이집트파운드(약 7만8000원)짜리 입장권을 사야 한다. 이로 인해 들어가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입장권 가격도 싼 투탕카멘(500이집트파운드·약 2만1700원) 무덤만 다녀오는 관광객이 많다. 하지만 곽 소장 표현을 빌리면 ‘세티 1세 무덤에 비하면 투탕카멘 무덤은 작고 조악한 수준’이다. 왕들의 계곡에서 딱 한 곳만 봐야 한다면 단연코 세티 1세 무덤이라는 뜻이다.
이유가 있다. 우선, 규모다. 왕들의 계곡에 있는 전체 무덤 중 람세스 2세의 황태자들이 함께 매장된 공동 무덤을 제외하면 단일 무덤으론 가장 크다. 깊이가 약 130m에 달한다. 규모가 큼에도 무덤 전체가 전부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벽면에 새겨진 부조들은 대부분 양각 형태로 제작돼 대상의 표정, 움직임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색채가 남아 있다. 특히 무덤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공간인 ‘현실’ 천장에는 당시 이집트에서 관측 가능한 별자리들이 그려져 있다. 이 모든 것을 130m에 달하는 무덤 속을 걸어가며 계속 감상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덤 내부에는 벽면에 부조 대신 밑그림만 남겨져 있는 방이 있다. 이는 두 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세티 1세 무덤이 미완성 상태에서 봉인됐다는 점이다. 파라오의 무덤 제작은 즉위와 함께 시작해 죽고 난 후에야 끝이 나는 과정이었다. 이에 따라 파라오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고 후대 사람들이 급하게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밑그림만 남은 방이 이를 방증한다. 또 하나는 무덤 벽면 부조를 제작하는 과정이다. 무덤 벽면에 먼저 그림을 그리고 주변을 파내는 작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발굴 과정이 극적인 투탕카멘 무덤에 비해 세티 1세 무덤은 한국인에게 덜 알려진 측면이 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 역시 접근성을 낮춘다. 그러나 일단 들어가 보면 곽 소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왕들의 계곡 내 여타 무덤들이 마치 세티 1세 무덤을 축소하거나 조악하게 따라한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룩소르 서안: 데이르 엘 메디나
“신전과 무덤이 많은 이집트에서 흔치 않게 만나볼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마을 유적이다.”
이집트에서는 왕궁이나 주거 관련 유적을 거의 볼 수 없다. 이러한 시설들이 주로 나일강 인근 범람원 지역에 위치해 보존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데이르 엘 메디나’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유적 중 하나다.
마을의 성격은 위치에서부터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을 경계로 룩소르를 동안과 서안으로 구분했다. 이때 동안은 살아 있는 자들의 구역인 반면, 서안은 죽은 자의 구역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데이르 엘 메디나’는 마을임에도 룩소르 서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를 통해 거주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무덤과 관련이 있을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이 마을에 거주한 사람들은 왕들의 계곡에서 무덤을 만들던 건축가, 석공, 목수, 금속 세공사 등의 장인이었음이 확인됐다.
‘데이르 엘 메디나’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주택 터를 볼 수 있다. 독특한 건, 이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단 한 곳이었다는 점이다. 파라오 무덤 관련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통제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곳에서 발견된 문헌 자료 등을 통해 거주민들의 삶까지 속박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실제로 이곳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토리노 파업 파피루스(Turin Strike Papyrus)’라고 불리는 문서다. 인류 최초의 파업 기록을 담고 있는데, 이 파업이 발생한 곳이 바로 ‘데이르 엘 메디나’다. 고대 이집트 제20왕조 람세스 3세 재위 29년(기원전 1152년)으로, 발생 시기도 정확히 특정된다. 당시 노동자들은 임금이 체납되자 연좌시위 등을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곽 소장이 고대 이집트어로 쓰인 문서를 한국어로 직역해 ‘고대 이집트의 파업-토리노 파업 파피루스의 해석과 주석’이라는 논문을 낸 덕분에 한국어로도 그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다.
‘데이르 엘 메디나’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가 끝나면서 더 이상 주거 용도로 사용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집트 지배 이후 수립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는 마을 북쪽에 하토르 여신 신전이 세워지며 성지로 거듭났다. 신전을 찾는 순례객들은 마을 집터를 임시 숙소로 활용했다. 시간이 흘러 하토르 신전은 기독교 수도원으로 용도가 변경됐는데 이때 ‘마을 수도원’이란 의미의 ‘데이르 엘 메디나’가 이 지역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됐다.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던 중산층 마을부터 성지가 된 신전까지를 모두 볼 수 있다.
아스완: 엘레판티네 고고학 유적
“행정 관청과 취락, 신전과 나일로미터, 자그마한 피라미드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유적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 추천지는 이집트 남부 아스완 지역을 관통하는 나일강 한 가운데 떠 있는 섬, ‘엘레판티네’다. 섬 북쪽은 호텔, 남쪽은 유적지로 나누어진 독특한 형태다. 섬이 주요 관광지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고대 이집트 시기부터 이 지역을 다스린 행정, 국가시설이 엘레판티네섬에 밀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고대 이집트 문명의 거의 모든 시기 유적들이 중첩된 복잡한 섬이란 의미다.
행정기관이 밀집됐다는 것은 이 섬의 지정학적 가치를 보여준다. 이 지역은 고대 이집트 국경의 최남단 지역으로, 실제 이집트를 정복하기도 했던 누비아와의 최전선이었다. 현재도 300㎞ 정도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단과의 국경지대가 나온다. 지명 유래에서도 지정학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들여온 ‘코끼리’ 혹은 ‘상아’가 거쳐 가는 요충지란 의미에서 ‘엘레판티네(Elephantine)’란 명칭이 붙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여러 시기 유적이 겹치다 보니 기준 없이 방문하면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 섬에서 곽 소장이 탐사단을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사테트(Satet) 신전이었다. 사테트 여신은 이 지역의 주신인 ‘크눔’ 신의 부인이다. 연구에 따르면 현재 사테트 신전 자리에는 기원전 3100년 이전부터 세워진 구조물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이 확인된다. 현재 복원된 신전은 기원전 1570년 무렵부터 시작된 신왕국 시대 신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또 하나 주요한 유적으로, 이곳에 있는 ‘나일로미터(Nilometer)’를 빼놓을 수 없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나일강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인공 수위계다. 고대 이집트 정부는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해야 했다. 이를 위해 강바닥과 비슷한 깊이의 땅을 파고, 계단 모양과 유사한 수위계를 설치한 뒤 이곳에 나일강 물을 끌어들여 변화를 측정했다. 나일로미터는 신전의 부속장치처럼 설치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전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닌 행정기관 역할도 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외에도 엘레판티네섬에는 거대한 탑문을 통해 그 규모를 유추해볼 수 있는 크눔 신전과 아스완박물관, 작은 피라미드 등이 있다.
고대 유적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엘레판티네섬은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아스완 일대는 이집트 내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섬 전망대에 오르면 기원전 유적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나일강이 펼쳐진다. 이집트 고유의 작은 돛단배인 ‘펠루카’가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집트 여행 중 아름답고, 이국적인 전망을 보고 싶다면 단연코 이곳을 추천한다.
이집트 |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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