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왜 박근혜·문재인 정부는 단통법을 없애지 않았을까
과도한 시장개입 논란에 통신사 배만 불린 점 한계
차별해소·시장혼탁 방지 측면 의미 있어 이전 정부는 '보완' 선택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단말기 유통법(단통법) 폐지가 윤석열 정부의 핵심 '민생 과제'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2일 단통법 폐지를 민생을 위한 규제 완화 정책으로 발표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25일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되는 것이 핵심목표”라며 “저렴한 가격으로 단말기를 구입하도록 하기 위해 단말기유통법 폐지방침을 발표했다”고 했다. 단통법 폐지는 법 개정 사안이다.
정부 발표만 보면 단통법은 '휴대폰을 값싸게 구매하지 못하게 만드는 악법'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통법만 없으면 휴대폰 가격이 자동으로 내려가 이용자 혜택이 커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단순하게 처리할 문제였다면 의문이 남는다. 왜 박근혜 정부는 단통법을 도입했을까. 왜 문재인 정부는 단통법을 폐지하지 않았을까.
2014년 도입된 단통법은 휴대폰 가격을 투명하게 공개(공시)하고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지원하는 할인 금액인 보조금의 상한을 두는 두 가지 제도를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이용자 차별을 해소'하고 '통신요금을 인하'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용자 차별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 도입 전만 해도 휴대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방통위에 따르면 2012년 12월 25일~2013년 1월 7일 동안 한 통신사에서 10만 원 이하의 보조금을 받은 이용자는 39%, 50만 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이용자는 22.9%였다. 같은 제품인데도 가격이 40만~50만 원 가량 차이가 난 것이다. 누군가가 내지 않은 비용은 다른 누군가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고, 마케팅비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면서 이 역시 이용자 몫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단통법 도입 이후 통신사들이 마케팅비를 아끼면서도 보조금을 합법적 한도 내에서도 충분히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통법이 도입된 2014년 4분기 통신3사의 가입자당 평균매출액(ARPU)은 2012년 1분기 대비 25%나 늘었고 이후 통신3사의 영업이익 고공행진이 이어진다. '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단통법을 폐지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도 단통법을 유지했다. '통신비 인하' 효과는 미미한 반면 '이용자 차별 해소' 측면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정부 모두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정책을 보완한다.
대표적인 것이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율(선택약정할인) 조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단통법 도입 이듬해에 고시를 개정해 요금할인율을 12%에서 20%로 대폭 올린다. 선택약정할인은 보조금을 받지 않은 이용자 또는 약정 기간이 끝난 이용자가 보조금과 같은 규모의 요금을 할인 받는 개념이다. 할인율을 올리면서 통신사가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어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는 통신사의 반발 속에서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의 일환으로 할인율을 25%까지 끌어올렸다.
단통법이 좋은 법이라는 건 아니다. 정부가 보조금 규모까지 직접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휴대폰처럼 이용자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에 구매하는 상품도 매우 드물었고, 통신사들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시장이 혼탁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단통법을 없애려면 폐지 후 정말 가계통신비가 보편적으로 인하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이용자 차별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시장 혼탁 상황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대책도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분명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정부 브리핑 당시 기자들이 이 문제를 물었지만 이상인 방통위 부위원장은 “자유로운 지원금(보조금) 경쟁이 이루어지면 저렴하게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을뿐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없애도 되는 악법이라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왜 이 법을 만들고 유지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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