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한 눈 팔지 않은 정치인 김민기의 '내려놓음'
[더팩트ㅣ용인=유명식 기자] 그를 처음 만나건 16년 전쯤이다. 경기 용인시의회 너저분한 시의원실. 서류 더미 속에서 중앙언론사 기자가 도대체 여기까지 왜 왔느냐는 눈빛.
시장의 인사 비리 의혹을 설명하면서 핏대를 세우던 젊은 초선 시의원. 그날 그와 만남은 당시 용인시 인사 담당 공무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근무평정 조작 의혹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게 된 계기였다.
그해 용인시장은 검찰에 불려 가 기소됐고 이듬해 유죄를 받았다.
그는 시의원으로 출마하면서 크게 3가지를 약속했다고 했다. ‘한눈팔지 않겠다’, ‘회기 전날 술 먹지 않겠다’, 그리고 ‘한 번만 하겠다’.
시민에 대한 애정, 의정활동에 대한 열정, 초선답지 않은 성과, 항상 낮은 자세의 겸손함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과 한 다짐이었다.
그는 4년간 이 약속을 지켰고 임기 말 당당하게 용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의 당찬 도전, 기자는 당연히 낙천할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용인시민 적합도 조사에서 당당히 1위. 그의 공천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할아버지, 촌놈이 공천장을 받으러 간다"고 했다. (시의회에서 처음 본 이후 그는 기자를 할아버지라 불렀다. 이유는 모른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당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최종 공천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 뒤 꼼장어 집에서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김민기 세 글자가 새겨진 공천장까지 받았는데, 이를 다시 번복하겠다는 당의 결정을 아무런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농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양보했다"며 웃었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다섯 살이었다.
그는 2년여 낚시와 독서, 바둑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시민들과 웃고 떠들었다. 시의원 시절 끊었던 소주도 권하면 마셨다.
그리고 당당히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재선, 3선까지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면서도 자리나 감투에 욕심내지 않았다.
동네 뒷골목 가로등 전구가 나갔는지, 아이들 통학길은 안전한지, 지역구 활동에만 열심이었다. 시의원 때부터 이어오던 기부도 잊지 않고 했다. 지난해까지 17년간 한 달 치 세비를 매해 두 차례씩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놨다. 누적 기부액만 2억 6000만 원이 넘는다.
그는 "허세부리지 않고, 나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유명해지기 싫다"는 말도 농담처럼 자주 했다.
얼굴이 알려지면 거들먹거리게 되고 겉멋이 든다는 이유이겠거니 싶었다.
"(동료 의원들에게) 먼저 하시라 권하면서도 국토교통위원장까지 했으니 이만하면 정말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가 그렇게 뜬금없이 불출마를 선언할 줄은 몰랐다.
그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 불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돌연 선언했다. "3선 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희생을 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떨리는 입술을 다잡았다.
"새롭고 다양한 시야를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오로지 선거를 목표로 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 하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의 기득권부터 내려놓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불출마 소식에 기자의 거칠었던 입이 후회스러웠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4, 5선 선수만 쌓으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다그쳤던 내가 초라해졌다.
전화해서 "왜 불출마를 하느냐?"고 따졌더니 "오래 전부터 고민하던 생각"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만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한다고 고집 피우기보다 그 시대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생하셨다"는 말 이외에 덧붙일 사족이 없었다.
그리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가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단 하나의 먼지털 같은 기득권 조차도 모두 벗어 던지고, 다시 국민의 부름을 기다리겠다는 그의 ‘정치 인생 3막’이 기대됐다.
"접니다. 저! 김민기! 정치 똑바로 하겠습니다."
이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현장에서 펜을 들고 취재수첩을 펼 날을 기대한다.
vv83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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