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분리수거,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한호의 시사잡경]
우리가 집 문에 붙은 마트 전단지를 보고 아보카도와 우유를 주문했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송 온 박스의 테이프를 뜯어 종량제 봉투에 버리고, 박스는 박스끼리 모아둔다. 낱개 아보카도를 감싼 보호재는 스티로폼 수거함에 넣고 과육을 맛있게 먹은 후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로, 단단한 씨는 일반 쓰레기로 처리한다. 다 마신 우유팩은 씻어서 영수증, 전단지와 함께 종이 수거함 행이다. 완벽하게 분리배출을 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잘 모르고 있었던 분리배출 위반 사항이 세 가지나 돼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일반 시민이 분리수거 대상이 아닌 전단지·영수증 코팅과 오히려 고급 원료 취급받는 우유팩 코팅의 차이를 알기란 쉽지 않다. 얼핏 보기에 스티로폼처럼 생긴 과일 보호재는 재활용이 안 되는 전혀 다른 소재라는 사실, 수박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할 수 있지만 더 얇은 아보카도 껍질은 안 된다는 사실은 따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모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법률 자문 사이트나 지역 커뮤니티에는 예상하지 못한 배출 규정을 어겨 과태료를 물게 됐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폐기물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해가 지날수록 분리배출 규정이 엄격하게 바뀌고 있지만, 적극 관심층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오히려 피로·거부감을 유발하고 있다. 분리수거에 대한 책임이 최종 소비자들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는 이유다.
과태료가 일부 몇 명의 실수를 바로잡아줄 수는 있겠지만 개인 소비자에 대한 규제와 참여 호소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본보가 이틀에 걸쳐 아파트 10여 단지의 분리수거장을 직접 취재해본 결과 ‘완벽한 분리배출’을 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단지 주민들은 영하 10도에 달하는 한파에도 싫은 내색 없이 열심히 분리배출에 참여했고 경비 노동자가 ‘2차 검수’까지 했다. 규정에 맞지 않은 분리배출의 원인은 주민들의 도덕적 해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장에 필요한 것은 더 세세한 규정과 단속이 아닌 ‘쉬운 배출’과 , ‘중앙 선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소비자원이 2020년 ‘포장재 분리배출표시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7가지의 분리배출 수칙 관련 질문을 했는데, 이 중 3가지 항목에 대해 응답자의 60% 이상이 오답을 택했다. 이 중 한 질문은 앞서 예시로 든 ‘전단지와 영수증은 종이류로 배출한다’였다. 소수의 관계자가 아닌 보편 시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규칙에 대한 오답률이 이렇게 높다면, 규칙을 단순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이런 규정 수십 가지를 전부 숙지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평범한’ 분리배출이다.
지난해 제주도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현행 2종(무색 P.E.T, 플라스틱) 분리배출에서 5종 분리배출제를 시범실시했다. 그러나 재활용에 대한 참여를 촉진시키기는커녕 2종 배출이 가능한 곳으로 ‘원정 투기’ 하는 시민들만 나타났다. 광역·민간 선별장에 자동 분리기가 도입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더 엄격한 배출 관리보다 쉽게 배출하고 중앙에서 선별하는 방식이 시민 만족도와 재활용률 개선에 더 효과적이었던 것이다.
현재 폐자원 선별·처리는 지자체별 소관이어서 일괄적인 설비 보강이 어렵다. 때문에 일부 지자체는 같은 플라스틱이라도 세부 소재에 따라 폐품을 자동 분류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지자체는 작업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소재를 분류해야 한다. 가뜩이나 복잡한 분리배출 기준이 거주 지역에 따라 또 달라지는 원인이다. 지자체들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나마 현장 불편을 개선하려고 하고 있다. 노인일자리를 구하는 어르신들에게 지역 주민들이 잘못 배출한 폐품을 재분류하는 작업을 맡기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장기적으로 선별 시설 현대화를 추진하되 지금 당장은 재활용에 대한 책임을 개인 시민의 부담에서 덜어가는 기조가 이어져야 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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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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