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클래식의 가치, 그리고 비엔나

2024. 1. 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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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의 정의를 실현한 하이든과 고전의 완성을 보여준 모차르트, 그리고 혁신을 통해 낭만으로 가는 시대의 가교역할을 한 베토벤은 비엔나 음악계의 영웅들이다. 

이들 바로 이후에는 비엔나 태생의 프란츠 슈베르트가 있다. 그가 작품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등 수많은 명곡을 작곡해 “가곡의 왕”으로 불리는 것은 클래식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모차르트보다도 더 짧은 생애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36세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 보다 5살이나 이른 31살에 생을 마감했다는 것 또한 슈베르트 역시 못지 않은 천재였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 역사로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생애 마지막 작품들이 심오하며 비할 데 없는 아름다운 음악적 표현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베토벤을 존경하여 생애 딱 한번 만났던 그의 옆에 묻히고 싶다는 슈베르트의 유언은 실현되었다. 베토벤 옆 빈의 중앙묘지에 묻힌 슈베르트지만 그의 석상을 보려면 도심공원인 슈타트 파크에 가야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비엔나 남성 합창단의 기금으로 세워진 슈베르트의 석상을 따라 아래로 걷다 보면 빈을 상징하는 다음세대 음악가를 만날 수 있다. 바로 황금빛으로 빛나는 동상의 주인공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다.

◆ 왈츠의 도시

19세기 유럽은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나라마다 대표적인 춤들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귀족적인 폴로네이즈와 서민적인 마주르카가 대표적 춤이고 보헤미아 지방의 동유럽에는 폴카(polka)가, 그리고 파리에는 화려한 캉캉이 사교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모두 바로크 시대의 차분하고 절제된 동작의 춤에서 벗어나 좀더 에너지 넘치고 열정적인 동작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엔나 역시 도시를 대표하는 춤이 무도회장을 휩쓸고 있었다. 

이 춤은 사실 19세기 전 유럽 사교계를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3/4박자의 우아한 춤 ‘왈츠’다. 

왈츠의 어원은 회전을 뜻하는 독일어 ‘Waltzen’에서 유래 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춤의 기원은 ‘돌다’라는 뜻의 프랑스의 ‘Volta’라는 춤에서 왔다는 학설이 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왈츠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왈츠와 비슷한 춤이 있었다고 한다.

게르만 문화권을 중심으로 남녀가 서로 밀착하며 도는 춤인 ‘벨러(Weller)’가 그것인데 이 벨러가 오스트리아 지방인 티롤의 농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다가 점점 도시로 옮겨와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에서는 춤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타 도시에서는 금지시켰는데, 도심으로 옮겨온 벨러가 좀더 세련되고 우아한 왈츠로 발전 되면서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출수 있게 법률이 개정되었다. 

왈츠가 비엔나 전역에서 인기가 높아지자 1814년 빈 회의를 기점으로 유럽에 유행처럼 퍼지게 되었다. 특히 황제 요제프 2세는 3000명의 시민을 궁으로 초대하여 왈츠를 추게 하며 귀족과 시민 사이의 균열이 나지 않도록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왈츠는 다양한 음악적 형식으로도 많이 응용 되었는데 쇼팽,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생상등 작곡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형식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비엔나의 문화유산과도 같은 이런 왈츠를 비엔나를 넘어 지금의 아이돌과 같은 인기로 전세계에 유행시킨 음악가가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황금동상의 주인공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다. 

◆ 왈츠의 황제

빈의 중심부 슈테판 성당과 카를 플라츠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1호선 레드라인을 타고 도나우 방향으로 한두 정거장 가면 ‘Nestroy Platz’역이 나온다. 이곳 역 앞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물관이 있는데 사실 그가 살던 아파트를 개조하여 전시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그의 최고 히트작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스피커에서 흐르는 이곳에는 그의 흉상과 연주에 사용하던 17세기 아마티 바이올린, 비엔나 피아노의 자부심인 뵈젠도르퍼 등이 큰방에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그가 작곡하던 모습과 바이올린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2세의 아파트 (사진=필자 제공)

요한 슈트라우스2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들이다. 사실 아버지 슈트라우스1세 또한 왈츠 음악의 기초를 마련하고 유럽투어를 통해 왈츠를 널리 알린 인물이다. 비엔나 신년음악회의 마지막 앙콜 때 박수에 맞춰 연주하는 라데츠키 행진곡이 그의 작품 중 하나다. 

요한 슈트라우스1세는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에는 심한 반대를 하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욱 타고난 음악성을 갖고 있었던 아들 슈트라우스 2세의 고집을 꺾기는 어려웠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와 경쟁하게 되었고 아버지 사후에는 아버지 악단을 합병하여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사교음악계를 이끌었다. 

