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계산대에서 물건 섞이지 말라고 놓는 막대…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1. 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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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12] 마트 계산대에서 앞사람하고 구분하는 막대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일진이 사나운 날이 있다. 마트 계산대 체크아웃 디바이더 너머로 앞 사람의 장바구니에서 물건이 끊임없이 나온다. 난 초콜릿 하나 사는데. [사진 출처=Blue line media]
명사. 1. 체크아웃 디바이더, 글로서리 디바이더, 컨베이어 벨트 디바이더 2. 상품분리바, 계산대 상품분리바【예문】마트 계산대에서 나는 두리번거리며 체크아웃 디바이더를 찾았다.

체크아웃 디바이더다. 한국에서는 상품분리바라고 부른다. 마트 계산대 컨베이어 벨트에서 먼저 계산하고 있는 앞 사람의 물건과 내가 고른 물건이 섞이지 않도록 사이에 놓는다. 주로 고무 소재로 만들지만, 플라스틱이나 가벼운 금속으로 만들기도 한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헛돌지 않도록 삼각기둥이나 사각기둥 형태로 만든다.

한국에서는 디바이더 포 굿즈 온 체크아웃 컨베이어(Divider for goods on a checkout conveyor)라는 길고 긴 명칭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체크아웃 디바이더의 용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 이름으로 오인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에서도 커뮤니티마다 “수퍼마켓 계산대에 길다란 거 그거(thingy) 뭐라고 부르냐”라는 게시물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체크아웃 디바이더, 글로서리 디바이더라는 일반적인 이름부터 막대기(bar), 콜라 만리장성(The Great Wall of Cola)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체크아웃 디바이더의 독일어 명칭이 좀 독특하다. 일반적으로는 Warentrennstab(바렌트렌슈타프)라고 부르는데, Waren(상품)+Trennen(분리하다)+Stab(막대기) 세 단어를 합성한 조어로 말 그대로 ‘상품을 분리하는 막대기’를 뜻한다. 복잡한데 직관적이다. 두 개 이상의 단어를 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독일어의 합성어 체계 덕분이다. 독일어권 스위스에서는 Kassentoblerone(카센토블레로네)라고도 한다. Kasse(계산대)+Toblerone(토블론), 삼각기둥 모양의 스위스 초콜릿 ‘그거’ 토블론 맞다. 뜻풀이를 해보자면 ‘계산대의 토블론 초콜릿’ 되겠다. 유머 감각이 사멸한 독일어에서 이 정도의 센스를?

크라프트 푸드의 스위스 지사에서 생산하는 초콜릿 ‘토블론’. 독일·이탈리아·독일어권 스위스 지역에서는 토블레로네라고 읽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스위스는 추축국의 탱크 침공을 저지·지연하기 위한 용치(龍齒, 용의 이빨 모양의 방어시설)를 많이 만들어두었는데, 그 모양이 딱 토블론인지라 ‘토블론 라인’이라는 달콤한 이름이 붙었다. [사진 출처=크라프트 푸드]
다음 중 계산대 점원을 가장 열받게 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참 적립할게요” “아 맞다 이 카드로 할게요” ② “동전으로 내도 되죠?” ③ 카드 집어던짐 ④ 체크아웃 디바이더를 토블론으로 바꿔둠 [사진 출처=coop.ch 페이스북]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독일어의 합성어 체계는 가끔 선을 세게 넘어선다. Donaudampfschifffahrtselektrizitätenhauptbetriebswerkbauunterbeamtengesellschaft(도나우 증기기관 선박운행 전력 중앙운영 공장건설 하급공무원 협회)는 가장 긴 단어(79글자)로 1996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영어에서는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뉴모노울트라마이크로스코픽실리코볼케이노코니오시스)가 45글자로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화산에서 생성된 초미세 규소가 폐에 오랜 시간 축적돼 발생하는 폐 질환’ 즉 진폐증(塵肺症, pneumoconiosis)을 뜻한다. 주요 사전 중 하나인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단어로서는 가장 길다. 긴 단어를 의도하고 만든 조어나 의학·기술 용어가 아닌 일반 단어로서 가장 긴 영단어는 19세기 영국에서 쓰인 Antidisestablishmentarianism(국교폐지조례반대론)이 있다. 이쪽은 28글자다.
1924년 미국의 물류배송업체 UPS에 최초로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 [사진 출처=UPS SNS]
그럼 체크아웃 디바이더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체크아웃 디바이더는 당연하게도 컨베이어 벨트 이후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일정한 거리 사이에서 물건을 자동으로 연속 운반하는 기계장치 ‘컨베이어’는 기원전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장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고무벨트를 이용한 컨베이어 벨트만 따져보자. 흔히 포드자동차를 세운 헨리 포드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아이콘으로 보지만 그 역시 도축장의 이동식 벨트를 보고 이동식 작업대를 활용한 자동차 생산설비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가장 초기적인 단계의 컨베이어 벨트는 18세기 초 가죽이나 무명 벨트를 이용해 곡물을 운반하는 장치였다. 이후 1892년 토마스 로빈스(1868~1957)라는 양반이 석탄 및 광석을 운반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발명했고, 그는 자신의 발명품으로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후 여러 형태의 컨베이어 벨트가 개발됐고, 이윽고 1913년에는 포드자동차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완전한 생산 라인을 구축,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회전 초밥집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일본에서 초밥집을 운영하던 시라이시 요시아키 회장(白石義明, 1913~2001)이 맥주 공장의 생산 설비를 보고 영감을 얻어 개발했다. 그는 1958년 히가시오사카시에 세계 최초의 회전 초밥집 겐로쿠스시를 개점했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활용한 회전 초밥집의 원조 겐로쿠스시의 초장기 매장 모습. 1호점 개장 이듬해인 1959년에 촬영했다. [사진 출처=겐로쿠스시]
산업 현장에서 주로 쓰이던 컨베이어 벨트가 소비자 곁으로 다가온 것은 1940년대의 일이다. 1937년 미국 멤피스와 시카고에는 키두즐(Keedoozle)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식품 잡화점이 등장했다. 키두즐을 만든 클래런스 손더스(1881~1953)는 세계 최초의 셀프서비스 식료 잡화점인 ‘피글리 위글리’ 창업자이기도 했다. 그는 ‘손님이 장바구니를 들고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골라 담는다’는 현대적인 마트 프랜차이즈의 개념을 정립한 선구자였다.

