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엄마와 딸이 닌텐도로 '레벨업'하는 방법
닌텐도 다이어리/ 조경숙 지음/ 이김 펴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닌텐도 <슈퍼마리오 오디세이>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린이에게 게임이 더 안전할까? 유튜브가 더 안전할까? 게임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콘텐츠와 분리되기 어렵고 중독 가능성까지 있어서 위험해 보인다. 반면 유튜브는 어린이용 콘텐츠가 별도로 있으니 유튜브가 낫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 유튜브를 안 볼 수 없는 시대인 만큼 유튜브 콘텐츠를 보호자 지도 하에 최소한만 보게 하고 게임은 일단 차단하는 게 차선책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와 게임을 좋아했고 관련 분야 평론가로 활동하는 조경숙 작가(테크페미 활동가)는 신간 <닌텐도 다이어리>에 이 고민과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많은 양육자가 겪는 딜레마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조용히 시키는 것이다. (중략) 밖에서 한참 놀아준 뒤 식당에 들어간다거나 책이나 조그마한 장난감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아이의 관심을 환기하려 애를 썼지만, 한계가 있었다. 최후의 보루였던 스마트폰이라는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엔 어린이용 유튜브를 틀어주었는데, 옆에서 같이 보다 보니 '이걸 정말 아이에게 보여줘도 되는 걸까?'싶은 콘텐츠가 많았다.”(13쪽)
그는 유튜브 콘텐츠를 하나씩 검열하느니 게임을 권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유튜브에선 썸네일로는 알 수 없는 각종 욕설이나 PPL(간접광고), 선정적인 인터넷 밈(meme·인터넷 유행 게시물)이 나타나지만 게임에선 그렇지 않았다. 어린이용 게임에는 교육적인 내용도 있었다. 재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침을 찾아가는 게임이나 동물에게 알맞은 먹이를 주는 게임도 있다.
다만 모바일 게임은 게임 자체는 괜찮더라도 게임을 하다 나오는 광고가 자극적인 콘텐츠인 경우가 있었다. 광고 없는 게임은 없을까? 그가 찾은 해결책은 '닌텐도 스위치'다. 이 책은 저자가 딸과 함께 닌텐도를 하는 이야기다. 책 곳곳엔 딸이 쓴 글도 나온다.
'닌텐도 스위치'를 택한 저자 판단에 공감이 간다면 책을 추천한다. 닌텐도를 살 때 어떤 모델이 좋은지, 중고로 산다면 유의할 점이 무엇인지부터 알려준다. 저자가 처음 선택한 게임은 <슈퍼마리오 오디세이>. 쿠파가 공주를 납치하고 강제로 결혼하는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영상미와 어린 시절 추억을 이기지 못했다.
저자는 딸에게 한 마디 건넨다.
“소해야, 저게(납치와 강제결혼)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알지?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데려가는 거 말이야, 진짜 어마어마한 악당이야! 남자들만 구해줄 수 있는 거 아니고 여자들도 구해줄 수 있는 거고. 알지?”
“어, 알아.”
건조한 딸의 대답이자만 저자는 폭력에 대한 '부채감'을 덜어내고 함께 게임에 몰두한다. 슈퍼마리오에서 최종 결전 이후 마리오와 쿠파는 서로 부케를 내밀며 피치에게 구애를 하는데 대반전, 여기서 피치는 둘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떠난다.
저자는 “옛날 동화들은 '그래서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지만 슈퍼마리오 오디세이의 엔딩은 이와 달랐다”며 “이 게임은 목숨을 구해준 것은 매우 고맙고 용기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고 평가했다. 이쯤 되면 재미와 감수성을 모두 잡은 듯하다.
게임을 같이 하면서 인지하지 못했던 자녀의 성향을 알 수도 있다. <별의 커비스타 얼라이즈>에서 각 캐릭터들은 물, 불, 얼음, 칼 등 저마다 공격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딸 소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티스트'였다. '아티스트'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같은 팀이 이 음식을 먹으면 적에게 공격당해 깎인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팀플레이에서 아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힐러(Healer)' 캐릭터란 뜻이다.
한번은 저자가 '아티스트'를 고집하는 딸에게 짜증을 냈다. 아티스트 캐릭터를 얻기 위해 여러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딸 소해는 “나는 다른 프렌즈 도와주는 게 좋단 말이야”라고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전략적인 공격에 유리한 캐릭터를 선호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가 전투에 서투르기 때문에 내가 대신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성향 차이였다.”(72쪽) 게임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경우, 가까운 사이에서 서로 이러한 오해를 하고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닌텐도 게임 중 <마인크래프트>를 하다보면 역사에 흥미를 갖거나 <로블록스>를 하다 코딩 전문가가 될지도 모른다. 닌텐도가 상대적으로 교육적(?)인 게임일 수 있다. 저자는 딸과 함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켜서 아침체조를 따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외 다양한 닌텐도 게임으로 추억을 쌓는다. 그럼에도 양육자로서 게임시간을 얼마나 허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보통 '하루에 한 시간'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게임은 하루 한 시간으로는 제대로 플레이를 전개하는 게 어려운 게임도 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양육자의 '비현실적' 결정이다.
축구 경기는 전후반 90분간 진행하고 야구는 정해진 경기시간이 없지만 지난해 KBO 리그 평균 경기시간이 3시간19분이다. “만약 야구를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야구를 축구처럼 90분 만에 끝내라고 한다면, 그건 아예 하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가혹한 일일 것이다.”(109쪽) 그래서 차라리 평일에 하지 않고 주말에 몰아서 하는 편이 낫다고 제안한다.
어린 시절 게임을 하던 세대가 이제 양육자가 됐다. 어른들이 아무리 어린이에게 미디어 콘텐츠를 차단하려 해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양육자가 어린 자녀와 의무적으로 '놀아주는 건' 쉽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안전한 닌텐도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조금 더 평등해”(200쪽)져서 함께 놀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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