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당이 이끈다"던 용산 비서실장 허언 결자해지부터
尹心 선전전 구태…韓 사퇴압박 거명된 이관섭
1주전 고위당정에선 "당 이끌고 정부 뒷받침"
'앙투아네트 가짜뉴스' 잣대도 사람따라 표변
브랜드도 총선도, 5000만 앞 겸손한 쪽이 산다
"제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제가 드린 말씀'을 그대로 이해하면 좋겠다". 지난 25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동료시민 눈높이 정치개혁 긴급좌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진보진영 유튜브 매체와 재미 친북인사가 개입한 집권초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그는 일주일 전(18일) '함정 몰카'를 전제하면서도 "전후 과정에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튿날(19일)에도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다.
입장 변화 아니냐는 언론 질문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제 입장은 변한 게 없다"고 답했다.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한날에 찾은 '옛 직속 상관' 윤석열 대통령에게 '90도 인사'를 한 데 이은 '성의 표시'라도 될까. '사과 요구한 적은 없다'는 태도는 묘하지만, 남긴 언급들을 '액면 그대로' 보면 사실이다. 민심을 향한 변명보다는, 권부(權府)와의 계속된 수(手)싸움으로도 읽힌다. 총선 코앞에도 대통령실이 '국민 눈높이' 한마디를 못 참아 전대미문의 '수직 당무개입 논란'을 자초한 상황이 됐다.
지난 21일 저녁 한 비대위원장이 당을 통해 낸 입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오늘 대통령실 사퇴요구 관련 보도에 대한' 입장이라고 명시하면서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날 낮부터 익명의 여핵관(여권 핵심관계자)발로 '윤 대통령이 한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기대와 지지를 철회했다'는 수상한 보도가 나왔다. 이를 '대통령 호위무사'라는 한 초선의원이 당 소속 의원 단체대화방에 공유하며 "(명품백 의혹) 사과를 하는 순간 민주당은 들개들처럼 물어뜯을 것"이라고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한 비대위원장에게 '사천'책임을 묻고, '김 여사 사과론'에 앞장서던 김경율 비대위원을 축출하려는 의도가 짙어보였다. '용산과 핵관들'이 주도한 작년 3·8 전당대회 당권주자 축출 여론전과 닮았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과 여론환경이 달라졌다. '여권 주류'가 한 비대위원장 사퇴를 압박했다더니, 윤재옥 원내대표 중재로 한 비대위원장과 회동한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사천'이 아닌 김 여사 논란 대응이 논쟁거리였고, '대통령께서 저를 물러나라 하시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사퇴요구설을 '대통령실 요구'로 못 박은 것은 한 비대위원장이다. 메신저는 이관섭 비서실장이었다. 이 비서실장은 '여당 대표 한동훈'이 데뷔한 14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국민 목소리를 가장 민감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 당이다", "당이 앞에서 이끌고, 정부가 이를 실효적 대책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당 주도'는 실종될 뻔했다. 비대위원장 선임 의결 전날 '조건부 도이치 특검도 불가' 대못을 박은 고위당정은 '한동훈 패싱'이었겠다는 의심도 짙어지는 대목이다.
"당이 앞에서 이끌고…"란 말은 결과적으로 불과 일주일 만에 대국민 립서비스, 그 이상의 허언 또는 기만이 됐다. 책임져야할 곳은 당연히 '국민 눈높이'를 말하던 여당이 아니라 용산 대통령실이다. 그런데 책임지는 입장은커녕, 김경율 비대위원의 유튜브 발언 시비를 키우거나 '사퇴가 한동훈 출구전략'이라는 등 그들만의 주판알 튕기기가 이뤄졌다. 정작 김경율이라는 사람이 '있었냐'는 게 국민 눈높이다. 김 여사를 프랑스 대혁명 때 희생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를 했다는 일조차 마찬가지다.
보수정당과 여권 핵심세력이 언제부터 '앙투아네트 걱정'을 그렇게 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극좌 통진당 후보로부터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다를 바 없다"고 공격받을 때 새누리당은 '그런 앙투아네트 속설부터 가짜뉴스'라고 공세를 받아친 적 있었나. '팩트 앞에 태만'은 계속돼 2013년 말부터 "말이 안통하네트" 비방이 유행했다.
전통적 보수층을 타깃으로 '김경율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진영 내 선전도 감지된다. 이해관계로 미루어 '누구를 위한 건지'는 알 만하나, 과거 해명 없인 '명분없는 비약'일 뿐이다. 명품백 의혹은 김 여사가 특정 좌파 유튜브와만 두번째 얽힌 사건이자, 영상까지 나온 상태다. 전향한 김경율의 출신을 트집잡고 있을 '여유'가 있나.
'선출된 적 없는 인물의 국정농단'에 대한 불안은 보수층의 탄핵 트라우마로 남아있는데, 모순을 거듭할수록 '단죄'로 떴던 '윤석열 브랜드'는 희미해진다. 서천 화재현장에서 한 비대위원장에게 '어깨 툭' 제스처를 보이고, "여기가 장동혁이 지역구더만" 육성을 노출하고, 대통령실 보도자료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동훈…(후략)"을 전한 건 과거의 '상하관계'를 연상케 한다. 상인회 2층에서 기다렸던 피해상인들을 더 보듬는 데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면 공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한 비대위원장의 사퇴 공개거부 이튿날(22일) 제5차 민생토론회 불과 30여분 전 윤 대통령이 불참을 통보한 것도 적잖은 과오다. 소위 '여권 핵심의 암투'때문에 1차적으로 '민생'을 표방한 행사를 등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차적으론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단통법, 도서정가제 등 규제혁파를 천명했다는 점에서 보수진영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이 환호할 만한 행사였음에도 윤 대통령이 자리를 비웠다. '한동훈 브랜드'에서조차 아직 뚜렷하지 않은 '자유주의 시장경제 신념'을 거듭 피력할 무대를 대통령이 저버린 셈이다.
애초 "국민이 늘 옳다", "5000만의 언어"로 초지일관하는 쪽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지지기반과 장악력에 집착할수록 떨어져나가고, 내려놔야 커지는 게 용산의 현주소다. '직무수행 평가'에서 한 비대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크게 앞섰을뿐만 아니라 국정지지도를 크게 웃돈 만큼 '민심에 완패'를 인정하고, 비서실장의 빈말 등 '결자해지'할 문제를 살피는 게 낫다. 김 비대위원이 '심판' 자리를 내려놓고 '마포을 경선 선수'로 등판하면 될 사천 시비도 권력발 거취 압력이 계속되면 오히려 사태가 더 꼬일 것이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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