안타깝게도 손더스의 피글리 위글리는 1923년 공매도 세력의 먹잇감이 돼 공중분해 됐다. 뉴욕 매장이 폐점한 것을 계기로 월가의 공매도 세력이 주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근거 없는 비방을 쏟아내자 손더스는 전쟁을 선포하고 주식을 매수했다. 1000만 달러(1920년대 1달러의 현재 가치 100달러로 환산할 경우 약 1조3440억원)를 쏟아부은 손더스가 영혼의 한타 싸움 끝에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뉴욕 주식거래소가 월가 투기꾼들을 위해 룰을 바꾼 것이다. 공매도 상환 시한을 멋대로 연장한 것도 모자라 다음날 손더스의 매점 행위를 핑계 삼아 피글리 위글리를 상장 폐지해 버렸다. 결국 손더스는 파산했고, 피글리 위글리 경영권도 잃어버린다. 공매도와의 전쟁이 벌어졌던 2021년 게임스탑 매수 버튼을 뽑아버린 주식 앱 로빈후드의 만행이 생각난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월스트리트는 예나 지금이나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피글리 (돼지머리) 위글리는 손님에게 ‘물건을 고를 자유를 준’ 최초의 마트였다. 지금도 미국 18개 주 500여 개의 매장이 운영 중인 현역이다. 오오 슈퍼마켓의 페이커 상시입장 기습구매 오오. [사진 출처=피글리 위글리]
피글리 위글리 공매도 사건 이후에도 손더스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놨고 키두즐 역시 그가 재기를 위해 던진 승부수였다. 진정한 상남자다.

키두즐은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혁신적인 소매점이자, 2018년에 문을 연 아마존 고(아마존이 만든 무인 매장)보다 무려 80년 먼저 출연한 ‘자동화 상점’이기도 했다.

키두즐을 찾은 손님들은 자판기처럼 유리 너머 진열된 물건 옆 작은 구멍에 테이프가 내장된 열쇠를 집어넣어 구매할 제품을 골랐다. 고른 제품은 고객의 열쇠 테이프에 기록됐고 동시에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출구로 자동으로 운반된다. 출구 쪽에는 점원이 대기하고 있다가 손님의 열쇠를 받아 테이프를 해독, 구매 비용을 청구했다. 비용을 내면 컨베이어 벨트 끝에 설치된 장치가 상품을 모두 포장해 고객에게 전달했다.

사진 잡지 라이프가 1949년 1월호에 소개한 미국 멤피스 소재 ‘자동화 식품 잡화점’ 키두즐. 흑백 사진만 아니라면 레트로한 컨셉의 이마트24 무인 매장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다. [사진 출처=The LIFE Picture Collection]
사진 잡지 라이프의 1949년 1월호에 소개된 키두즐. 반백년 이상 앞서간 클래런스 손더스의 ‘자동화 매장’ 비전은 너무 혁신적이었고, 혁신적으로 망했다. [사진 출처=The LIFE Picture Collection]
시대를 두 바퀴쯤 앞서나간 키두즐은 물론 홀랑 망했다. 이후 손더스는 푸드일렉트릭(Foodelectric)이라는 계산까지 전자동으로 이뤄지는 점포를 구상하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1954년 사망했다.

비록 손더스는 자신이 심은 혁신이 발아(發芽)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그의 야심 찬 모험은 유산을 남겼다. 1940년대 들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상점의 계산대에 적용한 장치들이 수없이 발명된 것이다. 체크아웃 디바이더도 그 유산의 일부인 셈이다.

체크아웃 디바이더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상용화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해리 길먼이 1984년도에 출원한 체크아웃 카운터 디바이더 특허 문서를 보면 기존 ‘상점 이름이 각인된 막대기’의 단점에 대해 지적하며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 광고를 부착할 수 있는’ 자신의 발명품을 강조하고 있다.

해리 길먼이 특허 출원한 US4534126A 체크아웃 카운터 디바이더. 투명 소재를 활용해 광고 문구를 갈아 끼울 수 있는 개선 제품을 내놨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관리하기 쉽고 잘 파손되지 않는 고무 소재 막대기가 주로 쓰인다. [사진 출처=구글 특허]
‘The 상남자’ 클래런스 손더스가 키두즐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피글리 위글리, 키두즐…신은 그에게 혁신가의 심장을 준 대신 작명 센스를 뺏어갔다. 계산대에서 체크아웃 디바이버를 볼 때 마다 그를 떠올리자. [사진 출처=The LIFE Picture Collection]
  • 다음 편 예고 : 고급 승용차 후드에 튀어나와 있는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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