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진흥공사 “산업·금융 투트랙으로 해운업 선순환 구조 강화”
(시사저널=김동현 영남본부 기자)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아시아에서 출발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사인 HMM(구 현대상선)의 선박 약 16척이 목적지인 유럽에 평소보다 일주일 이상 늦게 도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친이란 성향인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도발에다 미국과 영국이 이들의 근거지를 전격 공습하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 등 해외 주요 선사들이 홍해 통항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대한민국 정부도 굳건한 '안전 방침'에 따라 통항 중단을 권고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선박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홍해와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초 연료비보다 비싼 수에즈 운하 '통행료' 탓에 실질적인 선사들의 금전적 피해는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화주들이 화물의 연착 사태를 주시하고 있어 긴장감은 여전한 분위기다. HMM 관계자는 1월22일 본지에 "권고 즉시 우회했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이 상황은 이어질 것"이라며 "지난해 12월 중하순부터 현재까지 불확실성으로 인해 운임이 계속 오르고 있다. 화주들은 그게 피해라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해수부도 비상대응반을 꾸리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유럽 노선 임시선박 투입 등 직접적인 지원에 이어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를 통한 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필요시 신속하게 금융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여전한 해운시장에서 해진공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금융 지원에 더해 선사들의 '고충'을 들어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HMM 성공 이어 중소 선사 지원 늘리겠다"
업계 관계자는 "해수부는 우리나라 해양수산의 전반적인 것을 관장하기 때문에 선사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곳이 사실상 없었다"면서 "공사 설립 이후 민첩한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진공은 해운에 대한 금융 지원 분야에 특화돼 있다. 예전에도 당연히 지원이 있었겠지만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나라 해운 경쟁력을 지켜내기 위해 2018년 설립된 해진공은 HMM 재건에 이어 '미래해양금융 견인'을 장기 목표로 삼고 선사들의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글로벌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 낀 기업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처하며 산업 안전판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HMM 재건에 성공한 자신감으로 대형 선사는 물론 중소 선사에 대한 지원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해진공은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 이후 2021년까지 7조4152억원을 HMM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특히 산업은행과 공동관리를 통한 운영자금·투자자금 지원 금액이 5조원을 넘는다. 과도한 혈세 투입 등 비판도 있었지만 HMM은 현재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10조원을 넘겼고 부채비율도 30% 이내로 낮아졌다.
HMM 관계자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현금 보유량도 굉장히 커졌다"면서 "물론 코로나19 특수로 운임이 크게 뛰었지만 초대형 선박 20척 발주와 관련해 해진공이 금융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빠르게 정상화될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간 우리나라 해운 패턴을 보면 불황일 때 축소되고 호황일 때 돈을 벌지만 다른 글로벌 선사들보다는 많이 벌지 못했다"며 불황 시 금융논리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산업 투자의 지속성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산업의 미래를 위해 금융 등 지원이 지속돼야 하고, 선사들의 지속 가능한 경영으로 해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해진공의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환경 규제에 따른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국내 선사들은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 구입을 필수 과제로 삼는 분위기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구입비용에 금융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부산에 위치한 선사 디엠쉽핑의 곽민옥 대표이사도 지난해 본지와 만나 "국가의 세일 앤 리스백(Sale&Leaseback) 프로그램과 같이 친환경 선박 도입에도 이런 획기적인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선사의 선박을 구입해 다시 임대하는 방법이다.
지난해 7월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국제해운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채택하고, 2027년부터 연료유 표준제와 온실가스에 요금을 부과하는 이른바 결합 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운항 중인 선박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고 위반 시 운항이 제한되는 EEXI(선박에너지효율지수)와 CII(탄소집약도지수) 규제도 이미 시행됐다. 유럽연합(EU)은 역내 운항 5000GT 이상 선박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권을 정산해 구입하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U ETS)'를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고, 2025년부터는 연평균 온실가스 집약도 규제를 위한 연료유 규제 방안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국내 해운 업계의 대응은 해외에 비해 다소 소극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130여 개 해운기업 중 ESG 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기업은 상장 5개 사(HMM·팬오션·KSS·대한·흥아)에 불과하고 친환경 전환이 필요한 국제 규제 대상인 5000GT 이상 국적외항선은 900여 척에 달하는 탓이다. 다만 HMM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9000TEU급 메탄올 이중연료(Dual Fuel) 추진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내 유일 해양금융 전문기관 역할에 최선"
이처럼 시기적 여건과 당면한 시장환경에서 해진공의 역할론이 계속 대두되고 있다. 해진공은 다양한 해양환경 규제 대응 지원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국적선사의 친환경 전환 정책 지원 펀드를 개편하고 친환경 선박 신조에 대한 정부 보조금 사업 재원 확대를 위해 해수부 등 관계 기관과 예산 확대 협의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녹색채권 인수와 국적선사 ESG 경영 확산에도 힘을 쏟는다.
해양환경 규제 대응 지원을 위한 바우처 사업도 진행한다. 선박 탄소집약도지수 실시간 관리와 선박 연료 효율 개선 컨설팅 등 서비스 비용 50%를 연간 1척당 최대 1000만원 한도로 선사와 공사가 공동 부담하는 게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HMM 지분 매각 후 해진공의 역할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는데, 해진공은 "'국내 유일한 해양금융 전문기관'으로서 해상운송이 수출입 물류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해운 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금융·비금융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해진공에 따르면 HMM의 지원 비중은 공사 설립 초기 70% 이상이었으나, 최근 3년간 평균 10% 미만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사는 설립 후 최대 지원 실적을 지난해 달성했으며, HMM을 제외한 타 선사 지원 비중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HMM 매각차익을 국적선사 위기 대응과 ESG 활동 지원에 재투자해 해운업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등 해진공의 역할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HMM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림그룹-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현재 정부 측과 협상을 진행 중인데, 주식매매계약(SPA)과 주주간협약(SHA) 관련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진공 관계자는 "해운항만 산업 발전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우리 공사가 유일하다. 금융의 시각뿐만 아니라 산업 발전 측면의 시각을 가지고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해양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중장기 사업전략을 펼쳐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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