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日 연속 기업폭파 사건 “내가 범인” 고백한 말기암 환자

전현진 기자 2024. 1. 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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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연속 기업폭파사건으로 지명수배됐던 기리시마 사토시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한 남성이 나타나 일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내가 기리시마 사토시다.”

임종을 앞둔 일본의 한 남성이 1970년대 벌어진 ‘연속 기업폭파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50년 동안 수배된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해 현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7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1974~1975년 벌어진 연속 기업폭파 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기리시마 사토시(桐島聡·70)가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남성은 “임종은 기리시마 사토시로 맞고 싶다”며 연속 기업폭파 사건으로 지명수배된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이달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한 병원에 가명으로 입원한 이 남성은 지난 25일 자신이 기리시마 사토시라고 고백했다. 병원 측에서 즉시 경찰에 통보해 도쿄를 담당하는 경시청 공안부 관계자가 이 남성를 찾아가 조사를 벌였다.

이 남성이 기리시마 사토시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전해졌다. 그는 말기암 환자인데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한다.

기리시마 사토시는 일본의 극좌 과격파 단체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멤버다. 이 단체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의 원흉이라며 관련 기업에 대해 연달아 폭탄 테러를 벌였다.

1974년 8월 도쿄 마루노우치 미쓰비시중공업 빌딩에 수제 폭탄을 설치해, 8명이 죽고 380명이 다쳤다. 이후 1975년 5월까지 총 9건의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기리시마 사토시는 1975년 4월 19일 도쿄 긴자의 한 빌딩에 있는 한국산업경제연구소에 수제 폭탄을 설치해 터트린 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다.

이들은 일본 생산성 본부 산하기관이었던 한국산업경제연구소를 “아시아 침략에 봉사하는 활동 거점”으로 지목했는데, 당시 이 연구소 관계자들의 한국공업단지 시찰을 위한 방한이 예정돼 있었다.

기리시마 사토시 등은 4·19혁명일에 맞춰 한국산업경제연구소에 폭탄을 설치해 터트렸다. 오전 1시경 폭탄이 터져 다친 사람은 없었다.

연속 기업폭파 사건에 관여한 9명이 체포되는 이후에도 기리시마 사토시는 붙잡히지 않아 전국에 지명수배됐다. 그에 대한 수배 전단은 일본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도피 기간은 50년에 달했지만, 해외로 도피한 공범들의 공소시효가 정지돼 그 역시 기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사건을 맡은 경시청은 이 남성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친족과의 유전자 감정 등이 필요하다며,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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