슈트라우스 2세의 작품으로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이외에 <빈 숲 속의 이야기>를 비롯해 <남국의 장미>, <피치카토 폴카>, 오페레타 <박쥐> 등 주옥 같은 왈츠와 폴카 등 500여곡들이 있다. 

그의 선풍적인 인기는 유럽을 넘어 19세기 중 후반 미국에서도 순회공연이 이어질 정도로 대단하였으며 황족과 귀족들도 무시할 수 없는 셀럽이 되었다. 

왈츠음악은 깊은 사고를 요하는 음악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선율과 고상하고 세련된 리듬만큼은 다른 음악에서 맛보기 쉽지 않다. 슈트라우스와 우정을 나눴던 작곡가 브람스 또한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부러워했다. 

재미있는 일화 중, 한번은 슈트라우스의 아내가 브람스의 팬이어서 싸인을 요청 한적이 있었다. 당시에 자신의 음악 몇 소절을 적은 후 옆에 싸인 하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몇 소절을 적은 후 옆에 싸인 대신 “불행히도 브람스 음악이 아님”이라고 적었다. 

현재 이런 스트라우스의 음악과 왈츠를 가장 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어디일까? 아마 비엔나 필하모닉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요한슈트라우스 2세 동상 (사진=필자 제공)

◆ 비엔나 필하모닉

매년 1월1일 빛나는 황금 홀(Wiener Musikverein)에서 화려한 꽃 장식과 왈츠를 연주하는 비엔나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는 전세계 방송사로 송출되고 있다.

서서 보는 스탠딩 티켓을 제외한 좌석표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좋은 자리들은 명사들의 초대석으로 이미 몇 년 전 예약이 되어있기도 하다. 

항상 최고의 오케스트라에 손 꼽히는 빈 필하모닉이 다른 오케스트라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단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들 수 있다. 일명 ‘비너클랑(Wiener Klang)’이라 부르는 비엔나 사운드는 무겁고 과하지 않은 저음과 부드럽고 우아한 음색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둥글고 아름다운 소리의 관악기와 현악기들의 조화는 오케스트라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전통이다. 현악기들의 소리는 비단결과 같다고 하여 실키 사운드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소리를 유지하는 비결 중에는 그들만의 악기를 사용하는 부분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관악기로 분류되는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은 빈 필에서만 쓰는 스타일의 악기로 구성되어있다. 

오보에는 일반적인 오보에와는 운지법이 다른 19세기 후반부의 비엔나 오보에를 사용하는데 소리와 외관이 일반적인 오보에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바순 역시 오보에와 소리의 결이 같은 밝지만 풍부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클라리넷 또한 일반적인 시스템과 다른 운지법이지만 소리는 깊이 있고 풍부하며 밝은 특징을 보여준다. 호른도 그들만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고 팀파니의 경우 플라스틱제가 아닌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악기의 소리는 어떤 차이일까? 20세기초 거장 푸르트 뱅글러가 빈 필의 현악기소리가 좋아 자신이 맡고 있는 베를린 필과 악기를 바꿔 연주하게 했는데 빈 필의 소리를 낼 수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 선배 음악인들로부터 전수되는 그들만의 비브라토와 운궁법 등 악기를 다루는 연주법이 소리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볼 수 있다. 

빈 필하모닉에서 45년동안 악장을 역임한 전설적인 악장 라이너 퀴흘은 어떤 지휘자가 좋은 지휘자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신들의 음악을 방해하지 않는 지휘자”라는 대답을 하였다. 그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비엔나 필하모닉도 외국인과 여성단원의 채용, 지나치게 보수적인 스타일과 분위기 등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현재는 세상의 변화에 서서히 맞춰 나아가는 중인 듯 하다. 

빈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뮤직페어라인 (사진=필자 제공)

◆ 클래식의 현재와 오늘

비엔나가 음악의 도시로 불리게 된 것에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한 훌륭한 작곡가와 연주단체가 있었다. 화려한 시절을 보낸 도시지만 현재 클래식의 인기는 과거의 영광에는 못 미치는 듯하다.

음악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세계화와 상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음악이 하나의 관광상품처럼 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화였던 클래식 음악이 대중들의 삶에 깊이 있게 들어와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비엔나 공연장에 유명공연단체나 연주자가오면 매진사례를 종종 기록하지만 관객층의 대부분은 연세 많으신 분들과 클래식 전공 학생, 관광객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젊은이들이 많이 앉아있는 아시아의 공연장은 하나의 큰 마켓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클래식은 단순 문화를 넘어 시대와 사람을 이해하는 언어로서 공유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유지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의 가치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여 역사가 되고 그것의 당위성이 현재 비엔나라는 도시가 갖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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