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턱밑’ 중남미 들어선 중 우주기지…핵미사일 업체가 운영한다고?

한겨레 2024. 1. 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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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 지구 우주 경쟁과 중남미
아르헨 파타고니아에 임대 기지
베네수엘라·볼리비아·페루에도
중국군과 국영 방산업체가 운영
미국과 협력 중인 나라에도 손짓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 중국이 설치한 우주기지. EPA 연합뉴스

멀리 아르헨티나의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 지름 35m의 접시 안테나가 서 있다. 에스파시오 레하노 우주기지, 중국국가항천국이 운영하는 시설이다. 주된 업무는 위성 발사와 통제다. 중국은 아르헨티나와 2014년 협약을 맺어 남극 근처에 2㎢의 땅을 빌렸고, 중국 국영 교통건설(CCCC)이 기지를 지었다. 50년 동안 토지를 쓰는데 세금 면제 혜택까지 얻어냈다.

중국 관영 언론은 2019년 창어 4호가 달의 뒤편에 착륙하는 데 이 기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언론,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이 이 기지를 군사용으로 쓸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14년 협약에는 중국이 위성 신호를 추적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시설을 짓는다고만 돼 있고, 어떤 정보를 어떤 용도로 수집하는지 등등 구체적인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2016년에 협정을 고쳐 “민간 목적으로만 사용한다”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정작 아르헨티나의 감독권은 보장돼 있지 않다. 아르헨티나와 명목상 공동 운영을 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기지에 대한 접근은 중국 쪽이 통제한다. 아르헨티나 쪽은 하루 2시간 미만, 운영 시간의 10%만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현지 지역당국과 미디어 접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르헨티나 밀레이의 선택은

이 기지에서 사고가 일어나거나 외교적 갈등이 불거지면 책임은 누가 질까. 양국 협정에 따르면 전부 중국 책임이며 아르헨티나에는 책임이 없다. 1967년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국제우주조약은 각국이 관할권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우주 활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악의적인 국가 혹은 집단이 남의 나라 땅을 빌려서 인류에 위해가 되는 활동을 하거나, 고의는 아니더라도 사고를 일으켜 인류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그런 일을 막을 책임을 그 영토를 보유한 국가에 부과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중국의 협정은 이를 무시했다.

현재로선 중국이 군사시설로 쓰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이 기지 주변에 유럽우주국(ESA)이 운영하는 말라르궤 우주기지가 있는데 임대 조건은 중국 기지와 똑같다. 차이가 있다면, 유럽우주국은 민간 연구기관이고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민주적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반면에 중국 쪽 운영자는 인민해방군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에서 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파타고니아 우주기지가 갑자기 중국과의 관계를 가늠케 하는 리트머스로 떠올랐다. 중국이 남극 부근에 지은 교두보라고 보는 미국은 밀레이가 협약을 뒤엎길 바란다. 미국이 보기에 우주 협력을 빌미로 한 중국의 침투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중남미 전역에 걸쳐져 있다. 이를테면 볼리비아의 안데스산맥 고지에 아마추마 지상기지라는 원격 위성기지국이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의 과학자들과 국영 우주개발 회사들이 볼리비아의 위성기지를 원격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위성 개수는 700개가 넘는다. 숫자가 늘수록 위성을 추적하고 통신할 지상 시설도 많이 필요해진다. 중국은 2008년 베네수엘라, 2013년 볼리비아, 2015년 페루에 지상국을 지었으며 파타고니아 우주기지도 그 일환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미국이 경계를 할 법도 한 것이, 중국과 중남미의 ‘우주 협력’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것은 인민해방군 산하 기관과 중국항천과기집단공사(CASC), 중국항천과기공업집단공사(CASIC) 등의 국영회사들이다. 과기집단공사는 중국 유일의 대륙 간 핵미사일 제조업체이고, 과기공업집단공사는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회사다. 레하노 기지의 운영을 맡은 것도 이들 기업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중북부의 카피탄 마누엘 리오스 공군기지 안에 중국이 지은 위성기지국이 있고 과기집단공사와 중국만리장성산업공사(CGWIC)가 운영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중국 공산당이 중남미-카리브해 지역 관계 백서를 처음 발간했을 때만 해도 우주 분야는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문장뿐이었다. 2016년 백서에서는 원격 감지와 통신 위성, 위성 데이터 활용과 항공우주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구체적으로 다뤘으며 2022년에는 중국 공산당의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에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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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

중국과 중남미의 우주 분야 협력은 1988년 브라질과 맺은 ‘지구자원위성’ 프로그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6개의 위성이 발사됐다. 중국은 2004년 금융위기 여파로 휘청이던 아르헨티나와 첫 우주 협력 기본협정을 체결했다. 이듬해에는 베이징에 아시아태평양우주협력기구를 설립했는데 페루가 창립 회원국으로 동참했다.

중남미 국가들끼리의 우주 협력은 기술적·재정적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주도해 2021년 우주기구를 만들었는데 자체 위성기술을 개발한다면서도 초기 예산은 1억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중국이 이 우주기구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해 중국은 ‘국제 달 연구기지’(ILRS) 건설 로드맵을 공개했다. 멕시코·콜롬비아·브라질 등은 미국의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협정’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 나라들을 중국이 끌어당기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에는 중국과의 우주 기술 협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주도해온 우주 관련 국제규범이 이원화될 수 있으며, 미-중 간 땅에서의 경쟁과 대립이 우주 지정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유독 아르헨티나는 친미 자유지상주의자를 택했다. 미국이 옳으냐, 중국이 옳으냐를 따지기는 힘들다. 밀레이가 별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집권하기 전부터 아르헨티나에는 반중 여론이 늘 있었다. 중국에는 그들이 덜 중요하지만, 남미 국가들에는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다. 구조적으로 불균형한 관계에 대한 반발이 적잖이 퍼져 있다. 아르헨티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갈지자걸음을 걷는 것을 웃으며 볼 수만도 없다.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는 국가들은 많고, 그로 인한 갈등이 유독 아르헨티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위성기지를 내주고 있는 볼리비아 역시 서방과 중국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미국에 불만을 드러내왔다. 파타고니아 중국 기지는 미국과 중국이 남의 땅을 놓고 벌이는 또 하나의 정치 공방 사례일 뿐이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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