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갈아 끼운 토요타의 쾌속 질주···긴장하는 현대차·기아 [Car톡]
달리던 차 바퀴 빠져 치욕
하이브리드車로 반전 노려
전기차 판매부진 '반사효과'
37년 만에 日시총 기록 깨
전기차 대세 전망 우세 속
하이브리드車도 공존할 듯
글로벌 1위 자동차 업체인 일본 토요타는 지난 2022년 굴욕적인 사건을 겪었다. 그 해 4월 출시한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 ‘bZ4X’가 주행 중 바퀴가 빠지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대만에서 1건, 미국에서 2건의 바퀴 빠짐 현상이 신고됐고, 토요타는 출시 두 달만인 6월 2700여대의 리콜을 결정했다.
결함의 원인은 전기차의 높은 토크를 고려하지 않은 설계와 부적절한 부품 사용. 차축과 바퀴를 고정하는 볼트가 느슨해지면서 달리는 차에서 바퀴가 빠지는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적기생산방식(JIT)을 바탕으로 ‘품질의 대명사’로 불려왔던 토요타는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
bZ4X의 실패는 전기차 시대의 길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토요타를 상징했다.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를 내놓으면서도 “전기차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며 내연기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일각에선 갈팡질팡하는 토요타의 모습을 두고 글로벌 판매량 1위를 달리는 기존 헤게모니가 바뀌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내연기관 브랜드인 현대차그룹은 다른 노선을 밟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내연기관차 시대엔 우리는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엔 모든 업체들이 같은 출발선에 있다"며 "경쟁업체를 뛰어넘는 암도적인 성능과 가치로 세계 전기차 시대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순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를 개발했다. bZ4X에 내연기관 플랫폼을 개조한 ‘e-TNGA’를 적용해 사달이 난 토요타와 접근방식부터 달랐다. E-GMP에 기반해 내놓은 아이오닉5와 EV6는 북미와 유럽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토요타를 앞서갔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 총 684만대를 판매하며 처음으로 글로벌 판매량 3위에 올랐다. 지난해도 730만대를 팔아 2년 연속 3위 수성이 유력하다. 물론 1위는 토요타다. 지난해에도 1000만대 이상을 팔아 4년 연속 글로벌 판매 1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두 회사 모두 내연기관 차량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느낌은 다르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현대차그룹이 테슬라 쪽에 가까운 세련된 이미지로 바뀌었다면 토요타는 여전히 올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업계 일각에선 전기차만 놓고 보면 성능과 디자인, 양산 능력 등 종합적으로 볼 때 현대차그룹이 ‘퍼스트 무버’, 토요타가 ‘패스트 팔로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창사 이래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현대차·기아는 합계 영업이익 26조7349억원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14년간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를 3위로 밀어내고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9.3%로 마진이 높은 걸로 유명한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8.2%)를 압도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만 잘 나가는 것이 아니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토요타의 질주가 예사롭지 않다. 일본 주식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토요타는 최근 역대 최대 시총 기록을 37년만에 갈아치웠다. 지난 23일 주당 2991엔(약 2만7000원)에 거래를 마감한 토요타의 시총은 48조7891억엔(약 440조8290억원)까지 불어나며 버블경제 시기인 1987년 통신회사 NTT가 기록한 시총 48조6720억엔(약 439조7700억원)을 넘어섰다.
주가는 기업가치의 바로미터다. 토요타가 37년 만에 역대 1위 시총 기록을 깬 배경엔 실적이 있다. 회계연도가 우리나라와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토요타는 2023년도(2023년 4월~2024년 3월) 연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5% 급증한 4조5000억엔(40조65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단일 기업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4조 엔 클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본 증시가 최근 활황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토요타의 주가 상승을 이끈 건 실적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토요타의 실적 개선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바로 ‘전기차의 판매 부진, 하이브리드차의 성장’이다. 토요타가 바랬던 그림이다.
실제 글로벌 전기차는 성장의 기울기가 꺾이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는 전세계에서 1370만대 팔리며 전년 대비 29% 성장했다. 하지만 2021년 169%, 2022년 93%의 고성장에 비하면 둔화 폭이 커지고 있다. 올해 역시 27.2% 성장한 1710만대로 부진이 지속될 전망이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바퀴가 빠지는 굴욕을 겪고, 전기차 전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혹평을 받았던 토요타 입장에선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그동안 쌓인 게 많은 탓인지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이달 도쿄에서 열린 '오토 살롱 2024'에서 “아무리 전기차 전환이 진행되더라도 시장 점유율의 30%라고 생각한다"며 "엔진차는 반드시 살아 남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이브리드차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친환경차의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65% 급증하며 전기차 판매 증가율(46%)를 앞질렀다. 지난해 하이브리드차의 시장점유율은 8%였는데 올해는 14%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순수전기차 비중은 10% 안팎이다.
토요타는 자타공인 하이브리드 최강자다. 1997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하이브리드차인 프리우스를 선보일 만큼 하이브리드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토요타는 현재 글로벌 하이브리드 차량 시장에서 60%의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1월~11월까지 전기차 판매량은 9만5000대에 그치며 총 판매량의 1%에도 못미쳤지만 전통적인 강세 부문인 하이브리드차(플러그인 포함)는 320만대나 팔았다.
지난 2~3년 간 전동화 전환에 집중한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전기차 부진, 하이브리드 성장’이 달갑지만은 않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45만785대의 전기차를 팔아 토요타를 압도했지만 하이브리드에선 열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총 76만 7941대의 하이브리드차(플러그인 포함)를 팔았는데 토요타의 5분의 1수준이다.
물론 현대차그룹도 독자적인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수십년간 쌓은 기계공학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1년 세계 최초로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직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쓰는 토요타가 구현하려다 포기했던 기술이다. 현대차·기아는 당분간 지속될 하이브리드카 성장세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효율과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고성능 엔진과 결합돼 연비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양사의 첫 하이브리드 차 양산 시점이 10년 이상 차이 나는 점을 고려하면 토요타가 상대적인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 합리적이다. 토요타는 오는 6월부터 출시되는 2025년형 캠리부터 가솔린 차량을 단종하고, 하이브리드 모델로만 구성한다. 캠리는 1980년 출시 이후 43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2100만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링카다. 현대차로 치면 쏘나타나 그랜저를 하이브리드 차로만 생산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최근 전기차 성장이 둔화한 것은 맞지만 하이브리드차의 성장세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가격과 충전인프라 등 전기차가 대중화되기 위한 장벽을 넘어서기 전까지 하이브리드차가 공존하는 것일 뿐 중장기적으론 내연기관차가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가 앞으로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현 시점에선 충전 인프라를 비롯해 주행거리와 배터리 기술 등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면서 “이런 점들이 개선되기 전까진 하이브리드차를 선호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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